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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지난 5월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쓰레기 문제를 다뤘고 6월~8월엔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란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가 변함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입니다. 이번엔 선진국 전자쓰레기가 중국으로 수출되는 문제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선진국은 쓰고 난 전자쓰레기를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 국제사회는 1983년 유해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을 막기 위해 바젤협약을 맺었다. 미국은 아직 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진은 국제쓰레기 집합장으로 알려진 중국 구이위진 마을.
 선진국은 쓰고 난 전자쓰레기를 다른 나라에 수출한다. 국제사회는 1983년 유해폐기물의 국가간 이동을 막기 위해 바젤협약을 맺었다. 미국은 아직 이 협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사진은 국제쓰레기 집합장으로 알려진 중국 구이위진 마을.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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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만드는 곳과 처리하는 곳은 다르다. 도시에서 만들어진 쓰레기는 도시 외곽으로 또는 다른 지자체로 넘어간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자기가 저지른 일은 자기가 해결해야 한다는 뜻)라고 했지만, 쓰레기에서만큼은 예외다.

심지어 나라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대표 사례가 전자쓰레기다. 2000년대 초반 전자쓰레기로 뒤덮인 중국의 구이위(貴嶼) 마을이 알려졌을 때 세상은 경악했다. 동네 집 앞엔 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동네 앞 개울엔 검은 물이 흘렀다. 지역 대학 의료단이 의료조사를 실시한 결과 건강상태는 심각했다. 피가 굳는 병인 '혈전증'이 시내보다 두 배 이상 높았던 것.

구이위 마을을 조사한 그린피스와 바젤행동네트워크(BAN)는 이 곳에 온 쓰레기가 대부분 미국에서 온 것이고 일본, EU, 한국 제품도 다수 섞여 있다고 말했다.

바젤행동네트워크는 1983년 국제사회가 합의하에 만든 바젤협약(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유해쓰레기의 국가간 교역을 규제하는 내용의 국제 협약) 준수를 위해 만들어진 단체다. 우리나라는 1994년 바젤협약에 가입했다.

구이위 마을이 세상에 알려진 뒤, 대략 5~6년이 지났다. 국제사회와 언론이 큰 관심을 가지면서 구이위 마을의 쓰레기산업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소리도 들리고, 전자쓰레기 증가와 함께 쓰레기산업이 더 커졌다는 소리도 들렸다.

다른 나라가 보낸 쓰레기로 먹고 사는 마을, 바다를 건너 먼 이국땅까지 간 쓰레기가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 그 곳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5월에 구이위와 쓰레기를 처리하는 인근 마을을 찾아갔다.

[선별장] 안전장비도 없이 해체작업을 하는 주민들

과연 저 컨테이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과연 저 컨테이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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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산터우(汕頭). 중국 광둥성 동해안 지역에 있는 항구도시다. 구이위를 비롯해 쓰레기도시로 알려진 푸팅(普亭)이 여기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다. 바다를 건너온 쓰레기라면 산터우 부두에서 짐을 내릴 가능성이 높다.

택시를 타고 부둣가에 갔다. 부둣가는 한산했다. 소형 컨테이너를 내리는 곳을 먼 발치에서 볼 수 있었지만, 대형 컨테이너를 내리는 곳은 출입 통제 구역이었다. 컨테이너를 내리는 곳을 한참 동안 바라봤지만, 컨테이너 속 내용물이 전자쓰레기인지 아닌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적외선 사진기를 들고 왔다면 알 수 있었을까.

부둣가에서 철수한 뒤, 이튿날 구이위 마을 방문 계획을 세웠다. 통역을 맡은 모종혁씨는 "취재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몇 차례 언론에 소개된 뒤, 마을 사람들이 매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는 것. 마을 사람들한테 위협을 당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일단 부딪혀 보자는 생각으로 승용차에 올랐다. 안내는 구이위시가 속해 있는 산터우(汕頭)시 출신이 맡았다.

