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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묘지에 꽃상여가 들어 왔네, 그려. 이번엔 또 누굴 싣고 왔나?"


지금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는 지난 역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새로운 도약을 염원하는 뜻으로 국가보훈처가 마련했다는 설치예술제가 한창입니다. 그러나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죽어간 넋을 위로하고자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예술작품이 무척 흉물스럽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손을 모은 형상의 경건한 추모탑을 상여가 앞에서 가리고 있고, 묘역 주변은 온통 치렁치렁한 리본으로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설치한 사람의 의도를 폄하할 의도도 능력도 없지만, 하나 분명한 것은 5·18 민주묘지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점입니다.

 

입구 들어서부터 추모를 상징한다는 리본 터널을 거쳐야 하는데, 참배객으로 하여금 경건함을 느끼도록 만들기는커녕 시선을 어지럽힐 따름입니다. 추모의 글을 남기도록 리본에 펜을 매달아두었지만, "5월 영령을 추모한다"는 내용보다는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글귀와 "웬 건국절 홍보물?" 등 설치예술제 취지를 부정하는 내용이 훨씬 많이 적혀 있습니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설치물 가운데 도드라지게 박아놓은 큼지막한 글귀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건국 60년'. 역사니 도약이니 들먹이며 고상한 취지를 들이대고는 있지만, 왜 국가보훈처가 이런 행사를 마련했는가, 그 속뜻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상여 나가려면 일주일이나 남았네

 

기실 5·18 광주민중항쟁은 임진왜란 때 결연하게 일어선 의병 정신을 모태로 동학농민운동-일제강점기 항일독립운동-4·19 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견인한 역사적 사건으로 규정됩니다.

 

우리 민족의 불굴의 저항을 통해 맞게 된 광복을 연결시킨다면 모를까, 5·18의 역사적 의미에 빌붙어 학계에서조차 논란이 끊이지 않는 건국절을 홍보하고 있으니 생뚱맞기 이를  데 없습니다.


이미 5·18이라는 세 글자는 우리의 기억 속에 용서와 역사적 화해를 상징하는 숫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0년 5월 당시 외쳤던 "유신 잔당 물러가라" 등의 구호에 께름칙할 정치인들의 기념식수가 버젓이 묘역 내에 자리하고,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방문 자체를 꺼렸던 정당에서조차 앞다퉈 찾는 민주 성지인 까닭입니다.


얼마 전 개관한 묘역 내 기념관에서도 당시의 가슴 아픈 상처를 고스란히 보여주면서도, 5· 18의 역사적 의의와 후세인들이 지녀야할 역사의식을 꼼꼼히 챙기고 있습니다.

 

예컨대, 5·18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의 정서에 맞도록 애니메이션 등을 새로 제작해 연중 상영하고, 내부에 단출한 전시 공간과 독서공간 등도 갖춰 놓았습니다.

 

'건국 60년'을 기념하기 위해 억지춘향식으로 꾸며놓은 난삽하고 어수선한 묘역 중앙부와는 달리, 5·18의 현재 의미에 부합하도록 참혹했던 과거를 미래 지향적으로 승화시키는 현장이라 할 만 합니다.

 

참배객 대부분은 하루 빨리 철거하길 바라는 눈치지만, 이 어울리지 않는 '색동 상여'가 제 발로 나가자면 아직도 일주일(8월 31일까지 행사)을 기다려야 한답니다.

 

아예 몇몇은 "(5·18 묘지가) 이런 몰골이라면 다시는 이곳에 오고 싶지 않다"라고 잘라 말하기까지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비에 젖고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리본 구조물을 보면서 한결 같은 말을 내뱉습니다.

 

"이거 뭐 서낭당도 아니고, 음산하다 못해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무서울 지경이니 당최 들어갈 수가 있어야지."

 

덧붙이는 글 | 8월 24일에 다녀왔습니다.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


태그:#건국절 논란, #5. 18 민주묘지 설치예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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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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