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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렴계곡
▲ 수렴계곡 물줄기 따라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렴계곡
ⓒ 김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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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 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길은 고행의 길이며 수행의 길이요, 인내의 길이며 순례의 길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길을 걷는 의미는 다릅니다.

지난 23일 오전 8시 30분, 김포공항에서 출발한 투어버스는 양평을 지나 홍천을 거쳐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설악산국립공원 백담분소에 도착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용대리까지는 4시간 정도. 용대리 매표소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옥수수였습니다. 강원도 하면 옥수수지요. 성질 급한 이는 벌써 옥수수로 피리를 불더군요.

용대리 셔틀버스
▲ 용대리-백담사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용대리 셔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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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대리-백담사 가는 길은 인산인해

우리 일행은 용대리 매표소 부근에서 산나물 정식으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감자조림과 산나물 3가지, 두부조림, 깻잎 장아찌, 그리고 된장찌개. 강원도 냄새가 나는 감자와 산나물은 산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보약 같았습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점심은 10분도 안 되어 후다닥 해치웠습니다.

오후 1시 10분, 매표소에서 백담사 가는 표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줄을 섰습니다. 백담사 가는 편은 셔틀버스였는데 요금은 1800원. 방학이 끝나가는 주말이라서 그런지 전국에서 모인 산행 인파는 300m~400m 이상 이어졌습니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운행하는 서틀버스 정원은 44명이었던 것 같습니다. 10분마다 출발하는 셔틀버스지만 우리 일행은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숲기행
▲ 숲기행 숲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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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 익어가는 백담계곡

오후 2시, 드디어 백담사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지요. 용대리에서 백담사 입구까지는 7km 정도. 여름의 마지막 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백담계곡은 꼬불꼬불 이어졌습니다. 셔틀버스 차창으로 기암괴석과 8월의 나무들이 어우러졌습니다. 그리고 숲을 이룹니다. 백담계곡을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더군요. 

겨우 버스 한 대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길옆에는 기암괴석이 이어졌습니다. 금방이라도 우르르 무너질 것 같습니다. 아니, 금방이라도 백담계곡 물 속으로 버스가 통째로 굴러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버스 운전수는 꼬불 길을 잘도 달립니다. 덜커덩거리는 빗길, 내설악 백담사 코스는 여름의 꼬리를 드러냈습니다. 7km를 15분에 달렸습니다. 이 길을 산행으로 걸으면 1시간 2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합니다. 드디어 백담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거북이등 등산로
▲ 등산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돌길 거북이등 등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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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등처럼 갈라진 돌을 밟고... 진흙길 따라

오후 2시 40분,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더군요.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 메고, 우비를 썼지요. 우리는 수렴동계곡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내설악 도보 여행이 시작됩니다. 우리의 여정은 2박 3일입니다.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 산행하고 절집에서 하루를 묵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다음날 봉정암까지 산행을 한 후, 대청봉을 오르고 난 후, 봉정암 절집에서 또 하루를 묵을 예정입니다. 하산은 봉정암에서 곧바로 백담사로 내려오는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백담사에서 오세암으로 이어지는 길은 빗물에 흠뻑 젖었습니다. 황토길도 질펀히 젖어 있었고, 검은 진흙길도 질펀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넓적한 돌을 다져놓은 숲길도 촉촉이 젖어 있었지요. 계곡을 가로지를 때면 철 계단을 밟고 건넜습니다.

수렴동계곡
▲ 수렴동계곡 수렴동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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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돌 계곡, 그리고 설악의 향기

하늘로 치솟을 듯한 소나무와 단풍나무 이파리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우중에 푸른 숲을 가로질러 걷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설악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야생화들도 빗 속에서 비시시 웃으며 길손을 맞이합니다.

야생화
▲ 설악에 핀 야생화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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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모르지만 어머니께서 저녁을 하실 때면  꽃잎을 활짝 드러냈던 빨간 붓꽃 같은 야생화가 길을 안내하더군요. 수렴동 계곡은 물이 불어났습니다. 그러니 물소리가 얼마나 우렁차겠습니까? 동글동글한 돌도 각양각색입니다. 설악의 향기 속에 푹 빠질 수 있었습니다.

