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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길을 잡아채는 건 심사위원들의 호평이다. 소설가 황석영과 김인숙,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아래와 같은 말로 신인급의 작가에게 월계관을 씌워줬다.

 

"작가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군중의 소외감을 은유와 농담과 알레고리로 표현하며 소외의 무거움은 가볍게,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그려 나간다. 가벼움과 무거움을 이처럼 날렵하게 비벼내면서 동시에 공감을 얻어내는 작가의 솜씨는 신예답게 기발하고 패기만만하다."

 

지난 2004년 <피어싱>이란 작품으로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소설가적 재질을 인정받은 윤고은(28)이 한창훈과 김곰치, 박민규를 발굴해냈던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번 독자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돋을새김 시켰다. 수상작은 <무중력증후군>(한겨레출판). 상금은 5천만원.

 

'외로움은 최고의 비아그라다. 내 머리 위에는 긴 촉수가 솟아 있다. 송신탑과 같은 기능을 하는 안테나다'라는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소설 <무중력증후군>은 언제나 새로운 소식에 목마른 '뉴스 중독자'이자 전화영업으로 부동산을 판매하는 20대 청년 노시보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지루한 동시에 비루하기까지 한 일상을 사는 노시보. 그의 앞에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일정한 주기를 반복하며 달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 1개였던 달이 2개가 되고, 어느 날엔 3개가 되고 결국에 달의 숫자는 6개까지 늘어난다.

 

그러나, 정작 더 큰 문제는 달의 분화 혹은, 증식이 아닌 달 때문에 이상해져버린 사람들이다. 평생을 청소와 빨래 등 집안일만 해온 엄마는 "달을 찾으러 간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아버지의 희망이자 모범생이었던 형은 사법고시 준비를 걷어치우고, 요리사가 되려고 한다.

 

현대사회, 정상과 비정상이 경계는 어디에 있나?

 

이뿐만이 아니다. 노시보의 친구인 소설가지망생 구보는 소설을 작파하고, 해괴한(?) 기구를 판매하는 회사에 덜컥 입사해버리고, 직장 동료들은 달의 정기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요가에 몰두한다. 이른바 '무중력증후군'에 빠져버린 것이다.

 

무중력증후군에 빠져 이상행동을 보이는 사람은 비단 노시보의 주위 인물들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달이 2개, 3개로 늘어나면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범죄는 폭증하며, 폭력사태 역시 빈번해진다.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달로 이주하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심지어 "달의 토지를 분양한다"는 사기꾼들까지 생겨나는데….

 

이처럼 '늘어나는 달의 숫자=이상해진 사람들의 증가'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등식을 보여줌으로써 윤고은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통상 자신과 비슷하지 않은 것 혹은, 일상과 닮지 않은 것들을 '비정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다수와 소수라는 잣대만으로 세상을 재단해 소수에게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고 다수가 언제나 '정상'일 수 있을까? 현대사회란 이미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곳이 아닐까?

 

윤고은의 신작 장편 <무중력증후군>은 위에서 이어지는 의문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다름 아니다. 무중력증후군에 빠진 사람들(비정상)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정상) 중 누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쉽사리 내리기 힘든 결론은 소설을 읽으면서 찾아가는 게 좋을 듯하다.

 

윤고은은 책의 말미에 실린 '작가의 말'을 통해 "활자는 바이러스다. 백신은 없다"라는 문장을 씀으로써 앞으로도 소설을 통해 인간과 세상 탐구를 지속해나갈 것임을 선언했다. 이제 막 '문학의 길'에 들어선 20대 신예로서의 결의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은 "심각한 현실의 비애를 함축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못 활달한 유머를 통해 상대화하는 시각이 돋보인다. 이 소설 탓에 한국 소설의 밀도는 더욱 깊어졌고, 상상력의 자기장은 넓어졌다"는 격려를 전하는 것으로 윤고은의 결의에 힘을 실어줬다.


무중력 증후군 - 제1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윤고은 지음, 한겨레출판(2008)


태그:#무중력증후군, #윤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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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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