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중>의 포스터 돌아온 형사 강철중

▲ <강철중>의 포스터 돌아온 형사 강철중 ⓒ KnJ엔테테인먼트

강철중이 돌아왔다. 3년 전 어울리지도 않은 양복을 입고 고상한 말들을 쏟아내던 검사가 아닌, 그 무식하고 단순한, 주먹부터 나가는 형사 강철중이다.

감독은 그의 컴백을 만방에 알리고 싶었는지 영화 제목에조차 방점을 찍었다. <공공의 적 3>대신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하 <강철중>)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덕분에 <공공의 적> 시리즈는 오롯이 강철중의 것이 되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고 한 번 물면 절대 놓치지 않는 독한 강철중.

그는 한국 영화계의 흥행을 보증하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시 태어났으며, 정형화된 성격과 생활패턴 그리고 가족 등을 갖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처럼 2대 강철중, 3대 강철중을 볼지도 모를 일이다.

대신 영화는 동시에 결정적 한계를 지니게 되었다. 이젠 공공의 적이 누구냐 보다 강철중이 사건을 '또'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공공의 적'에 대한 고민이 얕아졌다. 세상이 하 수상한 만큼 공공의 적이 많아 여러 각도로 제작할 수도 있었을 영화 시리즈가 강철중이란 캐릭터에 갇혀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나 감독은 강철중이 가지는 한계에 연연치 않은 듯하다. 최근 들어 쓴잔을 연거푸 마셨던 강우석 감독에겐 흥행작이 너무나도 절실했으며, <추격자> 이후 변변한 흥행작을 내놓지 못했던 한국 영화계 또한 이를 암묵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는 <님은 먼 곳에>와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징검다리는 분명히 필요한 터였다. 다행히 영화는 현재 순항 중이다. 최근 들어 그 인기가 한풀 꺾이기는 했어도 영화 <강철중>은 <공공의 적> 시리즈 중에서는 최다 관객 수를 갱신했으며, 할리우드 영화의 공습에 맞서 한국영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경찰 강철중의 매력

<공공의 적>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주인공 강철중이 바로 '경찰'이라는 사실이다. 비록 깡패처럼 사람들을 패고, 안하무인으로 아무데서나 욕지거리를 해도 그는 결국 강동서 강력반 형사 강철중이다.

따라서 그의 행위는 언제 어디서나 정당성을 가진다. 그는 그 어떤 주인공보다 폭력적이고 권위적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은 결코 불편하지 않다. 그의 폭력은 어디까지나 나쁜 세력을 소탕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며, 그의 욕지거리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쓴소리라고 사회적으로 약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강철중 <공공의 적> 시리즈를 입수한 강철중

▲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강철중 <공공의 적> 시리즈를 입수한 강철중 ⓒ KnJ엔테테인먼트


결국 강철중이라는 인물 자체가 가지는 정당성은 영화를 매우 단순 명쾌하게 만든다. 경찰 대 범인의 대결은 곧 선과 악의 대결로 귀결되며 우리는 그 속에서 권선징악이라는, 매우 뻔하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고전적인 주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구도 속에서 우리 편에 대해 고민할 필요도 없이 선이 악을 징벌하는 모습을 보며 정의의 사도가 된 듯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어쩌면 이와 같은 대리만족은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이 영화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증폭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기가 막힌 사람들이 영화를 보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기 때문이다.

국민주권을 외치는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쏘고, 초등학생을 연행하며, 유모차에다가 소화기를 뿌리고, 심지어는 국회의원까지 연행해가는 우리의 경찰. 민주화 이후 요즘처럼 우리의 공권력이 그 정당성에 대해 많은 질타를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특히 정당성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과거 독재정권의 시녀였다는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공권력의 입장에서 가장 치명적인 아킬레스건이 될 수밖에 없다.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할 수 없음은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미워할 수 없음은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 KnJ엔테테인먼트


결국 강철중의 인기는 저기 컨테이너 뒤에 숨어서 틈틈이 무고한 시민들을 노리는 현실 속 경찰과는 달리, 자신의 공인된 힘을 나쁜 놈들을 처치하는 데에만 쓰는, 그 상식적인 사실에 기인한다. 아무리 강철중이 폭력적이고 권위적이다 한들 그의 능력이 선량한 시민들을 위해서 쓰인다면 누가 그를 마다하고 미워할 수 있겠는가.

경찰은 전경차가 닭장차가 되고, 경찰이 짭새가 되는 현실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왜 강철중이 인기 있는지 곰곰 되씹어봐야 할 것이다.