영시암 약수는 길손의 목을 축여 준다.
▲ 영시암 약수...길손 목 축여준다 영시암 약수는 길손의 목을 축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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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30분쯤 걸었을까요? 3.5km 정도의 길을 걸으니 영시암에 도착했습니다. 산중에서 만나는 절집 약수는 길손의 목을 축여 줍니다. 절집은 잠시 나그네들의 다리를 쉬게 하는 쉼터가 되기도 합니다. 절집에 들려 삼배를 하고 약숫물을 받아 목을 축여 봅니다. 설악에 자리 잡고 있는 영시암은 고요함이라기보다 길손들이 줄을 이으니 그저 어수선 하기만 합니다.

영시암 절집 앞에는 겨울김장 배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습니다. 중생들을 위해 겨울을 준비하는 절집의 풍경이 포근해 보입니다.

영시암 텃밭
▲ 영시암 텃밭 영시암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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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위 철계단
▲ 계곡위에 철계단이 놓여있어 산행이 수월하다 계곡위 철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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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버리고자 떠난 길인데 왜 이리 배낭이 무거울까?"

영시암에서 오세암으로 향하는 길은 다소 급한 경사가 이어졌습니다. 한 고개를 넘으니 또 한 고개. 여기서부터는 산행이 아니라, 오르고 내리는 인생길입니다. 우비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땀인지 빗물인지 모르겠습니다. 돌길이 이어집니다. 누가 만들어 놓은 길이 아니라, 사람이 밟고 지나가면 길이 됩니다. 계곡은 보이지 않는데, 물소리가 가슴을 때립니다.

비가 내리니 쉴 곳도 없습니다. 그저 힘들면 느릿느릿 걸을 뿐이지요. 배낭은 어찌 그리 무거운지. 2박 3일 떠나는 길인데 무엇은 그리 많이 챙겨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덜먹고 저금 덜 자고, 조금 덜 낭비하고, 조금이나마 욕심을 버리고자 떠난 길인데도, 배낭이 왜 이렇게 무거운 것일까요.

수행자의 법도에 어긋난 것 같군요. 가파른 오르막길이 2.5km 정도 이어지더군요. 그러나 설악의 길은 더디기만 합니다. 영시암에서 오세암까지는 1시간 30분 이상을 걸어야만 했으니까요. 그리고 오름과 내림의 곡선을 그어댔습니다.

오세암 등불
▲ 오세암 등불 오세암 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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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물에 얼굴 씻고 새우잠 자는 길손 

가장 높은 봉우리를 넘고 나니 산중에 등불이 대롱대롱 걸려 있습니다. 목탁소리도 들려왔습니다. 목적지까지 50m 남은 것 같은데 안개비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높은 봉우리에 서니 망경대로 이어지는 길이 나 있습니다. 카메라도 빗물에 젖었나 봅니다.

오후 6시, 산속은 어두컴컴합니다. 드디어 오세암 절집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에 도착했습니다. 대롱대롱 이어진 등불이 나그네를 인도 합니다. 백담사에서 오세암까지는 3시간 정도. 3시간의 도보기행이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닌데 길손의 발걸음은 왜 그리 무거운지 모르겠습니다. 짊어진 배낭이 무거웠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발걸음이 느린 길손의 탓이겠지요. 

작은 절집은 북새통입니다. 다음날 열리는 점안식으로 전국의 불자들이 다 모인 것입니다. 우리 일행은 계곡물에 얼굴을 씻고, 절집에서 저녁 공양을 했습니다. 방을 배정 받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그저 새우잠을 청해야 합니다.

불편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겠지요. 사치를 부리고자 하는 욕심 말입니다. 설악의 산속 마지막 여름밤이 깊었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설악의 절집에는 계곡물 소리가 마치 파도 소리 같습니다. 그러니 어디 잠을 청할 수 있었겠습니까?


태그:#용대리, #오세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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