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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서시장에 가면 약다리가 있다. 약다리를 건너 연등천변을 따라가다 보면 한약 건재상과 약 달이는 집이 즐비하다. 약다리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장사가 안 돼. 대목을 무지하게 타그마”라며 안타까워했다. 예년에도 추석 전후에는 매출이 다소 떨어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안 된 적은 없었단다.

 

추석이 다가오면 약재시장은 좀 한가한 편이다. 찬바람이 나야 사람들이 보약을 찾기 때문이다. 한여름에는 삼계탕 등의 보신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만 찾을 뿐이다. 약다리 할아버지는 찬바람이 불어오고 가을이 깊어져야 장사가 살아난다고 한다.

 

"물어본 사람 미워! 속이 터질락 한께"

 

"인삼 3년 근이 100g에 5천원인디 많이 줘 부러, 160g줬어."

 

인근에서 음식 장사하는 단골손님이다. 같이 장사하는 사람들한테는 별 이문을 남기지 않고 거저 주다시피 한다. 할아버지는 약다리(여수 서시장 충무교)에서 40년간 장사를 했다. 하루 3~4만원 벌이가 힘들지만 추석이 지나고 찬바람이 나면 괜찮아질 거라며 늦가을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할아버지는 대형마트가 생기고 나서부터 매출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대형마트보다도 가격이 훨씬 싼데도 소비자들이 외면해 어렵다고 한다.

 

파는 약재 중에서 생김새가 좀 특이하다싶어 할아버지에게 물어봤다.

 

“이게 뭐예요?”

“원기부족에 먹는 부자여. 황기, 생강, 대추 등을 넣고 돼지발목하고 고와먹으면 좋아. 원기가 팍팍 돋아. 여자들 냉에도 좋아, 손발 찬 사람들은 손발이 따뜻해져 부러.”

 

부자는 뜨거울 때 먹으면 독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시원하게 식혀서 먹어야 된다고 당부한다.

 

여수 서시장에서 약다리 할아버지라 불리는 분은 박성래(77)씨다. 부친도 전남 고흥에서 한약방을 하셨다고 한다.

 

“좋은 약재만 이렇게 다루시니 아픈 곳이 없겠네요.”

“연설하네. 바느질쟁이가 옷 잘 입고, 목수가 자기 집 잘 짓는 거 봤는가. 남의 거는 돈 벌라고 잘 짓는 디 정작 자기 집은 손 안 된다니까.”

“좋은 약재 많이 드시나요?”

“어떻게 먹어, 하나라도 팔아야지.”

 

원래 이곳에서 약재 판매는 할머니가 했던 것을 이어 받았다. 할머니는 12년째 신장병으로 투병중이다. 더 캐물으려 하자 가슴이 미어지는 듯 “물어본 사람 미워! 속이 터질락 한께”라고 외치며 이내 말문을 닫았다.

 

"딴사람보다 싸야 되고 많이 팔아야 장사여!"

 

한참이 지나서야 대화가 이어졌다. 약다리 할아버지는 장사는 이문을 적게 남기고 많이 팔아야 된다며, 욕심을 버리고 봉사하는 길이 장사의 도라고 한다.

 

“장사는 가격이 딴사람보다 싸야 되고 박리다매로 많이 팔아야 장사여. 남한테 좋은 일을 많이 해야 좋은 것이여. 욕심을 털어 불고 봉사를 해야 돼.“

 

대추 한 되를 사면 덤으로 한 주먹 더 챙겨 봉지에 넣어 준다. 5년근 황기는 1다발에 3천원인데 2500원만 받는다. 손님은 기분 좋게 사간다.

 

“한 다발에 3천원 인디 2500원에 줘 부러.”

“안녕히 계세요.”

“예, 가입시다~잉.”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이 인사를 건네며 지나간다. 어르신들은 이곳을 지나다 힘이 들면 쉬어가곤 한다. 할머니 한 분이 걷기가 힘겹다며 할아버지 곁에서 쉬어간다.

 

“할아버지! 얼레리 꼴레리 놀리면 어쩌시려고요?”

“나이가 몇 인디.”

 

약방에 감초는 1되에 2천원이다. 마을분이 감초를 사러왔다. 3천원어치 주문에 4천원어치를 준다.

 

“맛있는 감초여. 베트남, 필리핀산은 써서 못 먹어.  폴딱폴딱 뛰어.”

“3천원어치 주문했는데 4천원어치를 줘도 되나요?”

“많이 줘야지, 깍쟁이 짓하면 안 돼.”

 

세상에 약재 종류도 많다. 별의별 약재가 다 있다. 강엿도 약이다. 검은엿으로도 불리는 강엿은 찹쌀 죽에다 엿기름가루를 넣어 삭혀 물을 떠내어 조려 굳혔다. 강엿은 위장병과 감기, 기관지천식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예까지 오랜만에 왔는데 입맛도 못 다시고가서 어쩌까이~"

 

아주머니 세 분이 약재를 사러오자 고향 감나무집 딸내미들이 왔다며 팍팍 가격을 할인해준다. 참 보기 드문 진기한 흥정이 오간다. 상인과 손님이 뒤바뀐 것이다. 상인은 더 주겠다고 우기고 손님은 그냥 됐다며 사양한다.

 

“많이 안 줘도 돼.”

“많이 줘야지 왜 그래.”

 

오랜만에 서로들 안부도 묻고 웃음꽃이 피었다. 거래가 끝나자 서로 헤어지는 아쉬움에 몇 번을 인사를 나누곤 한다. 약다리 할아버지는 찾아준 고마움에 못내 아쉬워하며 좌불안석이다.

 

“예까지 오랜만에 왔는데 입맛도 못 다시고 가서 어쩌까이~”하더니 5년근 수삼 3뿌리를 챙겨들고 달음박질이다. 아주머니들은 “어, 이거 왜 이럴까?”라며 한사코 거절한다. 할아버지는 기어코 건네주고서야 돌아섰다.

 

“국동에 사는 외사촌들이야. 형제간에 챙기고 살고, 공도 안 잊어 불고 살고, 그게 사람 사는 모습이야.”

 

재래시장에는 베푸는 정과 나눔의 삶이 있다. 추석이 가까워졌다. 돌아오는 추석명절에는 우리 이웃도 한번쯤 돌아보고 형제간에 정도 나누는 넉넉하고 훈훈한 추석명절이 되길 빌어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약다리(여수 서시장 충무교), #여수 서시장, #추석, #에누리, #나눔의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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