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여름철 보양음식의 대표 보신탕
▲ 보신탕 여름철 보양음식의 대표 보신탕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무덥다. 땀을 너무 많이 흘리고 얼음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입맛도 없고 온몸의 기운마저 쭈욱 빠진다. 쉬고 싶다. 어디 시골 마을 어귀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그 느티나무가 드리우고 있는 평상 위의 시원한 나무그늘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팔자 좋게 드러누워 낮잠 한 번 실컷 자고 싶다.

가마솥더위가 열대야까지 끌고 다니며 사람뿐만 아니라 동식물까지 지치게 하는 요즈음, 사람들이 자주 찾는 음식은 보양식이다. 여름철 보양식으로는 삼계탕, 백숙, 육개장, 어탕, 용봉탕 등이 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복더위 보양식의 대표선수를 보신탕이라 주저 없이 부르는 데 군더더기를 달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보신탕은 애완견이 아닌 식용으로 쓰이는 개를 삶은 물에 된장을 푼 뒤 대파, 부추, 토란줄기, 고사리 등을 넣고 포옥 삶아 갖은 양념을 곁들인 개장국을 말한다. 특히 개고기는 단백질과 칼로리 함량이 아주 높다. 때문에 기운 없는 여름철 한 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나른하게 축 처져 있었던 온몸에서 기운이 펄펄 솟아나는 것만 같다. 

하긴, 오죽 몸보신에 좋았으면 개장국을 보신탕이라 불렀겠는가. 오죽 건강에 좋았으면 다산 정약용(1762~1836) 선생이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형님 정약전(1758~1816)에게 '요즘 사람들이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해 시비가 있지만 형님께서 몸이 많이 약하시니 개라도 잡아 드십시오'라는 편지까지 썼겠는가(출처: <자산어보>). 

밑반찬으로 부추무침과 열무배추물김치, 오이, 풋고추, 양파, 된장, 들깨가루 양념장이 차례로 식탁 위에 올려진다
▲ 밑반찬 밑반찬으로 부추무침과 열무배추물김치, 오이, 풋고추, 양파, 된장, 들깨가루 양념장이 차례로 식탁 위에 올려진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호랑이는 십 리 밖에서도 개고기 냄새를 맡는다?

"어이~ 자네 말일세. 왜 스님한테 개고기를 비롯한 비린 것을 먹지 말라고 하는 줄 아는가? 예전에는 말일세. 산에 호랑이가 참 많이 살았거든. 호랑이는 다른 고기도 좋아하지만 특히 개고기를 좋아한다네. 그러니까 스님이 개고기를 먹고 절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면 호랑이가 스님을 개인 줄 알고 잡아먹어 버린다네."

나그네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는 스님 한 분은 "호랑이는 십 리 밖에서도 개고기 냄새를 맡는다"고 했다. 까닭에 깊은 산 속에 있는 절에서 수도하는 스님이 시주를 하기 위해 산 아래 있는 마을로 내려올 때에도 개고기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했단다. 고기도 마찬가지. 비릿한 내음이 나는 고기를 먹고 밤늦게 산으로 올라오면 뭇짐승들이 해코지를 하기 때문이다.

개고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까마득한 추억 하나 떠오른다. 1960년대 중반, 나그네가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닐 때였을까. 그해 복날이 다가오는 여름날 하루, 동산마을(지금의 창원시 상남동) 어르신 몇몇 나무 그늘 아래 동그랗게 쪼그리고 앉아 뭔가 쑥덕거리더니 어디선가 새끼줄에 묶인 누렁이개 한 마리를 끌고 왔다.

마을 어르신들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그 누렁이개를 도랑 건너 야트막한 산으로 끌고 가더니 이내 소나무 가지에 대롱대롱 매달았다. 그와 동시에 어르신 한 명이 몽둥이로 개를 때리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웬일일까. 사지를 비틀며 깨갱거리던 누렁이개가 묶인 새끼줄이 스르르 풀리는가 싶더니 누렁이개가 쏜살같이 어디론가 내빼 버렸다.        

