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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가 홍등가 옆에 농촌학생을 위한 순천학숙 건립을 추진하자, 반대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 홍등가 옆 기숙사 순천시가 홍등가 옆에 농촌학생을 위한 순천학숙 건립을 추진하자, 반대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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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순천시에서 원거리 통학하는 고등학생을 위한 기숙사 건립을 홍등가 바로 옆에 추진하고 있어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순천시에서 대표적인 홍등가로 이름난 일명 '웃장술집' 곁에 순수 시예산으로 '순천학숙' 건립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업은 “노관규 현시장의 선거공약 중 ‘순천대와 청암대를 잇는 교육문화벨트사업’의 일환으로 읍면지역 학생들의 교육비 절감과 저소득층의 생활안정, 타지역으로 학생유출을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순천시의 설명이다.

일단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기숙사 수용형태 및 장소선정 문제에 대한 교육관계자와 학부모, 시민들의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또 사전에 교육전문가 및 시민단체 등의 여론수렴을 거치지 않는 등 졸속으로 추진되었다는 비판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지난 95년 순천시와 승주군의 도농통합 이후 도심권 고교로 진학한 농촌학생들의 상대적 소외감과 불편이 계속 되어왔다. 해당되는 지역은 도심권과 먼 승주읍 등 7개 읍면으로 지난 2005년 고교평준화실시 이후 타시군으로 진학하는 사례도 증가했고, 또 지리적 접근성 때문에 벌교, 구례 등지로 빠져나가는 경우도 많다.

순천시는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35억7천만원의 시예산으로 부도난 모텔건물과 바로 옆 연립주택을 매입하여 시립도서관과 연계한 청소년문화광장까지 조성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번에 가장 논란이 된 것은 장소선정 문제. 이 모텔건물은 직선으로 140여m 거리에 홍등가가 있고, 모텔 앞 도로변에도 영업 중인 주점이 있어 교육시설 환경으로는 최악이라는 비판이 대다수다.

기자가 둘러본 지난 22일 밤 10시경 총37개의 업소 중 16개 업소의 간판등이 꺼져 있고, 나머지는 화려한 조명등 아래 여종업원들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주변에 모텔 등 숙박업소도 6개나 성업 중이다.

이 홍등가 거리는 인근 북부시장의 역사와 함께 오래된 곳으로 영업형태는 과거 서울의 ‘미아리’나, ‘청량리588’ 골목과 같은 곳.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많이 위축되었지만, 공급과 소비의 논리가 가장 적절하게 적용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가까운 시일 내에 사라지길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순천시는 영업지도를 통해 이곳을 정리하는 쪽으로 유도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강제적인 퇴출은 불가능하고 이상적인 판단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청소년유해환경 노출에 대한 우려에 대해 순천시는 홍등가와 직접 근접하지 않고 도로변 주점도 학생들이 이용할 가능성이 적다는 이유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하며, 충분한 대책을 세우고 있다는 답변이다.

홍등가 거리와 순천학숙이 들어설 모텔건물은 직선으로 140여m이고, 바로 시립도서관과 연계해 모텔 앞 부지에는 청소년문화광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 기숙사와 홍등가 주변지도 홍등가 거리와 순천학숙이 들어설 모텔건물은 직선으로 140여m이고, 바로 시립도서관과 연계해 모텔 앞 부지에는 청소년문화광장을 조성할 예정이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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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실험대상이냐?

하지만, 이 ‘순천학숙’을 찬성한다는 농촌지역 학부모들조차 장소선정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A면소재지 모 중학교 운영위원 L씨는 학숙 건립 추진에는 찬성하지만, 홍등가 옆 건립은 강하게 반대했다. “(그 장소에 건립하려면) 먼저 주변 정리부터 해야 한다”며 선결조건도 덧붙였다. 도농통합 이전 시행했던 '승주장학회'같은 장학제도 마련도 필요하다는 것.

순천시 김재임 여성농민회장(주암면 거주)은 “농촌학생을 배려한 시의 정책은 눈물겹도록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시가 추진하는) 순천학숙의 위치는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고등학교가 밀집된 장천동이나, 순천대 앞 군부대부지 등 적절한 장소선정에 대한 의견도 있다면서 “이왕이면 학부모들이 안심하고 보낼 수 있는 장소로 변경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책 같다”고 피력했다. 또 “가난한 농촌학생을 배려한 장학금제도 등의 도입이 더 필요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황전면 월전중학교 3학년 담임을 맡고 있는 국중화 교사는 학숙건립 자체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 많은 혼란을 겪는 등 가장 힘든 시기가 고2학년까지라면서 이 기간에 ‘홍등가 거리’, ‘남녀 단독건물 수용’은 매우 위험하고 순천시가 “학생들을 실험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이냐”고 강하게 성토했다.

