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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으려면 3시간은 기다려야한다. 바지선에 밧줄을 풀었다. 전어배가 불을 밝히고 그물을 옮겨 싣는다. '자망'이라 부르는 300m 그물 두 틀이다. 느낌이 좋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비 때문에 내일이 되어야 알 것 같다는 어촌계장의 전화 목소리가 떠올랐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새벽길을 달렸다.

 

이런 날이면 하늘은 아기얼굴처럼 해 맑고 물고기도 잘 잡혔다. 소나기가 내린 탓에 전어가 포구 가까운 곳에 몰려들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선무당쯤 되었단 말인가. 예상이 적중했다.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망덕포구에서 5분쯤 달렸을까. 벌써 불을 밝히고 그물을 걷는다. 포구에서 반딧불 마냥 반짝이던 불빛이다. 그물에 걸린 전어가 은빛으로 반짝인다. 동쪽 하늘이 열리면서 새벽바다를 비추던 전어배 불빛이 희미해진다.

 
귀천 없이 좋아하는 '전어'
 

전어는 '錢(돈 전)魚, 全(온전할 전)魚, 剪(자를 전)魚' 등 다양하게 불렀다. <난호어묵지>와 <전어지>에는 '錢魚', <자산어보>에는 箭(살 전)魚라 했다. 지역에 따라 새갈치·대전어·엿사리·전어사리 등으로 불렀다.

 

가장 독특한 이름은 동해안에서 불리는 '어설키'다. 가장 기억에 남은 이름은 서유구의 <전어지>(佃漁志)에 소개된 유래다. '전어는 기름이 많고 맛이 좋아 상인들이 염장하여 서울에서 파는데, 귀한 사람이나 천한 사람이나 모두 좋아해 사는 이가 돈을 생각하지 않아 전어(錢魚)라 했다'고 한다. 대나무에 10마리씩 끼워서 팔아 箭魚라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전어는 청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충청도, <신동국여지승람>에는 충정도, 경상도, 전라도 및 함경도 해역에서 잡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어축제가 개최되는 곳만 꼽아도, 인천 소래포구, 서천 홍원항, 광양 망덕포구, 마산 어시장, 부산 명지어시장 등이다. 이쯤이면 서해와 남해를 아우르는 생선임에 틀림없다.

 

 

<자산어보>에는 '큰 놈은 한 자 정도로, 몸이 높고 좁으며, 검푸르다.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 흑산에서도 간혹 나타나나 그 맛이 육지 가까운 데 것만은 못하다'라고 적고 있다. '그 맛이 육지 가까운 데 것만은 못하다'는 표현에 숨이 턱 막혔다. 그도 망덕포구 전어 맛을 본 것일까.
 
한강 하류의 소래, 강화, 금강하류 비응도, 섬진강 하류 망덕, 낙동강 하류 모두 전어를 많이 잡았던 곳들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먹이가 풍부한 지역이다. 봄철 산란을 해야 하는 전어들이 찾아드는 곳이다. 전어가 알을 낳고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가을철, 이곳에서 전어를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섬진강과 한강을 제외하고는 물길이 막혔다. 섬진강이 어떤 강인가. 지리산을 굽이쳐 흐르고, 깨끗한 곳만 찾는 은어가 서식하는 곳이다. 전국의 전어가 망덕포구 전어로 둔갑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망덕포구 외망리 강순종(65) 어부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다. 정약전의 이야기를 확인한 셈이다. 정약전도 흑산도와 우이도에서 어부이야기를 듣고 적었을 것이다.
 
'외망리 사람들'의 기억, '망덕포구'
 

 

140여 호가 살고 있는 망덕포구 '외망리', 30여 척의 작은 배로 전어를 잡고 일부 주민들은 횟집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1/3에 불과하다. 포구에서 민물장어를 20~30관이나 잡았던 적도 있다. 너무 많이 잡아 시장을 전전하며 사흘은 팔아야 했다.

 

바다에서 고기는 흥청망청 나왔지만 시세가 없었다. 광양제철이 들어서기 전 이야기다. 이곳 사람들에게 기억된 시간은 '제철'이 기준이다. 제철이 들어서기 전과 후를 비교하는 것이다. "제철이 들어오기 전에는 황금어장이여, 노다지가 따로 없었어." 겨울철에는 김 하면 되고, 봄철에는 실뱀장어 잡으면 됐다. 여름철에는 장어 잡으면 되고 가을철에 전어를 잡으면 됐다. 요즘 전어 철이면 망덕포구 개들도 울고 돼지들도 운다. 주인이 전어잡이를 하는 통에 때에 맞춰 먹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금년 외망리 어민들은 전어잡이를 8월 1일부터 시작하였다. 10월말까지는 계속된다. 5월과 6월이 산란기간이다. 그때는 금어기라 잡을 수 없지만 맛도 없다. 산란 후 살이 차는 시기가 가을철이다. 조림용인 병치, 조기 등은 알밴 것들이 좋지만 활어를 먹으려면 알 낸 후가 좋다. 10월에 잡은 전어를 바로 냉동 보관해 두면 1년 내내 구이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기사는 '망덕포구의 전어잡이2- 전어와 며느리' 입니다.


태그:#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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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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