검사 강철중 vs 형사 강철중

아마도 영화 <강철중>을 기획하면서 강우석 감독이 제일 고민했던 부분은 검사 강철중을 다시 형사 강철중으로 복귀시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공공의 적 1> 흥행 이후 감독이 속편을 기획하면서 가장 고민했을 부분 역시 강철중을 경찰에서 검찰로 바꾼 일이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 2>에서 형사 강철중이 검사 강철중으로 변한 까닭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서 경찰이라는 직책만으로 공공의 적을 상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공공의 적'이라고 한다면 단순한 범죄자가 아닌 공공에게 해를 끼친 악질들을 말할 텐데, 그만큼의 공적이라면 그들의 지위가 일개 형사가 상대할 수 없는 고위층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공공의 적 2>의 공적들 대게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다

▲ <공공의 적 2>의 공적들 대게가 사회 지도급 인사들이다 ⓒ 시네마서비스


검사 강철중 강철중에게 양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 검사 강철중 강철중에게 양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 시네마서비스


따라서 감독은 속편을 표방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철중의 직업을 아예 형사에서 검사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검찰의 힘을 빌러 공공의 적을 처단해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코자 했다. <공공의 적 2>에 악당으로 나오는 국회의원이나 재벌 등은 감독이 생각하기에 형사 한 명이 감당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인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다행히 영화 <공공의 적 2>는 아주 실패하지 않았지만, 관객들로부터 검사 강철중이 형사 강철중의 매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우리 사회의 검사란 직업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강철중의 캐릭터와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철중 하면 단순하고 무식한 것이 그 첫 번째 매력일진대 검사로서의 강철중은 엘리트의 껍질을 쓰게 됨으로써 그 고유의 매력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또한 검찰 강철중의 실패는 우리 사회에서의 검찰의 지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록 TV만 틀면 나오는 검찰이지만 소시민이 실생활 속에서 검찰과 맞닥뜨리는 것은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현실 속의 그들은 항상 높은 곳에서 아랫것들을 계도하기 바쁜 영감님일 뿐이며, 그들을 만나는 날은 십중팔구 재수 옴 붙은 날일 가능성이 높다.

현실이 이럴진대 검사가 주인공인 영화가 어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가장 현실적인 묘사로 사랑받았던 강철중의 영화 아니던가. 결국 검찰에 대한 낯설음과 뿌리 깊은 거부감은 검찰 강철중의 입지를 좁게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검찰로서의 강철중이 어색했던 이유 중의 또 하나는 영화에서처럼 정의로운 검찰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검사들이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을 테지만, 정작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사건의 피고, 즉 공공의 적이라고 할 만한 사회 고위층 앞에서 그들은 늘 무력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당장 지금의 검찰을 보자. 삼성 이건희 회장 앞에서는 증거를 쥐어주고 돗자리를 깔아놓아도 기껏해야 담당 검사 1명을 배정하는 등 꼼짝도 못하면서, MBC <PD 수첩>을 조사하라 하니 담당 검사를 5명이나 배정하고 언론자유 침해라는 위험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무리수를 둔다. 어디 그 뿐인가. 검찰이 조중동을 대상으로 소비자 불매 운동을 폈다고 몇몇 네티즌에게 출국금지명령을 내리는 장면은 촌극도, 이런 촌극이 없다.

5공 정권과 비교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한 검찰의 행보에 질린 시민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감독이 <강철중>을 기획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일 뿐, 정의의 상징일 수 없는 검찰이 무슨 공공의 적을 논하겠는가. 아무리 정의를 외쳐본들 우리의 인식 속 검찰은 항상 공공의 적 앞에서는 약하고, 아랫것들에게는 엄격한 이중적인 존재일 뿐이다. 

결국 감독은 검찰 강철중이 가진 위의 한계를 인지하고 강철중을 다시 경찰로 복귀시켰다.

<강철중>의 악당들 강철중이 형사로 돌아오면서 대신 그 적들은 가벼워졌다

▲ <강철중>의 악당들 강철중이 형사로 돌아오면서 대신 그 적들은 가벼워졌다 ⓒ KnJ엔테테인먼트


앞서 이야기 했듯이 경찰은 시민들에게 가장 가까운 공권력으로서 사람들에게 직접적이고 물리적으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 바로 옆에서 흉악범들로부터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기도 하는 친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선과 악을 따지기 전에 경찰은 검찰보다 우리에게 친숙한 존재로서 영화 소재로 더 매력 있는 대상인 것이다. 대신 공공의 적의 무게는 떨어졌지만 강철중의 활약만으로도 관객들은 만족할 터였다.

감독의 결정은 옳았다. 관객들은 형사로 돌아온 강철중을 따뜻이 맞이해줬으며, 덕분에 <공공의 적> 시리즈는 예의 그 신화를 이어 나갔다. 검찰과 경찰이 이 영화의 흥행의 의미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유포터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강철중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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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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