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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가족><반칙왕><달콤한 인생>으로 관객과 친숙한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이 화제다. 개봉 나흘 만에 2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괴물>의 흥행기록과 비교될 정도로 기염을 토하고 있다. 혹자는 700만 관객을, 어떤 이는 1000만 관객을 예상한다. 하여튼 <놈놈놈>은 막힘없는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0억 가까운 제작비를 쏟아 부은 <놈놈놈>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대박을 예감하는 한국형 웨스턴이라는 견해와 어설픈 흉내 내기라는 혹평이 공존한다. 한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장르에 환호하는 관객이 있다. 그동안 김지운 감독은 희극과 공포, 누아르와 같은 여러 장르에서 활동해왔다. 따라서 웨스턴 시도가 그에게 낯설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마카로니 웨스턴'의 한국적 아류 정도로 치부하는 관객도 있다. 김지운 감독은 레오네 감독의 <석양의 무법자(The Good, The Bad, The Ugly)>(1966)에 대한 오마주로 <놈놈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면 이런 매우 상반된 평가가 <놈놈놈>의 쾌속 순항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일지도 모른다.

시간, 공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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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간은 1930년대이며 공간은 만주다. 1930년대 만주가 전달하는 내용은 입체적이고 생동감으로 가득 차 있다. 독립군과 마적단, 일제의 관동군과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의 만주국, 김동인의 단편소설 <붉은산>, 윤동주 시인과 명동촌, '아라사'로 표현되던 러시아 등등.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들이 한데 모여 들끓던 시간과 공간이 영화의 배경이다.

<놈놈놈>의 서사구조는 느슨하다. 어쩌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기둥 줄거리도 없이 장면과 장면의 단순한 연결로 이루어진 단색 모자이크처럼 보인다.

이것 때문에 탄탄한 이야기구조에 익숙한 관객에게 <놈놈놈>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것이다. <놈놈놈>의 관심은 사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레오네의 세 인물처럼 김지운도 '착한 놈'과 '나쁜 놈' 그리고 '이상한 놈'을 설정한다. 그러나 그들을 비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40년 전의 '마카로니 웨스턴'과 21세기 '만주 웨스턴'의 단순비교가 제공할 수 있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감독이 이미 창작의 원천 가운데 하나를 밝힌 마당에 수평적인 비교가 무슨 의미이겠는가.

하지만 1930년대 만주라는 독특한 시공간을 살아갔던 인물들의 개별적인 천착은 유의미하고 흥미롭다. 그것은 <놈놈놈>의 헐거운 서사를 보완하고, 영화에 생동감과 깊이를 부여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을 둘러싼 여러 세력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통해 시대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삼인삼색의 욕망분출과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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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세 주인공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지도 한 장으로 쫓기고 쫓는 운명의 수레바퀴 속으로 들어온다. 관객은 지도에 그려진 실체가 무엇인지 시종일관 알고 싶어 하지만, 영화는 그렇지 않다. 쫓고 쫓기는 자들의 맹목성과 끈질긴 추격 장면을 보여주는데 영화가 중점을 두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한 놈 박도원의 대사는 폼 나지만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 

"사람은 누구나 큰 꿈을 좇을 권리가 있어. 하지만 무언가를 갖기 위해 무엇인가를 쫓다 보면 무엇인가에 쫓기게 되지. 결국, 쫓고 쫓기는 순환의 굴레를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게 인생이야."

박도원이 쫓는 것은 수배자 현상금과 다소간의 낭만이다. 독립군과 그의 관계는 실체마저 불분명하다. 그것은 '이상한 놈' 윤태구에게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끝내 말하지 못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반면 윤태구가 품은 현실적인 꿈의 실체는 쉽게 포착할 수 있다. 식민지 조선에서 가축치고 농사지을 땅을 위해 목숨 걸고 그날그날 살아가는 윤태구. 

이상한 놈보다 더 이상하게 보이는 '나쁜 놈' 박창이의 인간형은 상당히 입체적이다. 친일파 김판주의 개 노릇을 하면서 살아왔던 그가 돌연 자세를 바꾸는 장면은 박창이의 내면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입증한다. 이것은 영화 전체에서 되풀이되는데, 그가 내세우는 "누가 최고냐"하는 단 하나의 명제는 사건전개에 적지 않은 힘을 부여한다.

