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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일인 8월 29일 발간 예정이던 친일인명사전이 늦춰졌습니다. 이에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이 발간 연기를 하기까지의 사연과 현재 진행 상황을 알리는 글을 썼습니다. [편집자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29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에서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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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일인 8월 29일 출간 예정이던 친일인명사전이 다소 연기됐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전 출간을 고대하며 온갖 지원과 관심을 아끼지 않으신 시민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다.

8·15해방부터 치자면 63년, 1948년 반민특위 발족으로부터 60년, 임종국 선생의 <친일문학론>이 출간된 지 42년, 1991년 2월 민족문제연구소(소장 임헌영)가 창립된 지 18년,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위원장 윤경로 한성대 총장)가 발족한 지 7여 년. 중요한 역사의 변곡점을 이어오며 '친일청산'의 총결산으로 나아가고 있는 친일인명사전이 마지막 고비에서 작업이 다소 지체되고 있다. 아니 무거운 짐을 진 소가 마지막 가파른 고개를 넘고 있다는 것이 보다 실감나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는 지난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4776명의 명단을 발표하면서 8월말까지 사전을 발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수록대상자의 이해당사자로부터 석달간 이의신청을 접수했다. 사전 집필과 교열, 원 자료와 입력 데이터에 대한 반복적인 검수, 출판에 따른 편집 실무 등 오히려 일이 늘어나는 상황 속에서도 이의신청을 받은 것은 친일인명사전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다 확실하게 담보하기 위해서였다.

또 8월말 발간이라는 국민과의 약속도 엄중하지만, 최대한 관계자의 소명을 받아 최종 검토함으로써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경우가 없도록 하고, 위원회 또한 이 막중한 역사적 과업에 진지한 자기 책임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다는 것은 그 친일 행위를 떠나서 당사자는 물론 그 후손에게도 고통스럽고 버거운 역사의 짐으로 길이 남기 때문이다. 편찬위원회가 당초 2개월의 이의신청 기간을 한 달 더 연장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박정희·김창룡·최승희·김동인·이원수... 사회지도층 관련 이의신청 많아

192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최승희의 단발머리. 192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최승희의 단발머리.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 발표에 항의해 이의신청을 한 무용가 최승희.
ⓒ 한국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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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원회는 지난 석 달간에 걸쳐 120명에 대해 유족이나 기념사업회 등이 제출한 이의신청서를 접수했다. 이는 전체 대상자의 0.025%에 해당한다.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 보면 이의 신청 비율은 전체 수록 대상자의 매우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겠다. 또 이의신청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관계에 기초한 구체적인 소명자료가 첨부되지 않았다. 이는 위원회가 조사 발표한 수록대상자의 행적이 철저히 사실성에 기초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소명 자료가 첨부된 이의신청의 사연은 다양하지만, 이 경우에도 사전의 명칭을 바꿔달라거나(예컨대 '일제강점기 관료인명사전' 등) 해방 후 대한민국에서 기여한 공로도 같이 기재해 달라는 등 본질과 거리가 있다는 느낌을 주는 사안이 대다수였다.

기구한 가족사를 드러내며 하소연을 하거나, 이와 대조적으로 사회적 위세를 풍기며 '무슨 자격으로 친일인명사전을 감히 만드느냐'며 항의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른바 '민족지도자'니 '사회지도층 인사'로 불렸던 이들에 대한 이의신청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 볼 일이었다.

전직 대통령인 박정희를 비롯해 김창룡 전 육군특무부대장, 김성수 전 부통령, 현상윤 전 고려대 총장, 황신덕 추계예술대 설립자, 무용가 최승희, 불교계의 이종욱, 소설가 김동인, 아동문학가 이원수, 사학자 이병도, '시일야방성대곡'을 쓴 장지연, 거부 민영휘 등 우리 역사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거나 지금도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이들과 관련해 이의신청이 두드러졌다.

종교계의 경우 교단 조직 차원에서 이의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가톨릭서울대교구가 성직자와 교인 7명에 대해, 천도교중앙총부에서 교인 30명 등에 대해 교단 차원에서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것이다.

그런데 가톨릭의 경우 2000년 대희년 때 주교회의가 일제강점기의 친일 과오 등을 참회했으며, 천도교 또한 2005년 청년회·여성회 등이 친일 참회선언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교단 내에서도 친일문제를 둘러싸고 상이한 시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판검사를 지낸 법조계 인사와 관련해서는 15건이라는 상대적으로 많은 이의신청이 접수되었다.

이의신청인(대부분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상자의 유족)과 면담으로 시작해 이의신청의 모든 절차를 매듭짓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정력이 요구된다. 하물며 친일문제가 없었다면 결코 옷깃 한 번 스치지 않았을지도 모를 유족과 함께 친일역사를 고통스럽게 대면하는 것임에랴!

