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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봉하마을을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13일 봉하마을을 방문한 국가기록원 관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노무현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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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기록물과 관련해 청와대와 봉하마을이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록 사본을 국가기록원에 돌려주겠다"는 입장을 밝혀 해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16일 오후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에 올린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이 대통령에 대한 실망과 섭섭함을 토로해 전·현직 대통령 간의 앙금은 더욱 깊어지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이 편지에서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느냐"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어 그는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이라며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여 대통령 기록물 사본 반환을 계기로 이번 논란을 매듭지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는 말은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이라며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니며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다"고 밝혀 대통령 기록물 논란 과정에서 이 대통령에게 크게 실망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을 때 (이 대통령이)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다"며 "이 때도 (이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해서 선처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는데 연결이 되지 않았다"며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다"고 청와대의 무성의를 지적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는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내가 오해한 것 같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다"고 거듭 실망감을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은 "(기록물을)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 보내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다"면서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겠느냐?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놓은 말도 뒤집어 버린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이라고 '공개 편지'를 쓴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대통령)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하느냐"며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이냐,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이냐,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후에) 그렇게 할 것이냐,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느냐"고 반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선다"며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한다"는 인사말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노무현측 "실무자 소환하겠다는 치졸한 방식 쓰고 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쪽에서는 이날 국가기록원에도 공문을 보냈다. 실무협의를 위해 연락했으나 아무런 연락도 없이 18일까지 반환하라는 최후 통첩성 공문을 보낸 것에 대해 항의하면서 사저에 있는 사본을 가져가라는 내용이다. 이와 함께 열람권 보장을 협의하겠다는 약속에 대한 이행을 요구했다.

노 전 대통령쪽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런 방식이 아니라 실무자들을 검찰에 소환하겠다고 미리 흘리는 치졸한 방식을 쓰고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께서 실무자들이 불려들어가 곤욕을 치르는 상황을 원하지 않았다"고 기록물 사본 반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특히 요즘 검찰 분위기를 감안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자료는 반환해도, 불법행위는 그대로 남는다'는 청와대 입장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답했다.

다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편지 전문이다.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

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 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우리 쪽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 번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6일

16대 대통령 노무현


태그:#노무현, #대통령기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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