그때부터 우리 마을에는 초비상이 걸렸다. 낮이든 밤이든 그 누렁이개가 나타나면 무조건 피하라는 것이었다. 몽둥이로 실컷 두드려 맞다가 거의 실신한 상태에서 어디론가 달아난 그 누렁이개가 원한에 사로잡혀 언젠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복을 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누렁이개는 한 번도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가끔 그 누렁이개 울음소리를 닮은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지만.

소주 한 잔 홀짝 마신 뒤 보신탕 국물을 떠서 입에 넣자 혀끝에 차르르 감긴다
▲ 보신탕 소주 한 잔 홀짝 마신 뒤 보신탕 국물을 떠서 입에 넣자 혀끝에 차르르 감긴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뽀글뽀글 끓고 있는 보신탕 속에 듬뿍 든 들깨가루가 마치 좁쌀처럼 톡톡톡 튀어 오르는 듯하다
▲ 보신탕 뽀글뽀글 끓고 있는 보신탕 속에 듬뿍 든 들깨가루가 마치 좁쌀처럼 톡톡톡 튀어 오르는 듯하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누런 수캐 제일, 그 다음으로 흰 개, 검은 개

초복(19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예로부터 복날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집에서 기르던 닭이나 누렁이개를 잡아 여러 가지 재료와 함께 가마솥에 포옥 삶아 몸보신을 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리고 복날 닭이나 개고기를 먹는 풍습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대체 개고기가 얼마나 몸에 좋기에 인기가 그렇게 높은 것일까.
 
조선 시대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는 "개고기는 오장을 편안하게 하며 모든 쇠약증을 막아준다. 혈액을 도우며 위장을 튼튼히 하고 골수를 충만하게 하며 허리와 무릎을 따뜻하게 하고 양기를 북돋워주고 기력을 더해 준다. 누런 수캐가 제일이고, 흰 개, 검은 개는 그 다음이다"라고 씌어져 있다.

<동의보감>은 또 "개소주는 특히 노인 원기회복에 좋다"라며 "개소주라는 것은 개고기에 여러 가지 약재를 섞어 수증기로 쪄서 만든 액즙을 보약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개고기를 원료로 하여 술을 만든 것에 부술주라는 것이 있으며, 무술주극능보양(무술주는 지극히 보양하는 효능이 크다)이다"라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여름철 몸보신에는 개고기만큼 좋은 음식도 드물다는 그 말이다. 하지만 일부 동물보호론자들은 개고기 먹는 사람들을 마치 야만인이나 생명 학대자쯤으로 몰아세우며 개고기를 평가 절하하기도 한다. 개고기는 영양학적으로 소, 돼지, 닭 등 다른 육류와 비교했을 때 단백질, 지방, 열랑, 무기질 등의 함량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고기 한 점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자 마치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린다
▲ 보신탕 개고기 한 점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자 마치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린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불포화지방산 많고 콜레스테롤 적어 동맥경화증, 고혈압 예방

"대한민국 언론인이라면 이 집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 지금도 보신탕 하면 이 집을 찾아오지만 언론인 생활할 때에는 사흘 건너 이 집에 와서 보신탕을 먹었어. 특히 땀을 많이 흘려 가운이 쪼옥 빠졌을 때 소주 한 잔과 함께 이 집 보신탕 한 그릇 먹은 뒤 취재하러 나가면 절로 힘이 펄펄 나는 듯했지."
- 윤재걸(시인, 언론인) 

그 집. 마포 공덕역 7, 8번 출구로 나와 오른쪽 길을 따라 1분 정도 걷다가 왼쪽으로 꺾어 5분쯤 걸어 올라가다 다시 왼편을 바라보면 그 집이 있다. 그 집이 바로 보신탕만 30여 년 동안 조리해오고 있는 보신탕의 명가이다. 그 집의 살가운 점은 행여 보신탕을 먹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삼계탕을 조리해주는 사려 깊은 배려에 있다.      

