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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동안 지속되는 열대야 속에 입맛도 떨어졌다. 너도 나도 어려운 경제 사정에 외식을 하기에도 부담이 든다. 부담이 드는 게 어디 외식뿐이겠는가. 아이들 아이스크림 사주는 것도 조금씩 부담스러워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500원 했던 아이스크림이 700원, 700원짜리는 1000원이다.

 

동네 마트에선 20%~ 50% 할인된 가격에 팔지만 예전에 비해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다. 어젯밤에도 아이들과 산책 갔다 오다 아이스크림을 사달라는 걸 빈손으로 왔다는 핑계 아닌 핑계 삼아 그냥 집에 들어왔다.

 

오늘도 퇴근하자 아내는 뭘 해 먹지 하고 묻는다. 무더위에 몸은 축축 처지는데 가족들을 위해 해줄 만한 게 마땅치 않아서이다.

 

"국수나 삶아 먹든지 아님 보리밥 해먹자."

"국수는 엊그제 먹었는데 또 먹어?"

"그럼 모처럼 보리밥 먹자. 당신이 조금 귀찮기는 하겠지만."

"귀찮기는. 좋아 그럼 오늘 저녁은 보리밥이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내는 보리와 약간의 쌀을 씻어 물에 담근다. 보리밥을 할 때 바로 씻어 밥을 하면 찰한 맛이 떨어진다. 해서 충분히 불린 다음에 하면 밥도 찰지고 맛도 훨씬 좋다. 보리쌀을 물에 담근 다음 아내는 동네 마트에 가서 오이를 사왔다.

 

천 원에 보리밥의 별미를 맛보다

 

아내의 음식 솜씨는 맛깔스럽다. 마음먹고 하면 말이다. 아내의 손이 부산스럽게 움직인다. 감자를 깎아 프라이팬에 데친다. 들깨와 쌀을 불린 다음 믹서기로 갈더니 우렁탕을 만든다. 우렁은 얼마 전 아내와 함께 시골에 가서 잡은 것이다.

 

우렁탕을 만든 다음 오이를 무치고 된장국을 끓이고 상추를 잘게 잘라 놓는다. 아이들도 엄마를 돕는다고 오이 껍질을 벗긴다. 그동안 보리밥은 솥에서 익어간다. 더운 여름 주방에서 나는 열기에 더 후덥지근하지만 침은 목구멍에서 꼴깍거린다.

 

드디어 준비 완료. 작은 식탁엔 보리밥, 우렁탕, 감자볶음, 상추, 고추장, 된장국, 상추 등이 각자의 주인을 위해 나란히 정렬해 있다. 아차, 한 가지 더 있다. 들기름이다. 보리밥이나 다른 비빔밥에 들기름을 넣은 것하고 넣지 않은 것하곤 맛이 천양지차이다. 밋밋한 맛의 밥도 들기름을 치면 전혀 새로운 맛을 가져다준다.

 

참고로 들기름은 듬뿍 부어도 전혀 느끼하지 않다. 우리 어머니의 지론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참기름은 조금만 양이 많아도 느끼해서 먹기가 힘들다. 하지만 들기름은 지나치게 많다 할 만큼 넣어도 고소함 맛만 날뿐 전혀 느끼함이 없다. 해서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밥을 비벼 먹을 땐 들기름을 듬뿍 넣어주면서 이렇게 항상 말씀하셨다.

 

"들기름은 몸에 좋은 것잉게 많이 먹어도 괜찮여. 참지름처럼 늑늑하지도 않고. 긍게 투덜대지 말고 먹어두라잉."

 

어머니의 이 소신은 지금껏 변한 적이 없다. 그 소신에 인이 박혀서인지 나도 밥을 비벼먹을 땐 들기름을 듬뿍듬뿍 넣어 먹는다. 물론 들기름처럼 고소한 어머니의 정도 함께 말이다.

 

밥을 비빈다. 여기에서 돈을 들여 산 것은 오이 천 원어치뿐이다. 나머진 직접 품을 팔아 구했거나 시골에서 가져온 것이다. 보리도, 들기름도, 상추 감자도 모두 시골에서 가져온 것이다. 천 원에 모든 것을 장만한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운지 아내는 아이들에게 은근히 자랑을 한다.

 

"얘들아! 맛있니?"

"응, 엄마. 되게 맛있어."

"너희들 오늘 보리밥 재료에 얼마 든지 알아?"

"몰라."

"천 원이야 천 원."

"거짓말. 이렇게 많은데 천 원밖에 안 들어?"

"애들은…. 사실 오이도 세 개 밖에 사용 안했으니까 천 원도 안든 거야. 많이 먹어 다음에 또 해줄게."

 

알았다는 대답과 함께 아이들은 상추와 된장국, 고추장을 함께 버무린 밥을 맛있게 먹는다. 나도 쓱쓱 비벼 먹는다. 보리의 덜그렁한 알과 상추의 상큼한 맛, 고추장의 매콤하고 달콤한 맛이 입안에 씹히며 7월의 무더위를 훌쩍 떠나보낸다. 입맛도 돌아오고 말이다.


태그:#보리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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