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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김치'가 브랜드 김치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가족 맛'은 '외식 맛'으로 바뀌고 있다. 그만큼 서민들이 접할 수 있는 손맛 가짓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인간미(人間味)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고 있다. 꺼벙이, 고인돌, 맹꽁이 서당 등 추억의 만화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상도 그 중 한 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만화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작품에 나타난 인간미의 소중함을 재확인하고, '맛'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하는 기획시리즈 '만화미(味)담 오미공감'을 마련했다. 독자님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편집자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또 또 독도 때문이다. 이럴 때는 놀부 심술이 그립다. 다 된 밥에 흙을 퍼넣거나 똥누는 놈 주저앉히는 식으로 일본 '또라이'들이나 우리 위정자들에게 심술이나 한 번 제대로 부려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라도 말이다.

최근까지 문화커뮤니티 상상마당(sangsangmadang.com)에 연재됐던 '심술천재 심술통'
 최근까지 문화커뮤니티 상상마당(sangsangmadang.com)에 연재됐던 '심술천재 심술통'
ⓒ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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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똘이, 심쑥이, 심술통… '심술 족보 50년'

'심술'하면 떠오르는 만화가, 바로 이정문(67) 선생이다. 장년층이라면 어린이잡지 또는 스포츠신문에서 한 번쯤은 접해 봤을 정도로 그의 '심술' 역사는 뿌리깊다. 1959년 '심술가(家)'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심술첨지가 탄생했으니, 내년이면 무려 50년을 맞는다. 5대에 걸치는 '심술 족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박인하 청강대 만화창작과 교수(만화평론가)의 설명이다.

"몇 가닥 머리카락이 전부인 민머리소년 심똘이는 '심술 1000단', 양갈래머리 소녀 심쑥이는 '심술 999단'을 자랑하며 70년대를 휘저었다. 심똘이와 심쑥이 혹은 심술통으로 기억되는 이정문의 심술 주인공들은 한국 만화사에 드물게 50여 년 동안 계보를 이어온 뼈대있는 가문이다.

1959년 심술첨지를 시작으로, 다시 세월을 거슬러 심술첨지의 5대조 심술참봉, 심술여사에 미스터 심술과 미스 심술, 여고생 심뽀양, 그리고 보기 드문 심술동물 캐릭터인 심술개, 심술첨지의 손자인 심똘이 그리고 심술부부, 귀여운 꼬마 심술남매 심통이와 심뽀, 80년대를 풍미한 심술통까지 심술의 계보는 오늘도 끊이지 않는다." (이정문, '불가능 없는 이야기들' 전시를 기획하며)

이정문 선생의 '심술 어린이' 캐릭터들
 이정문 선생의 '심술 어린이' 캐릭터들
ⓒ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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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한결같이 참 '독한' 생김새다. 함께 80년대를 풍미한 명랑만화 주인공들을 떠올려보면, 당시로서는 얼마나 튀는 캐릭터들인지 알 수 있다. 꺼벙이·로봇찌빠·고인돌·강가딘·둘리…. 얼마나 익살스럽고 능글맞고 푸근하게 생겼는가. 그에 비하면 잔뜩 찌푸린 얼굴들, 검열이 살벌했던 시대에 밉보이기 딱 좋은 인상들이다.

이들이 하는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 낚시 잘하는 데 꽹과리를 두들겨대는가 하면, 목욕탕 안에 사람이 많으니까 악성 피부병 팻말을 들고 '입수'한다. '심술 무기' 또한 방망이·철조망·압정 등 다채롭기 그지없다. '비교육적'이란 굴레를 쓰기 딱 좋다.

허나 '심술 집안'은 무사했다. '심술 유전자의 집약체'인 '심술통'은 일간지(스포츠서울) 시장에 진출했고, 2004년에는 만화시리즈 우표의 마지막 주인공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렇듯 오히려 '심술 집안'이 엄혹한 80년대에 나날이 번창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5년부터 <스포츠서울>에 연재됐던 심술통
 1985년부터 <스포츠서울>에 연재됐던 심술통
ⓒ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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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얄개'하면 떠오르는 소설가 조흔파 선생(1980년 작고)은 "만화를 별로 즐겨 보는 편은 아니지만, 이정문씨 심술첨지만은 눈에 뜨이는 쪽쪽 꼭 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심술첨지의 오기야말로 바로 우리가 부리고 싶은 그것이다. 심술참봉의 심술은 우리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생활의 유산이다. 심똘이의 장난은 우리 아이들의 재치이고, 미스 심술의 새침은 우리 처녀들의 실상이다. 이정문씨의 심술 가족에는 우리들 모두의 인생, 우리가 겪는 모든 일, 우리가 누려야 할 희망과 염원이 깃들어져 있는 것이다." (백제출판사 심술가족 중, 1979년)

욕쟁이 할머니의 맛과 흡사한 '이정문표 심술'

조흔파 선생 말씀처럼, '심술 가족'들은 전통적인 놀부형 심술만 부리지 않는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유 있는 심술'도 많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사회 부조리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응징한다. 그 과정에서 독자들은 대리만족을 느낀다. 카타르시스를 맛본다. 욕쟁이 할머니로부터 느낄 수 있는 '맛'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이정문 선생의 '심술 맛'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일단 놀부에게서 영감을 얻은 것은 확실하다. 2004년 '심술 45년'을 맞아 발간된 평전에 나와 있는 선생의 '놀부론'이다.

이정문 선생의 청년 시절
 이정문 선생의 청년 시절
ⓒ 이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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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부는 일단 개성이 뚜렷한 사람이다. 산아제한도 잘하고 이재에도 밝고 심술부리는 건 지나치지만 현대인으로서는 유능한 생활인이라고 생각된다. 반면에 흥부는 무능한 인간의 대표격인 것 같다. 대책 없이 아이만 많이 낳고, 스스로 일을 개척하지 못하고 형한테 가서 손을 벌리다가 밥주걱으로 얻어맞기나 하고, 밥풀까지 뜯어먹지 않았는가? 놀부를 보면서 이기적이긴 하지만, 심술을 제대로 부리면 개성 있는 캐릭터가 탄생할 것 같았다. 여기서 심술캐릭터의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심술캐릭터의 아이디어가 시작됐다"는 시기다. 당시 3대 대중잡지 중 하나였던 <아리랑>을 통해 최초의 심술 캐릭터 '심술천지'가 등장했던 1959년, 선생의 나이 고작 열여덟 살이었다.

한창 꿈 많고 푸릇푸릇할 시절에 선생은 왜 하필 '심술'을 부리고 싶었던 것일까. "심술을 제대로 부린다는 것"을 알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여기에 '이정문표 심술 맛'의 유래가 또 하나 숨겨져 있었다.


태그:#만화, #이정문, #심술, #캉타우, #욕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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