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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재활용이란 얼마나 거룩한 말인가. 아픈 지구를 위해, 또는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해 한 번 더 사용한다는 뜻인데…. 그런데 이것을 악용하는 현장이 있었으니, 나는 알바를 하면서 그 현장을 생생하게 지켜 보았다.

 

3년 전 난 식당에서 알바를 했다. 경치 좋은 공원인데다 임무는 홀 담당이었다. 50이나 먹은 여자에게 홀 담당이 돌아오기란 쉽지 않은 일. 더구나 자율식당(손님이 직접 음식을 주문하고 빈그릇도 손님이 반납하는)이라 일일이 서빙을 하지 않아도 되고 보수도 내 수준에서 보면 꽤 괜찮은 편이었다. 목표는 두 달. 두 달만 알바를 해서 여름동안에는 꼭 들어앉아 글을 쓸 작정이었다.

 

심통녀 덕에 '왕따'가 된 50대 알바

 

그러나 어디 좋기만 하겠는가! 그악스러운 시어미(?)가 턱 버티고 있었으니 뭔가를 먹다 목에 걸린 것처럼 근무하는 내내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시어미란 그곳에서 일 년을 넘겼다는 나름 베테랑이라는 심통녀 선임이었다.

 

그녀의 불만은 내가 나이가 많다는 것. 나이 어린 사람 들어와 만만히 부려먹고 싶었는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게 잠재된 이유였다. 햐! 평소 인복이 많아 어딜 가도 좋은 사람만 만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나, 된통 걸린 것이다.

 

문제는 아마도 지위였던 거 같다. 자기가 중심이고 최고여야 하는데 자칫 그 자리를 빼앗길 것 같으니 미리 겁을 먹고 유비무환을 결행을 한 셈. 참 착각도 그 정도면 정신병 수준이다. 아니 알바가 무슨 남의 자릴 노린다고. 또 어딜 가나 새 사람이 들어오면 호기심으로 사람들이 접근하기 마련인데…. 이 여자 무조건 나를 모두에게서 격리시키려 안간힘이었고, 그 덕분에 난 완전 '왕따'였다.

 

아침이면 견고한 담장이 둘러싸인 육중한 문을 넘어 숲이 우거진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경치 좋고, 공기 신선하고. 그야말로 '짱' 이었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였는지.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듯 무거운 발걸음을 한심스러워 하며 옮겼다.

 

일하는 사람은 주방에 둘(하나는 정직, 하나는 알바), 홀에 둘, 그리고 주말에는 주말 알바가 따로 있었다. 어쨌든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잔반 처리하면서 빈 그릇 치우고 홀 테이블 정리하는 일이었다.

 

손님이 빈 그릇을 식기 반납대에 놓고 자리로 돌아와 가방을 챙겨 나가면, 난 즉시 풀가동. 손님이 떠난 자리 치우고, 식기 반납대로 간다. 쟁반 위 빈 그릇을 치우는데 빈 그릇은 포개서 안으로(설거지하기 쉽게) 넣어주고 반찬이 남아 있는 그릇은 누가 보고 있지 않나 촉수를 곤두세우며 슬쩍 한쪽 옆으로 밀어 넣어 준다.

 

그 다음은 안에서 알아서 처리한다. 큰 그릇을 몇 개 준비해 놓았다가 김치는 김치끼리, 깍두기는 깍두기끼리, 또 단무지는 단무지끼리 모아 놓는 것이다.

 

손님이 많아 배식하던 반찬이 떨어지면 즉시 호출이 떨어진다. 이건 암호다. 그냥 '저기 좀 들어갔다 와요' 하면 눈치로 척 알아듣고 그릇 세척실로 들어간다. 각각 그릇에 담긴 반찬들은 고스란히 옆 주방으로 전달되고 재활용된다.

 

헝클어진 거 보면 손님들이 알 거 아니냐고? 천만에, 그럴 염려 전혀 없다. 배식하는 사람이 틈틈이 처음처럼 정렬하는데, 그 모양도 아주 신선해 보인다. 크기며 모양이 일치하는 것끼리 정확하게 포개어 놓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다른 음식(고춧가루나 김치 국물 밥알)이 묻었던 단무지를 국물에 헹궈 재정비하기도 한다.

 

물론 내 뜻은 아니지만 음식 쟁반을 들고 가는 손님을 보면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든다. 하지만 행여 남아 나온 반찬을 그냥 버렸다 하면 안주인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주인의 뜻이 그래서 일까? 그녀(심통녀?)는 가끔 과잉 충성도 일삼는다. 다시 놓는 걸 자랑이라도 하듯 엄숙하게 주인의 뜻을 거행하고 나서는, 아까운데 이걸 어떻게 버리느냐고 아부 비숫한 발언을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이걸 어떻게 먹어?

 

그래도 한 두 번은 괜찮은 편, 어떨 때는 김치가 다 뭉그러지도록 재사용을 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모양도 잡을 수 없어서, 그냥 막김치인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퍼뜨려 놓는다. 한번은 심통녀가 무척 심난한 얼굴로 김치통에 머리를 박고 뒤적거리고 있었다. 나에 대한 감정이 조금은 허술해졌을 무렵이었고, 마침 주인도 없을 때였다. 나는 눈치로 알아차렸지만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이거 손님 줄 때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는지 알아요? 모양도 이상하니까 매번 먹지도 않고 그냥 나오는데 버릴 수는 없고, 참."