구이위 옆 푸팅시 치린촌 사람들은 쓰레기처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구이위 옆 푸팅시 치린촌 사람들은 쓰레기처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간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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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터우 시내를 벗어나 1시간 가량 달린 차가 멈춘 곳은 산터우(汕頭)시에 속해 있는 푸팅(普亭)시 치린(麒麟)촌. 아침 일찍 출발해 피곤해진 몸을 일으켰더니,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서부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허름한 집들과 길 입구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였다.

오전 8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었지만, 마을은 이미 부산했다. 사람들은 집 앞에 쌓아놓은 쓰레기를 부지런히 만지고 있었고, 트럭과 경운기, 오토바이가 부지런히 길을 오고갔다. 마을 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안내인이 다시 한 번 주의를 준다.

전자쓰레기를 담은 포대들. 우리나라 기업 상표가 보인다.
 전자쓰레기를 담은 포대들. 우리나라 기업 상표가 보인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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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사진은 찍지 마세요. 위험해요."

우리나라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는 풍경, 세상에서 이 곳만 있을 것 같은 모습들. 주머니에 있는 사진기를 계속 만지작거렸다.

TV, 컴퓨터 본체와 모니터, 회로기판, 프린터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전자제품이나 전자부품들이 쌓여 있었다. 한 쓰레기더미 포대에 LG 마크가 뚜렷하다.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마다 일하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분명히 일에 열중하고 있었을 텐데도 사람들은 외부인을 정확하게 느꼈다. 그 눈빛은 절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 마을에 들어오는 외부인은 마을의 치부를 들추기 위해 들어오는 사람뿐이란 것을 그들의 눈빛은 말하고 있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근처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돌아봤다. 그들은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내지 않고 조심스레 움직였지만, 근처를 지날 때마다 사람들은 돌아봤다. 그들은 우리가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 모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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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옆 개울은 거의 하수도 수준이다. '검은 강'이라는 말 빼곤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과자봉지, 플라스틱병, 신문, 비닐, 바가지, 스티로폼이 뒤섞인 개울에서 묘한 악취가 풍겼다. 마을 이곳저곳을 다니는데, 한 어르신이 질문을 던진다.

"여기 왜 왔냐. 더럽고 누추한 곳에."

마을 끝까지 갔다 나올 때 자세히 살펴보니 길 양쪽 집이 다르다. 들어가는 방향에서 봤을 때, 왼쪽은 임시가옥 형태의 낡은 집으로 대나무로 틀을 짜고 천으로 지붕과 벽을 만들었다. 바람이 불면 휘청거릴 것만 같다. 오른쪽은 번듯한 양옥이다.

오염된 개울.
 오염된 개울.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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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공장 대부분은 가내수공업 형태다. 직원이 적은 곳은 4~5명, 많은 곳은 14~15명 정도다. 중년 남성, 중년 여성, 젊은 여성이 어울려 일을 한다. 어린이는 없다. 마스크를 쓴 사람도 없다. 장갑을 낀 사람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안 낀 상태다.

400가구 정도가 사는 치린촌이 쓰레기 마을이 된 것은 십 몇 년 전. 쓰레기 도시로 잘 알려진 구이위(貴嶼)가 여기서 4km 정도 떨어져 있다.

[소각장] 길은 질퍽질퍽하고 냄새는 고약하다

푸팅시와 구이위진을 잇는 길엔 전자쓰레기를 실은 차량들이 가득했다.
 푸팅시와 구이위진을 잇는 길엔 전자쓰레기를 실은 차량들이 가득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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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몰래몰래 사진을 찍었지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 모습을 억지로 찍은 듯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안내인은 두 사람이 아무 일도 없이 돌아온 게 반가웠는지, 다음 갈 곳을 큰소리로 말했다.

지금 갈 곳은 산터우(汕頭)시 차오양(朝陽)구 구이위(貴嶼)진 소각장. 과거 자신이 외국 유명 방송사들과 여러 차례 쓰레기 취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한다.

차도로 나오니 교통정체가 엄청나다. 아예 움직이질 않는 상태로 30분을 기다렸다. 자동차를 버려두고 걸었다. 저 멀리서 4~5줄기의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인다. 걸어서 가도 20분이면 갈 거리다. 소각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리가 있고, 다리쪽에 수많은 승용차와 버스, 인력거, 자전거, 사람, 오토바이가 뒤엉켜 건너고 있다. 다리 입구 쪽에 버스가 고장 난 상태다.

