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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말복이라고요? 김서방하고 애들 데리고 갈게요!"

 

가을의 첫 절기인 입추(立秋)의 이른 아침, 여름휴가를 마치고 출근준비를 서두르는 아내는 갑자기 걸려 온 전화에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누구야?"

 

사실 아내에게 습관적으로 질문하지만 통화 상대방이 장모님이란걸 알고 있다. 분명 씨암탉을 준비할테니 와서 먹으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내일, 장모님 씨암탉 소집이다!"

 

매년 두세번씩 장모님은 씨암탉을 잡아 대추와 인삼 등 갖은 양념을 넣어 푹 삶아 사위들을 초대하신다. 큰아들에 딸 셋인 처가에서 아내는 둘째라...자라면서 집안 허드렛일을 가장 많이 감당했다고 가끔 추억어린 푸념을 늘어 놓곤 했었다. 카스테라빵 하나에 언니몫으로 반, 동생몫으로 반 나누면 자기는 늘 서러운 물만 마셨다고 회상하는 아내.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강철같이 살아오신 장모님을 품고 있는 착한 아내에게 장모님의 말 한마디는 군서열에 버금가는 절대자의 명령이다.

 

결혼 15년차인 우리 부부는 결혼 승낙을 받을때 장모님의 반대가 무척이나 심해 마음 고생을 많이 했었다. 가장 큰 반대 이유는 밑도 끝도 없이 사위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그땐 지역감정에 매몰된 무지한 정서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돼 더 오기를 부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알고보니 당신께서 다니던 회사에서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분 중에 전라도 분이 계셨는데 그렇게 까탈스럽고 못되게 굴어 '전라도' 말투만 들어도 이가 갈렸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 뿌리깊게 도사리고 있었다. 지금은 처가의 대표사위라는 별명을 가질만큼 돈독한 사이지만, 결혼 후 5년정도는 미운털이 고스란히 박힌 '전라도 깽깽이' 사위로 불편한 관계였다. 관계의 진전에는 계속 이어진 '장모님표 씨암탉 소집'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말복(末伏) 당일 '사위 사랑은 장모님'이라는 옛말처럼, 장모님은 백년손님으로 회자되는 사위들을 자연스럽게 소집해 딸과 백년해로하기를 소원하면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종일 직접 기른 닭을 손수 잡아 손질하셨을 것이다.

 

울산의 명소인 간절곶 가는 길 좌측에 위치한 처가는 회야강과 바다가 만나는 작은 농어촌이며 '강회횟촌'으로도 유명한 '강양'이라는 마을이다.

 

"할머니, 저희들 왔어요!"

 

아들녀석의 우렁찬 인사소리에 활짝 열린 녹슨 철대문 안은 금방 활기가 넘친다.

 

"대용이 왔나~!"

 

짧지만 정감어린 대꾸에 옆뜰 우물가로 가 보니, 장모님은 반쯤 열린 솥단지 곁에서 비오듯 땀흘려 가며 먹기 좋게 내 놓으시려고 한솥 가득 씨암탉을 삶고 계신다. 처형과 아내가 대략 짐 정리를 마친 후 급히 일손을 거들고 나서니 본격 잔치가 시작된다.

 

잘 삶아진 푸짐한 씨암탉을 쟁반에 큼지막하게 담고, 황금색 진한 국물을 대접에 곁들여 좁은 마루에 한상 차려내면 여인네들은 통통한 닭살을 먹기 좋게 손으로 일일이 찢어 댄다. 텃밭에서 직접 재배해 담근 배추김치에 말아 먹는 맛이 일품이라 손가락을 치켜 세우면 "맛있게 자시라!"고 수줍은 손사레를 치신다.

 

시원한 해풍을 전달하는 선풍기가 쉼없이 도는 쟁반 옆에서 옆동네 서생이 고향인 장모가 입을 연다. 제법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 이곳 박씨집안에 시집 온 후 시부모 부양하며 갖은 고생을 다 해 한두마지기씩 논밭을 이 악물고 장만하며 1남3녀를 키워 냈으나 이젠 늙고 병들어 한두마지기 논을 허망하게 팔고 있다는 공수레공수거 이야기들이 반찬으로 계속 올라온다.

 

장인어른과 아이들의 개인접시위에도 가끔씩 웃음꽃이 피어 난다. 장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다. 잡은 고기를 손질하다 안구에 비닐이 박혀 시력을 잃은지 벌써 20년이 훨씬 지났다. 지금처럼 뼈를 발라 낸 닭고기를 드실때도 눈길은 늘 정면에서 약15도 정도의 상공을 응시한다. 젊어서 유도를 하신 장인은 칠순이 넘은 지금도 논농사를 직접 하시고 동네 경로당 살림을 책임져 담당하실 만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분이다. 요즘은 당뇨수치가 높아 좋아하던 술도 끊은 후 말수가 적어진게 걱정이었는데 활짝 웃는 웃음을 다시 확인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볍다. 

 

준비 해 간 수박을 쪼개 먹고 나니 벌써 소집해제 시간이다. "다음번 소집은 12월달에나 되겠네?" 병아리를 사서 약 3개월정도 키워 소집해 왔던 주기를 계산하며 묻는 처형의 질문에 "사료값이 너무 올라 걱정이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한포대에 7000원하던 게 지금은 1만1000씩이나 한다고 걱정하시는 이야기에 그저 다 자란 씨암탉과 황금빛으로 우려 낸 국물만을 생각한게 죄송스러워진다.

 

"아빠, 씨암탉의 천적은?"

 

돌아오는 차 안에서 뜬금없는 딸아이의 질문을 받았다.

 

"뭔데?"

"정답은... 사위!"

 

부족한게 많았던 옛날부터 병아리를 깰 씨암탉마저도 사위에게 잡아줬던 장모들의 애정을 이시대에 다시 경험하면서 다음 방문땐 사료 한포대 짊어지고 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본다.


태그:#장모님, #씨암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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