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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시대에 만화만은 한참 늦다. 그건 아직 흑백만화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가 굳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너무 디지털화된 만화는 보기 낯설기도 해서다. 

 

웹툰이 많이 발전했다지만 아직 주류까지는 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제부턴가 흑백만화보다 컬러만화가 눈에 익숙하다. 꽤 오래 앞서 나왔던 만화도 색을 입혀 다시 출간되기도 하니 이제 그 흐름은 점점 빠르게 몰아치지 않을까 한다. 그림 그리는 작가가 여기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도태될지도 모른다.

 

만화에 펜 선이 많이 들어가 스캔을 받아서 작업하는 만화에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던 작가 박흥용도 이번엔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화를 그렸다. 그림을 스캔해 단순히 색을 칠하는 선에서 벗어나 마치 실제 같은 배경과 인물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나타냈다.

 

작가가 책에서도 밝혔듯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그리면 편리하지만 프로그램 실수로 작업물이 한꺼번에 날아갔을 때는 허탈하기도 하다. 또 컴퓨터로 하면 그리는 시간이 빠르겠다고 생각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박흥용이 5년 만에 낸 작품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황매 펴냄). 작가가 어릴 때 모습과 사는 곳 풍경이 들어가 있는 듯한 작품에서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건 소리와 소통이다. 우리가 어떤 이에게 말을 건네면 잘 알아들으면 좋을 텐데, 잘못 알아듣거나 전혀 엉뚱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소통은 그래서 어렵다. 쉬운 말로 하면 좋을 것을 사람들이 거기에 의미를 붙이다 보니 말은 점점 어려워진다. 

 

1969년 충청도 어느 시골마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소년들은 한참 성에 대해 관심이 많다. 소년들은 학교가 끝난 뒤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어른들이 논다고 뭐라 할까 봐 자기들끼리 불러내는 신호는 고무신을 눌러 내는 소리다.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어떤 상표 신발이 있느냐로, 고무신으로 누가 더 소리를 크게 내느냐로 우열을 가리기도 한다.

 

어느 날 동네사람 눈을 피해서 담배를 피우려고 형제 집 마당에 들어와 있던 한 여자. 분홍빛 치마에 굽 높은 신을 신은 여자는 마치 딴 나라 사람처럼 세련됐다. 바로 동네 유지인 빽구두 할아버지가 둘째 부인으로 데려온 여자였다. 그림 솜씨가 있었던 소년은 화투 그림을 그려주고 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빽구두 할아버지 둘째부인은 빽구두 할아버지 빼고는 누구와도 소통되지 않는다. 동네사람들에게는 늘 손가락질 받기 바쁘다. 소년도 마찬가지다. 친구들과도, 부모님과도 잘 소통되지 않는다. 

 

"이야, 너 그림 잘 그린다."

"가무를 참말 잘 하시네유. 이런 촌구석에서 썩긴 너무 아까운 거 같아유."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인정해 주며 소통한다.

 

둘은 우연찮게 모스 신호에 관심을 갖게 되고 하나씩 알아가며 재미를 붙이게 된다. 여자는 서글프다. 빽구두 할아버지 재산을 노리고 시집왔다는 동네사람들 손가락질. 무시하는 줄 알았는데 마음속으로는 큰 상처를 받고 있었다.

 

늘 자기편이었던 빽구두 할아버지가 앓아 누운 뒤론 여자는 자기 처지가 불안하다. 여자는 그런 한을 소년 앞에서 소리로, 춤으로 풀어놓는다. 

 

소년은 자전거를 열심히 돌리며 모스 신호를 보낼 전류를 생산한다. 땀을 듬뿍 흘려도 힘들지 않다. 여자가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참 모스 신호에 빠져 있을 무렵 스피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여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라 여기고 알아내려고 애쓴다. 면에 있는 전파사까지 가보지만 이름 모를 그 소리는 착청. 그러나 여자는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박흥용이 풀어내는 이 작품은 한때 텔레비전에서 해줬던 드라마 문학관을 보는 듯하다.

 

여자는 홀연히 떠나버린다. 소년은 다시 외롭다. 여자가 사주고 간 새 고무신으로 힘껏 바람소리를 낸다. 그 소리가 증폭되고 증폭되어 그에게 다다르길 바라며.

 

사랑, 야망, 배신, 성공 같은 주제는 박흥용 만화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를 작가주의, 리얼리즘(사실주의) 만화가라 부르는 것도 여기에 있다.

 

박흥용 만화는 독자입장에서 볼 때 그리 친절하지 않다. 그렇지만 보고 나면 많은 걸 생각하게 해준다는 면에선 굳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한 번에 읽어 덮지 못하고, 몇 번이고 책을 펼치게 만드는, 박흥용 작품이 가진 힘이다.


쓰쓰돈 돈쓰 돈돈돈쓰 돈돈쓰

박흥용 지음, 황매(푸른바람)(2008)


태그:#박흥용, #모스 신호,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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