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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로 밤잠을 설친 게 몇 날이었는지 ...   유난히도 무덥고 길게 느껴졌던 올여름, 좀처럼 꺾일 것 같지 않던 폭염의 기세도 절기 앞에선 더 어찌하지 못하고 꼬리를 내린 듯 새벽녘엔 선선한 기운에 이불을 끌어 덮게 된다. 

모기입이 삐뚤어진다고 하는 처서도 지나고 농작물에 이슬이 맺힌다는 본격적인 가을 절기인 백로도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는데 지구온난화현상 때문인지 모기와의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여름의 막바지, 강렬한 태양이 곡식을 영글게 하고 과실을 곱게 물들일 이맘 때 즈음이면 푸성귀들의 놀이터였던 어머님의 텃밭은 몸단장을 하고 새 생명을 잉태할 준비를 서두른다.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좁쌀만 한 김장용 무와 배추씨앗을 품어 싹을 틔우면 어머님의 손길은 갓난아기를 돌보 듯 사랑과 정성으로 자식들의 먹을거리를 길러내신다.

화단 같은 텃밭에서 생산된 어머님 표 고추와 가지 그리고 호박
 화단 같은 텃밭에서 생산된 어머님 표 고추와 가지 그리고 호박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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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에도 상추, 고추, 가지, 시금치, 콩, 파, 호박 등 어머니 표 무공해 채소들은 세 아들네로 직송돼 식탁을 풍성하게 해줬다. 정성으로 키워서 일까 야채가게에서 사다 먹는 것과는 다른 맛이 혀끝에서 느껴진다.   

지난번에 가져온 것들을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어멈~ 저녁 안 먹었으면 먹지 말고 기다려 상추 뜯어서 보낼 테니 이번이 마지막이야~” “뭘~  또 보내세요~” 라는 말이 체 끝나기도 전에 당신 하실 말씀만을 하시고는 뚝 끊어버리신다.

몸에 좋은 것이면 뭐라도 자식들에게 먹이고 싶어 하시는 어머님의 간절한 마음이 목소리에서 베어난다. 전화를 받고 거의 1시간이 흘렀을 때 현관 벨이 울렸다.

남편의 양손엔 커다란 봉지를 비롯해 올망졸망한 몇 개의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얼른 받아 풀어보니 갓 씻어 보내셨는지 연녹색의 상추가 물기를 머금은 채 소쿠리에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어머님께서 손수 씻어서 보내주신 상추
 어머님께서 손수 씻어서 보내주신 상추
ⓒ 김정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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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도 참... 송구스러워서 어찌 먹으라고 며느리에게 이렇게 까지 해서 보내셨을까~"순간 많은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운다. “난 이렇게 해드리지 못했는데... 정말 우릴 끔찍이 사랑하시는 구나~” 또 한편으론 “어멈아~ 너도 보고 배워 이대로 하거라 ~” 하시는 것 같기도 했다. 

가정교육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보여주는 것이라더니 ...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다른 봉지엔 고추와 가지 그리고 애호박이 담겨 있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시선을 끌 정도의 상품가치와 볼품은 없었지만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다.  

자식들한테 뭔가 받기만을 기대하셨다면 늘 충족되지 못함으로 인해 고부간에 갈등만이 빚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머님은 남다른 방식으로 며느릴 일깨워 주셨다. 주는 기쁨과 받는 행복을.

그리고  당신을 본받아 하찮은 것일지라도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자식들을 보면서 흐뭇해 하셨을 것이다.  


태그:#텃밭, #가정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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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글쓰기를 좋아하는 52세 주부입니다. 아직은 다듬어진 글이 아니라 여러분께 내놓기가 쑥스럽지만 좀 더 갈고 닦아 독자들의 가슴에 스며들 수 있는 혼이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특히 사는이야기나 인물 여행정보에 대한 글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이곳에서 많을 것을 배울 수 있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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