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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일 오후 전북 부안군 위도의 한 섬마을에 40년 만의 무죄와 명예회복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재판은 다시 열려 무죄는 얻어냈지만 40년 동안 어부들이 겪어온 설움과 고통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9일 오후 전북 부안군 위도의 한 섬마을에 40년 만의 무죄와 명예회복을 축하하는 펼침막이 걸려 있다. 재판은 다시 열려 무죄는 얻어냈지만 40년 동안 어부들이 겪어온 설움과 고통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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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그 사이 강산은 네 번이나 바뀌었다. 사랑하는 동무는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고문후유증을 앓다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 늙은 어미 역시 너무 울어 실명된 채 생을 마감했다. 40년 세월 동안 이들이 겪은 설움과 고통은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까.

9일 오전 전주지법 정읍지원은 만 40년 만에 재개된 1968년 태영호 납북사건과 1978년 위도 계모임 간첩단 사건(관련기사- "계모임 간첩단의 눈물...") 재심 재판에서 관련자 전원에게 무죄를 판결했다. 이로써 위도 어부들은 40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은 것이다.

재판부 "자진월북 증거 없다... 경찰 가혹행위 인정"

재심 재판부는 "1968년 태영호 납북 사건은 일부 피고인의 법정 자백 외에는 자진월북을 입증할 증거가 없고, 그 자백 역시 일부 피고인들의 유죄판결이 나온 다음에 나온 것이어서 실효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무죄판결 요지를 설명했다.

아울러 "이미 해군이 검찰에 보낸 회신문에서도 어부들이 자진월북하지 않았고 북한군에 의해 강제납북됐음을 밝혔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무죄판결 요지를 덧붙였다.

또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1968년 사건 관련자인 강대광씨 등이 계모임을 만든 것이 화근이 된 이른바 '78년 위도 계모임 간첩단 사건'에 대해서도 "경찰의 가혹행위가 인정된다"며 "강압에 의한 증거는 실효성이 없다"고 무죄판결 이유를 밝혔다.

재심변론을 맡은 송호창(민변 사무처장) 변호사는 "과거 국가권력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해 늦었지만 사법부가 피해자들의 명예회복과 손해배상을 권고하는 의미의 판결"이라고 설명했다.

송 변호사는 또 "어떻게 손해배상과 명예회복을 한들 40년 동안 그 분들이 당해온 희생과 아픔을 보상할 수 있겠냐"면서 "다시는 이런 희생이 재발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들을 취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송 변호사는 "이 사건 이전에 납북어부 사건들은 주로 민사로 다뤄져 왔는데 이 사건은 반공법이 강화된 이후 첫 형사사건으로 다뤄진 납북어부 사건이었다"면서 "분단 현실이 준 고통스런 과거에 대해서 첫 번째로 구제했다는 의미가 있는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9일 무죄가 확정된 두 사건의 당사자인 강대광(67)씨는 "40년간의 긴장이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린 느낌"이라며 "날개가 있다면 훨훨 날아서 대한민국이 아니라 세계를 일주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강씨는 "무죄판결을 받고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이 아내였다"면서 "40년간 국가와 사회와 이웃으로부터 외면 당하고 나 대신 애들 키우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강씨는 "나로 인해 피해본 이웃 분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지만 오늘의 이 기쁨과 감격을 나누고 싶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40년 만에 간첩누명을 벗은 강대광씨. 그는 '위도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십년 감옥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는 "날개가 있다면 훨훨 날아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40년 만에 간첩누명을 벗은 강대광씨. 그는 '위도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십년 감옥생활을 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그는 "날개가 있다면 훨훨 날아 세계일주를 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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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과 주민들, 드디어 화해한다

한편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에서는 40년 만의 특별한 화해의 행사가 열린다. 앞서 무죄가 결정난 두 사건 외에 이른바 '납북귀환어부 고 백남욱 사건'과 관련된 주민들이 모여 '화해의 만남'을 갖는다.

사건 발생 당시 위도는 인구 2500여 명이 거주하며 서해안 3대 파시 중 한 곳인 위도 파시가 열릴 만큼 활기찬 곳이었다. 하지만 연이은 납북어부 간첩조작 사건에 주민 서로 간에 가해증언을 강요당하는 등 인심 좋던 섬마을 공동체가 철저히 붕괴되는 아픔을 겪으며 40년을 지나왔다.

주민들이 스스로 준비해온 이번 화해의 만남은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안병욱)가 후원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위도 주민들이 그동안의 아픔과 갈등을 해소하고 미래의 화해로 가기 위해 내딛는 작은 발걸음"이라고 이번 만남에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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