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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가 아무리 짠순이라도 한 마리밖에 없는 씨암탉을 잡아내게 할 수 있는 힘은 사위밖에 없다. 예부터 사위는 백년지객(百年之客)이며, 사위사랑은 장모이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구슬방울이다.

 

그러나 미국사회는 사정이 다르다. 장모와 사위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장모는 오만하고 사나운 존재이며 심술쟁이로 그 이미지가 좋지 않다. 여자 쪽에서 이혼을 제기할 때는 장모가 뒤에서 조종하기로 소문이 나있다. 이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결하기 위해 10월 네 번째 일요일을 '장모의 날'로 정해 놓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여권이 강한 나라는 사위와 장모 사이가 나쁘고, 부권이 강한 나라일수록 시어미와 며느리 사이가 좋지 않다는 말이 있다. 미국에서는 장인과 사위가 공모해 장모를 골탕 먹이지만, 한국 사위들은 장모가 계신 쪽에 말뚝을 박아놓고 절을 하며 살아간다.

 

'질빵'은 짐을 지는 데 쓰는 줄이다. 지게에 매어 걸머지면 '밀삐(두 어깨에 거는 끈)'라 하고, 한쪽 어깨에 둘러메면 '외질빵'이라 부른다. 멜빵은 짐을 걸어 양쪽 어깨에 둘러메면 멜빵끈이 된다. 지게를 만들 때는 밀삐가 끊어지지 않도록 실이나 삼, 종이 따위를 비벼 섞어 꽈 단단히 매어단다. 요즘은 가방이 크고 끈이 튼실해야 사람 노릇을 잘하지만, 옛날엔 지게와 밀삐가 단단해야 농사꾼 체면이 섰다.

 

해마다 이맘때면 '사위질빵'이 피어나 옛 이야기를 나누자 한다. 낙엽덩굴식물로 언덕배기, 울타리, 관목 사이로 사정없이 뻗어 올라간다. 나무를 타고 닥지닥지 많이도 피어난다. 눈꽃처럼 하얀색이다가 아침이슬이나 비를 맞으면 우유빛처럼 빛난다. 이북에서는 '질빵풀'이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virgin's bower(처녀의 은신처)'라 부른다. 처녀가 숨어도 안심하고 좋을 만큼 덤불숲은 풍성하고 아늑하며 꽃 색은 이슬처럼 영롱하고 순결하다.

 

녹색 줄기는 여름이 깊어가면 차츰 밤색으로 변해간다. 줄기는 마디가 약해 잡아당기면 뚝뚝 끊어져 매가리가 없다. 질빵 노릇을 하기엔 지게 앞에 어린짐승이다. 그러나 사위가 처갓집 일손을 도우러 와 지게를 질라치면 장모는 이때부터 안달이 난다.

 

"아이고야, 우리 집 사위 허리 부러지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기야 허리를 못 쓰게 되면 남자 구실이 끝장난다는 것쯤이야 누가 모른다고 이 야단인가 싶다.

 

사위가 올 때쯤이면 '사위지게' 밀삐를 따로 만들었다. 허리가 약한 사위가 일하는 모습을 애면글면 보다 못해 안쓰러워 생각해 낸 방도다. 짐을 많이 실으면 금방 끊어지게 밀삐를 질빵 풀줄기로 바꿔 특별 제작해 사위 체면을 지켜낸 장모 사랑이 이보다 더하랴 싶게 따스하기만 하다.

 

'겉보리 서 말이면 처가살이 안한다'고 했다. 그런데 요즘은 장가도 가기 전에 혼수 문제로 처갓집 문지방을 빼려 들고 처가 덕을 보려고 안달을 하며 목을 길게 빼고 있다. 사위질빵 얘기를 듣고 웃다가도 그 속엔 질빵 끈을 잘 다스려 '혼자의 힘으로 자수성가 하라'는 깊은 뜻이 담겨 있음에 꽃물을 다시 올려다본다.

 

오늘도 사위질빵 흐드러지게 피어나 나무줄기와 돌담을 타고 무더위를 식히며 하얀 웃음을 짓고 있다. 어느새 질빵 속으로 장모님 목소리 환청되어  울려온다.

 

'이 사람아, 무거운 짐 지지 말고 쉬엄쉬엄 하게나.'

 

벌써 오늘이 입추이고 내일은 말복이다. 이 더위 지나면 질빵 끈도 더욱 탱탱하게 살이 오르고 가을도 멀지 않으리.

덧붙이는 글 | 다음카페 '북한강 이야기', 농촌공사 '전원생활', 네오넷코리아 '북집', 정보화 마릉 인빌뉴스에도 함께합니다. 

쪽빛강물이 흐르는 북한강이야기에 놀러오시면 농촌과 고향을 사랑하는 많은 임들과 대화를 나눌수 있습니다.


태그:#사위질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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