소각장 입구에 도착하니, 치린(麒麟)촌보다 훨씬 상태가 심각하다. 아무런 시설이나 장비 없이 강 옆에서 그냥 쓰레기를 태우고 있었다. 강 옆은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고, 강에는 쓰레기들이 떠다녔다. 쓰레기 강에 쓰레기 언덕이다.

구이위진 어느 개울 소각장. 시설이나 장비 없이 개울 옆에서 전자쓰레기를 그냥 태우고 있었다.
 구이위진 어느 개울 소각장. 시설이나 장비 없이 개울 옆에서 전자쓰레기를 그냥 태우고 있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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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질퍽질퍽하고 냄새는 고약하다. 자동차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길이 좁고 상태가 나쁘다.

걸어서 들어가자니 끈적끈적한 흙이 신발에 들러붙는다. 몇 분을 걸어 들어가니 건물이 보인다. 전자쓰레기 중에서 금속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물이 많이 쓰였다. 쓰인 물은 고스란히 옆 논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논에선 벼가 익어가는 중이다.

공장을 지나치니 건물에서 한 사람이 나와 쳐다본다. 호의적인 눈길은 아니다. 찜찜했다. 뭔 일이 일어날 것 같다.

소각장에선 남녀 일꾼 두 사람이 일을 하고 있다. 남자 일꾼에게 말을 붙였다. 남자는 조심스러웠다. "멀리서 왔다"고 말하며, "이름을 말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 와중에 옆에서 '펑펑'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속 내용물이 진공상태이던 어떤 물건이 열을 받으면서 터지는 듯했다. 일꾼이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여전히 저 멀리 떨어진 건물에서 나온 한 사람이 나를 쳐다본다. 강을 건널 수 있는 곳이 있는지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없다. 어쩔 수 없이 왔던 길로 걸어 나갔다.

소각장.
 소각장.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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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옆을 지나칠 때 갑자기 오토바이 두 대가 나타나 일행을 둘러쌌다. 주위에 있는 사람은 여섯 명. 그 중 한 명은 공안(公安, 중국경찰)이라고 적힌 옷을 입고 있었다. 아차 싶었다. 우리 보고 구이위진 정부에 가잔다.

오토바이 두 대에 각각 나눠 탔다. 이대로 중국정부에 끌려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도저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틀림없이 사진을 보자고 한 뒤, 지우려 들 것이다. 오토바이 뒤에 탄 상태로 한 손으로 사진기를 꺼내 메모리카드를 뽑았다. 여차하면 메모리카드를 두고 왔다고 둘러댈 참이었다.

구이위진 정부에 가니 어떤 방으로 데리고 간다. 두 사람은 선 상태로 우리를 쳐다보고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서 뭔가를 뒤적인다. 조사를 맡은 사람은 선전부 국장. 우리 보고 왜 왔냐고 물었다. 모종혁씨가 관광목적이라고 둘러댔는데, 전혀 믿지 않는 눈치다. 전화로 내부보고를 하면서 "한국기자"라고 말한다.

사진기를 달라고 한다. 모종혁씨는 어깨에 멘 큰 사진기를 내놓았다. 나는 없다고 말했다.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작은 사진기라 다행히 눈치를 못챘다.

메모리카드를 압수한 선전부 공무원들은 우리를 산터우시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여기서 1시간 거리다. 그렇게 되면 오늘 취재는 끝이다. 모씨가 자동차가 있어 근처에 내려다 달라고 요청해서 결국 구이위진 외곽에 내려주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외곽에 내린 뒤 안내인을 불렀다. 그런데 내린 곳을 안내인이 알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달린 끝에 겨우 만났다. 치린촌을 다시 찾아가 둘러본 뒤, 구이위 안에서도 가장 상태가 심각하다는 롱먼(龍門)으로 발길을 돌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언론재단 기획취재 지원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뤄졌습니다.



태그:#전자쓰레기, #푸팅, #바젤협약, #중국, #산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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