얼마 전 점심나절, 나그네의 음식 길라잡이 윤재걸(61) 선생과 함께 마포 도화1동에 있는 한 보신탕 전문점을 찾았다. 나그네가 나이를 묻자 그저 50대라고만 밝히는 이 집 주인 오금일씨는 "요즈음에는 굳이 복날이나 여름철이 아니어도 계절에 관계없이 보신탕을 찾는 사람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말한다.

오씨는 "복날에는 앉을 자리가 없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며 "개는 보성과 벌교에서 가져온다"고 귀띔한다. 오씨는 이어 "여름에 돼지고기는 잘 먹어야 본전이지만 개고기는 탈나는 일이 없다"라며 "기름도 돼지고기나 쇠고기보다 훨씬 소화가 잘 된다. 개고기는 불포화지방산이 많고 콜레스테롤이 적어 동맥경화증과 고혈압을 예방한다"고 덧붙였다.

가끔 보신탕 국물과 함께 건져 먹는 토란줄기와 고사리의 맛도 깊다
▲ 들깨 양념장 가끔 보신탕 국물과 함께 건져 먹는 토란줄기와 고사리의 맛도 깊다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삶으면 풀어지는 성질이 있는 개고기 

"나도 첨엔 개고기를 먹지 못했어. 어릴 때 어머니께서 늘상 '너는 개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신 게 개고기에 대한 일종의 강박관념으로 자리 잡았던 게지. 하지만 언론사에 다니면서 선배들이 권하는 데 어찌 안 먹을 수 있겠어. 그렇게 먹다보니까 점점 개고기의 진맛을 느낄 수 있더라고."

나그네에게 "소주 한 잔 해야지?"하며 윤 선생이 소주 한 병과 보신탕을 시키자 밑반찬으로 부추무침과 열무배추물김치, 오이, 풋고추, 양파, 된장, 들깨가루 양념장이 차례로 식탁 위에 올려진다. 이어 개 살코기, 깻잎, 배추, 부추, 토란줄기, 고사리, 대파 등과 갖은 양념을 넣고 끓인 보신탕 한 그릇이 떡 하니 자리 잡는다. 

뽀글뽀글 끓고 있는 보신탕 속에 듬뿍 든 들깨가루가 마치 좁쌀처럼 톡톡톡 튀어 오르는 듯하다. 소주 한 잔 홀짝 마신 뒤 보신탕 국물을 떠서 입에 넣자 혀끝에 차르르 감긴다. 소주 한 잔 더 마신 뒤 개고기 한 점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자 마치 솜사탕처럼 부드럽게 살살 녹아내린다. 가끔 보신탕 국물과 함께 건져 먹는 토란줄기와 고사리의 맛도 깊다.

윤재걸 선생은 "개고기는 삶으면 풀어지는 성질이 있다"며 "개고기가 소화가 아주 잘되는 것은 삶으면 풀어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윤 선생은 이어 "보신탕에 들깨를 넣는 것은 개 특유의 냄새를 없애기 위한 것"이라며 "들깨기름 맛이 개기름 맛과 비슷하기 때문에 두 음식의 궁합이 참 잘 맞다"고 말했다.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음식 보신탕
▲ 밑반찬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음식 보신탕
ⓒ 이종찬

관련사진보기


여름철 보양음식의 대표 보신탕. 한 점 입에 넣으면 포옥 삶은 돼지고기의 맛이 맴도는 것 같기도 하고, 포옥 삶은 쇠고기의 맛이 맴도는 것 같기도 한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음식 보신탕. 올 여름, 가마솥더위도 잡고, 땀으로 빠져나간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민족음식 보신탕 먹고 '신 보릿고개' 단박에 뛰어 넘으세요.  


태그:#보신탕, #마포 도화동, #대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