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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미사에 참석했다.

 

도착했을때엔 미사가 이미 끝나고 행진이 이제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침묵하며 행진하자"는 신부님 말씀에 편안함과 위로를 느꼈다. 나는 촛불집회에 그다지 열심히 나가지 못했다. 단 몇 번만 참석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두 달에 걸친 기간 동안 나도 모르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어젯밤, 침묵 속에 오로지 촛불만 든 채 그 많은 사람들과 조용히 함께 걸어가면서 그것을 깨달았다.

 

상.처.

 

그것은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모든 것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참담한 광경을 끊임없이 목격했을 때의 상처였다.

 

그것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잘 벌 수 있다면 그것이 최고의 가치이자 윤리이자 도덕이자 정치가 된 세상을 목격했을 때의 상처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여 사람들 간의 증오와 폭력을 부추기고, 이간질시키며, 한편으로는 협박과 폭력을,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원칙'이라는 초헌법적 명분을 들이대며, 권력이 법이고 법이 권력인 세상을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위정자들과 공무원 집단들을 목격했을 때의 상처였다.

 

비열하게 뒤에서 공격하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약한 자 앞에서는 강하고 강한 자 앞에서는 비굴한, 권력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가리지 않고 하는 언론, 경찰, 검찰, 정치인들을 목격했을 때의 상처였다.

 

내가 낸 세금으로 국민에게 봉사해야할 공직자인 경찰, 검찰, 국회의원, 대통령이 국민에게 위협과 폭력을 휘두르며, 깔아뭉갤 대상으로 여기는 것을 목격했을 때의 상처였다.

 

저 야비하고 천박하고 폭력적인 정치 모리배들이 다름 아닌 이 나라 국민의 투표에 의해, 다수의 지지를 받고 선출되었다는 그 기가막힌 사실로부터 받게 되는 무력감이라는 이름의 상처였다.

 

신부님은 '촛불'이 국민의 염원이자 눈물이라고 했다. 그 간절한 염원으로 모인 그 공간에서 누군가를 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그 기가막힌 상황, 방패와 물대포, 소화기, 욕설의 폭력이 난무했던 전쟁터를 목격했을 때의 상처였다.

 

그것은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증오, 경멸, 원한을 품게 되었을 때의 상처였다.

 

나는 무기력했다. 상처는 시나브로 차곡 차곡 쌓여 구정물처럼 고여있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 소식에서 많은 사람들이 흘렸던 눈물은 그 상처에 대한 치유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촛불과 함께 걸었던 그 길 위에서,

아무말 없이 걸었던 그 침묵의 길 위에서,

내가 왜 여기까지 왔는가, 그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 그 길 위에서,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증오하지 않고도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상처가 깊어졌을 때, 이렇게 무력감이 깊어졌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곳으로부터 울려나오는, 그 알 수 없는 간절한 기도, 나는 그 힘을 믿고 싶었다.

 

내가 그 힘을 믿던 믿지 않던, 나는 계속 기도를 하고 있었다. 간절한 기도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궁극의 것이라는 것, 다만 나는 그 생각 만을 되뇌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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