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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어머니가 아주 어렸을 적 외갓집은 놋쇠그릇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셨습니다. 일하는 사람도 많고, 남부럽지 않게 사셨습니다. 하지만 스테인리스 그릇이 들어오면서 놋쇠그릇을 찾는 사람은 급격히 줄어들었고, 공장이 망하면서 그때부터 외갓집은 가난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8남매의 첫째셨던 어머니는 그 가난이 지긋지긋하다며 옛날 이야기 하시는 걸 지금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학교 다닐 때 등록금도 가장 늦게 내서 칠판에 가장 오래 이름이 적혀 있는 건 예삿일이고, 등록금도 제 때 못 내는 형편에 준비물 살 돈을 달라고 집에 얘기할 수가 없어서 그냥 학교에 갈 때가 더 많았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배울 건 다 배웠는데 그깟 종이쪼가리 한 장(졸업장)이 무슨 소용이냐'며 고등학교 3학년의 마지막 분기 등록금은 내지 못하셨고, 그래서 어머니의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 이십니다.

 

그런 형편이니 수학여행은 꿈도 못 꾸셨다고 해요. 다들 설악산으로 수학여행 갈 때 전교에서 어머니를 포함한 다섯 명은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고 하네요. 수학여행은 못 가도 학교에는 나와야 했다고 해요. 학교에 나와서 자습을 하고, 중간에 하루는 그 다섯 명과 함께 근처로 소풍만 갔다 오셨다고 하시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쉬움이 묻어 있었습니다.

 

지난 11일 서울시교육청이 정부의 학교 자율화 추진 계획에 맞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2단계 자율화 계획을 발표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눈에 띄는 부분은 개별 학교장의 권한을 강화하면서 각종 교육활동을 학교장의 책임하에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부분인데요. 당장 내년부터 초·중·고교의 수련회와 수학여행이 학교장 재량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네요. 이렇게 되면 해외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따로 모아서 국내로 수학여행을 가게 되는 일도 다시 생기게 되겠죠.

 

어머니는 저 뉴스를 보시면서 깊은 한숨을 쉬시며 "돈 백만원씩 없어서 같이 못가는 애들도 얼마나 많을 텐데, 못 가는 애들은 얼마나 상처받겠어. 수학여행 갔다 와서도 수학여행 갔다 온 애들이나 선생님이나 '그 때 이러이런 거 재밌었지?' 하면서 한 달은 수학여행 이야기 하는데... 그때마다 못 간 애들 심정은 어떻겠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새 나오는 정책들 보면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 너무 둔감한 것 같아"라는 말씀도 함께요.

 

정책을 결정하는 분들 중에서 저희 어머니와 같은 경험을 한 분들이 계셨으면 이런 정책이 쉽게 나올 수는 없었을 것 같아요. 모 개그 프로그램의 이런 대사가 생각나는군요. "수학여행 가봤어? 가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요."


태그:#수학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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