낭만과 멋으로 무장한 총잡이 '착한 놈'과 현실적인 이해타산으로 똘똘 뭉친 '이상한 놈', 그리고 세상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칼잡이이자 총잡이인 '나쁜 놈'. 이런 인간들이 하나가 되어 '보물지도'인지, 아니면 단순한 종잇장인지 모를 소품 하나를 놓고 뒤얽히는 소용돌이 속으로 관객들은 속수무책 딸려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만 밝혀두자. 만일 <놈놈놈>이 이런 관계설정에 끝까지 충실했다면 객석은 다소 썰렁했을지도 모를 것이란 사실. 김지운 감독은 이런 얼개에 예기치 않은 반전을 끼워 넣음으로써 관객의 호의적인 반응을 기대한다. 하지만 세 인물의 끝 모를 욕망 그리고 그것을 향한 지속적인 대립과 충돌이 영화의 고갱이란 사실은 끝까지 불변이다. 

한국형 웨스턴 영화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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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에서 사건은 권선징악이나 복수 같은 줄거리에 의지한다. 관습적인 서부극은 선과 악을 명징하게 갈라놓고, 생과 사를 넘나드는 총잡이들의 대결에 초점을 맞춘다. 이에 반해 마카로니 웨스턴은 그런 도식과 거리를 두며 훨씬 단순하다. 거기서 핵심은 폼과 스타일이다. 초긴장 상황에서도 여유롭게 담배를 씹어대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떠올려보라. 

레오네가 선보인 웨스턴은 이른바 '정통 서부극'의 고정된 틀을 깨뜨림으로써 서부극에 새 바람을 몰고 왔다. 그것은 낡은 틀의 전복과 새로운 미학의 제시로 요약된다. 너무도 진부해진 판박이 서부극에 긴장과 자기혁신의 외풍이 불어닥친 것이다. 레오네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에서 미국 이민사를 새롭게 조명한다.  

그렇다면 김지운 감독은 <놈놈놈>에서 시작한 '레오네 오마주'에서 정지할 것인가, 아니면 전진할 것인가 하는 명제 앞에 서 있는 셈이다. 그런 명제를 살아나게 하려면 그가 영화에서 보여준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 열차 추격 장면, 말 달리며 총 쏘는 장면, 칼잡이들의 치열한 대결장면, 사막 비슷한 풍광과 거기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면면을 보여주는 장면. 

김지운 감독은 기존의 서부영화나 마카로니 웨스턴에서 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가 한국형 웨스턴을 가능하게 하려면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재미와 함께 깨달음을 선사하는 방법으로 가능할 것이다. 풍성한 눈요깃거리와 폭발적인 액션, 희극적인 대화와 인물설정을 뛰어넘는 김지운 고유의 상표영화가 나와야 할 것이다. 그것의 해답은 아마도 역사와 인간의 필연적인 만남과 구체화 정도가 아닐까 싶다.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탄탄한 서사구조에서, '한계'를 장르 편중에서 보는 평론가들이 있다. 이 점에서 김지운 감독은 장반대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불가능해 보이는 한국형 웨스턴의 시도와 느슨한 서사구조를 가지고. 모든 첫 번째 시도는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갔다는 점에서. 하지만 그것이 지속되지 않는다면 거기서 끝이다.

김지운 감독의 다음 영화를 기대

<놈놈놈>은 누가 뭐래도 '한국형 웨스턴'이다. 우리가 오래전에 망각한 '만주'라는 공간과 이제는 떠올리기도 싫은 '일제'라는 시간을 조합한 새로운 틀에 기초한 영화다. 서로 다른 인생항로를 가진 세 인물의 각축이 여러가지 볼거리와 어우러지면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좋은 일이다. 한국영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한다.

<놈놈놈>이 웨스턴 불모지에서 피어난 처음이자 마지막 영화라면 별로 의미 있어 보이지 않는다. 출발점이 종착점과 동일하다면 과정에만 의미가 있을 터. 과정이 일회성에 한정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숱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것이 성공한 장인들의 기본적인 삶의 궤적 아닌가. 이 점에서 영화 마지막 장면은 훗날을 생각하게 한다.

환호작약하는 관객들이나, 냉소를 머금고 비웃은 관객들이나 그들 모두 영화의 소중한 자산이다. 그들이 있음으로써 영화와 영화 관계자들의 존재의의가 비로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일희일비 하지 않고 호시우행 하는 자세로 새로운 장르와 형식, 내용을 만들어가는 치열한 영화감독 김지운의 성숙한 영화를 계속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웨스턴 만주 세르지오 레오네 김지운 놈놈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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