이의신청 최종심의 신중하게... 대규모 고문변호인단 구성 

 국가쇄신국민연합 소속이라고 밝힌 보수단체 회원들이 29일 오전 '친일인명사전 수록대상자 명단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는 서울 중구 한국언론재단 기자회견장앞에서 '애국가 만든 안익태가 왜 친일파냐' '박정희, 유관순도 친일파냐'  '너희들은 빨갱이냐'라며 고함을 치며 항의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친일인명사전 수록 대장에 명단 발표에 항의하고 있는 보수단체 회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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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신청과 최종 심의까지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이의신청인 면담과 관련 행적 제공 및 이의 신청 절차 안내- 이의신청 접수-이의신청 사항에 대한 사실 검토- 전문분과위원회의 심의- 상임위원회의 결정- 결정이유서 작성과 통보' 등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인물조각으로 치자면 얼굴의 세부 특징을 마지막으로 다듬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완성을 향한 최후의 집념어린 작업인 만큼 신경과 역량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위원회는 이의신청 접수를 시작하면서 귀족·경찰·군·관공리·사법·교육학술·언론·문학·음악·미술·연극·영화·개신교·가톨릭·불교·천도교·유림 등 각 전문분과위원회를 소집하여 이의제기의 타당성을 심의하고 있다.

각 분야별로 이의신청사안을 모아 전문 분과에서 심의를 하고, 각각의 이의신청 사안에 대해, 기왕에 확인된 사실이라 할지라도 다시 꼼꼼하게 조사 검토하는 과정이 반복되고 있다. 위원회는 9월 중 인용 기각 보류 등 최종 결정을 공지하는 한편 관련자에게도 통보할 예정이다. 이 같은 검증작업 때문에 8월 29일로 예정했던 친일문제연구총서(전 17권) 중 1차분 인명편 3권의 발행은 다소 연기가 불가피해졌다.

예견을 못한 바는 아니나, 복병도 있다. 이미 화가 장우성 유족 측이 '친일인명사전 발행 및 게시 금지 가처분소송'을 걸어 재판이 진행 중이며, 추가로 같은 성격의 소송을 준비하는 유족도 있다. 친일청산 등 과거사 청산에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친일 후손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친일인명사전 출간을 막기 위한 마지막 발목잡기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승냥이처럼 붉은 혀를 날름거리는 현실에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한다는 그것만으로 사전편찬 관계자들을 '친북좌익 빨갱이'로 몰아가는 수구세력의 방해공작은 글로 다 쓰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 때문에 위원회가 이의신청이 기각된 연고자들이 제기할 각종 소송이나 수구세력의 부당한 인신공격을 대비하기 위해 대규모 고문변호인단을 구성하고 있는 중이다.

친일인명사전이 가파른 역사의 고비에서 가쁜 숨을 더 내쉴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사정이 여기에 있다. 물론 위원회가 사실들을 재검증하고 신중을 기하는 것은 이러한 발목잡기와 맹동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역사에 대한 자기성실성과 책무감의 발로이다.

건국절 기념하면 김구 선생은 반국가사범 된다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국민행동본부,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한민국사랑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보수단체회원들이 1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건국60주년 기념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사진과 태극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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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시국은 과거 친일세력이 득세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있다. 오직 반공만이 절대 가치인 수구 세력은 8·15의 진정한 의의는 1945년의 광복절이 아니라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에 있다면서, 8·15를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고쳐 기념해야 한다면 거품을 물고 있다. 여기에 실용(實用)아닌 실용(失用)으로 빠져버린 이명박 정권이 장단을 맞추고 있다.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치기하는 것은 항일선열에 대한 모독이자 추악한 색깔론의 부활이며 지금껏 기득권을 유지해 온 친일파와 그 후계들을 다시 애국자로 둔갑시키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이 전 민족적 해방을 가져온 8·15보다 대한민국의 수립의 8·15를 기념하자는 것은 대한민국은 일제와 항일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자주독립국가가 아니라 해방 후 좌익과 투쟁하면서 세운 반공국가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주입하기 위해서다.

이 경우 일제 강점기 악랄하게 친일을 했더라도 해방 후 빨갱이만 때려잡으면 반공애국투사이자 건국공로자로 둔갑한다.

김구 선생이나 분단정부 수립을 반대한 독립운동가는 사실상 대한민국 건국의 적, 반국가사범이 되는 셈이다. 반면 친일파를 대한민국에 온존 육성시킨 독재자나 만주군 장교 출신의 독재자를 민족의 영웅으로 미화시키는, 그야말로 '쥐구멍에 홍살문 세울' 작태가 벌어지고 있다. 친일파를 위한 범죄의 재구성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엄중한 현실 앞에서 친일인명사전의 역사성과 현재적 의의는 더 엄중할 수밖에 없다.

백 척 낭떠러지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담대함과 깊은 밤 눈길을 조심스레 밟아가는 신중함이 어우러진 '호시우보'야말로 사전 편찬과정을 적절하게 표현해주는 용어이다. 다소 시간은 지체되었지만, 사전은 기필코 나오며, 그 기나긴 여정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만해 한용운의 반구십리를 되뇌이며 사전 편찬은 종착점을 향해 가고 있다.

백리를 가려면 구십 리가 반이라네
시작이 반이라던 우리들은 그르도다
뉘라서 열나흘 달을 온달이라 하더뇨

덧붙이는 글 | 박한용 기자는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http://www.minjok.or.kr 02) 969-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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