 

그녀는 집게로 시뻘건 김칫국물속을 휘젓다가, 낙동강 오리알 건지듯 흐늘흐늘한 김치 건더기를 하나씩 들어올렸다. 그녀도 역시 사람인지라 마음은 편치 않았던 거다. 상태는, 찌개 거리로도 불가능할 만큼 좋지 않았다. 보다 못한 내가 스테인리스 스틸 사각통을 빼앗아 들었다.

 

"뭐라고 하시면 내가 버렸다고 해요. 혼내면 내가 혼나고 그만두라고 하면 내가 그만 두면 되니까…."

 

나는 호기롭게 말하고 밖으로 나가 음식물 쓰레기 통에 사정 없이 부어 버렸다.

 

아주 가끔 못된(?) 손님도 있었다. 재사용을 알아서인지 아니면 그게 버릇인지 남은 반찬을 모조리 휩쓸어 죽탕을 만들어 버리는 손님이다. 나는 그런 것을 보면 속으로 용케도 알아 차렸네, 하고 통쾌해 하면서 짬밥 소쿠리에 부어 버리지만 주인은 달랐다.

 

한 번은 안주인과 함께 쟁반 정리를 할 때 죽탕이 나왔다. 나는 은근히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반성이라도(?),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그걸 보는 순간 그녀의 눈에서는 폭발 직전의 새파란 불꽃이 튀었다.

 

"이런 못된 것들, 남의 음식을 이렇게 만들다니!"

 

화가 나도 보통 난 게 아니었다. 항의하듯 거세게 남은 음식을 붓고 빈 그릇을 우당탕 던져 다른 그릇들과 포개어 안으로 들이 밀었다. 옆에 서 있던 내가 한 짓 인것처럼 내 마음이 다 뜨끔했다. 그러고도 계속 투덜투덜해 분위기 완전 험악해져 우린 모두 조마조마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녀가 한 말을 가만히 되뇌었다. '남의 음식이라구?' 그러니까 주인은 식당 안에 있는 음식은 무조건 자기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니 재사용도 당연히 정당한 거였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손님의 종류도 다양했다. 사발면을 가져와 뜨거운 물(정수기 뜨거운 물은 꺼놓았다)을 찾는 사람. 거기다 한 술 더 떠서 사발면을 먹어야 하는데 왜 뜨거운 물이 안 나오느냐고 말도 안 되는 항의를 하는 사람. 참 남의 영업장에 와서 자기가 가져온 것 먹을 수 없게 됐다고 항의를 하다니…. 어이가 없었지만 싸울 수는 없었고 정중하게 뜨거운 물은 위험해서 꺼놓았다고 설명해 주는 수밖에.

 

그뿐만이 아니다. 자기들이 사용할 컵이나 수저를 정수기 앞으로 가져와 아주 설거지를 해다가 사용하는 손님도 있고, 슬쩍 홀을 지나가는 것처럼 들어와 시원한 정수기 물을 공짜로 떠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걸 눈여겨보지 못하고 있다가 주인에게 발각되면 잘못은 고스란히 우리 몫, 한시도 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70년대 공장에서나 볼 법한 월급날 풍경

 

식당만이면 일하는 사람이 넷이지만 여기저기 다 합하면 무척 많았다. 공원 안에 있는 좌판과 매점, 그리고 물건을 공급해주는 사람들도 다 식당 소속이었다. 그런 사실은 월급 날 알았다. 그때까지 왕따를 면하지 못하던 나는 월급날도 몰랐다. 그냥 일하기 시작한 날 개별적으로 주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하루는 일이 끝나기 전이었는데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교육이라도 있나,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수군거리는 말을 귀기울여 들어보니 '월급날 어쩌구' 하는 게 아닌가. 대충 짐작은 하면서도 월급을 어떻게 주기에 한 데로 몰려드나 궁금증이 생겼다. 요즘 월급은 보통 통장으로 넣어 주거나 부서장을 통해서, 아니면 개별적으로 사무실에 들러 사인하고 가져 가는 게 통상적인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도 한 구석에 앉아 기다렸다. 아는 사람도, 말을 걸 사람도 없으니 묵묵히 앞만 바라보면서.

 

한참 시간이 흐르고, 드디어 사장님이 봉투 꾸러미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고 먼저 사과를 했다. 오늘이 월급날인 줄 몰라 늦어졌다나. 그러고는 한명 한명 호명을 했다. 사장님은 호명을 하면서 오늘은 늦었으니 받는 대로 가도 좋다고 말했다. 이런! 그럼 늦지 않은 날은 사장님 훈화라도 한다는 뜻인지(정말 그 다음 달 월급날에는 훈화 비슷한 순서가 있었다).

 

아무튼 이름이 불린 사람은 달려 나가 월급봉투를 받아 나갔다. 70년대 공장에서는 그렇게 했을라나. 아주 기이한,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퇴근할 때는 가벼웠던 발걸음도 출근할 때는 늘 천근만근이었다. 그러나 난 늘 내게 최면을 걸듯 다짐을 했다. 내가 목적한 두 달을 견디자. 이런 사회도 있다는 걸 취재하는 셈 치자, 라고 되뇌면서. 정말 2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두 달이었지만 난 잘 견뎠고 결국 목적 달성을 했다. 그리고 그 두 달 알바는 내 여름을 잘 감싸주었다. 아직도 의심이라는 만만치 않은 부작용과 내 인생 최악의 알바로 남아 있긴 하지만….

덧붙이는 글 | '아르바이트, 그 달콤쌉싸래한 기억' 응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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