홍등가 업소 여종업원들의 옷차림을 보고 시각적인 충동을 유발시킬 수 있고, 이는 곧 자제력을 잃어 성폭력으로까지 나타날 수 있다는 것. 단독건물에 남녀학생을 동시 수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또 “고등학교의 기숙사내 음주, 흡연, 이성 문제 등이 가려져서 그렇지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면서 “남녀학생을 위한 건물 자체를 분리하는 등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인근 북부시장 3층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사진. 불켜진 곳은 도서관이고, 좌측 부분이 홍등가 거리. 학생들이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려면 홍등가를 통과해야 한다.
▲ 모텔 위치 야경 인근 북부시장 3층 옥상에서 바라본 야경사진. 불켜진 곳은 도서관이고, 좌측 부분이 홍등가 거리. 학생들이 버스정류장을 이용하려면 홍등가를 통과해야 한다.
ⓒ 최경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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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건축후 부도나 모 유동화전문회사가 10억에 낙찰받았는데, 18억원에 매입하려는 순천시의 계획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 기숙사로 리모델링하려는 모텔건물 2004년 건축후 부도나 모 유동화전문회사가 10억에 낙찰받았는데, 18억원에 매입하려는 순천시의 계획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 순천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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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국 교사는 “기숙사가 설치된 고등학교에서도 성적 순위보다 가정형편과 통학거리 등도 감안해서 지역학생을 할당해 수용했으면 좋겠다”면서 “순천시가 각급 학교의 기숙사 확충지원, 급식비 및 수업료, 장학금 지원 등 현실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과거 전남 모실업고에서도 한 건물에 남녀 학생을 동시 수용해 여러가지 문제가 심각했던 사례가 있다. 모텔건물 부근에 사는 한 시민은 “나중에 사회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순천시가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시내 고교 사감교사들의 반응을 들어보니 그 심각성은 더욱 높았다. 대학진학률이 높은 B고교도 1개 호실에 4명까지 생활하면서 적응하지 못하고 퇴실하거나, 과외교습을 위해 원룸을 임대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 C고교는 교사가 아닌 용역업체에 위탁하면서 지도에 잘 따르지 않는 폐단이 발생한다는 것. B고교 사감교사 D씨는 "기숙사 관리는 상당한 경험과 전문적인 노하우가 필요하다"면서 "시청직원 10명이 퇴근 이후 달라붙어도 지도하기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추경예산 편성에 맞춰 졸속 추진 의혹

순천시에서는 2인 1실 70명 수용에 4명의 청소년지도사가 채용되어 2명씩 교대로 근무하며 관리할 계획이라고 했다. 강영선 과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인문계학생 위주로 수용하고, 6층 건물 중 3개 층으로 구분하여 남녀학생을 분리하겠다”면서 방과후 원어민교사를 활용한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긍정적인 취지에도 불구하고, 순천시가 사전에 교육전문가 및 학부모, 시민단체 등의 의견을 전혀 수렴하지 않고, 추경예산 편성에 맞춰 졸속으로 추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강영선 과장은 시의회에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승인’ 및 사업예산 심의를 올렸으므로 시의회가 의견수렴 절차를 선행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사전에 공개될 경우 주변 부동산가격 상승이 우려되었다는 궁색한 해명을 내놓았지만, 70명의 학생 수용으로 인근 상권에 영향을 주기 어렵다는 계산은 초등학생도 가능한 일이다. ‘공유재산관리계획 변경승인’은 지난 11일 본의회에서 통과되었고, 22일 시의회 주최로 의견수렴을 위한 간담회를 뒤늦게 열었다. 상임위에서는 지난 9일 이 사업예산을 전액 삭감한 상태다.

덧붙이는 글 | 다음블로그(blog.daum.net/ckp920)에도 올렸습니다. 이와 관련된 순천시와 시의회의 충돌, 시청직원 불법 의회점거 등 관련 기사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홍등가, #순천학숙, #노관규, #학생기숙사, #순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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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어용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하다 세월호사건 후 큰 충격을 받아 사표를 내고 향토사 발굴 및 책쓰기를 하고 있으며,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정리하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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