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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몸은 지쳤고 마음엔 상처가 남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이 외로웠다. 오늘 신부님과 수녀님들에게 더없이 큰 위로를 받았다. 국가에 기대했던 위로를 그들이 해줬다."

 

세살짜리 아들을 안고 있던 최원정(33)씨의 눈이 젖어들었다. 최씨가 든 촛불 하나의 밝기만으로도 눈가의 물기는 선명하게 보였다. 최씨는 "고맙고 또 고맙다"며 부끄러운 듯 웃어 보였다. 그리고 무대에 선 김인국 신부를 향해 촛불을 흔들었다.

 

30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저마다 감동을 이야기했고, 입을 맞춘 듯 고마움을 나타냈다. 천주교 신자든 아니든 똑같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온라인도 같은 반응이었다. 한 독자는 <오마이뉴스>에 이런 댓글을 남겼다.

 

"신부님 말씀이, 은은히 들리는 성가 소리가 많이 위로가 됐습니다. 그동안 촛불 정국을 지내면서 많이 외로웠었나 봅니다. 저뿐만 아니라 저의 카페 회원분들도 다들 눈물 흘리셨다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들 지치고 힘들 때 이렇게 사제단이 나와 모두를 위로해주셨습니다. 따뜻한 어머니 품에 안겨 실컷 울면서 위로받은 느낌입니다."

 

"국가에 기대했던 위로를 사제단이 해줬다"

 

일부 네티즌들은 "오늘부터 천주교 신자 되겠다"며 난리다. 87년 이후 처음으로 대규모로 열린 사제단의 시국미사는 그 자체로 '뉴스'였고, 두 달 가까이 촛불을 든 시민들에게는 '사건'이었다. 이렇게 촛불 시민들과 천주교는 한 번에 '통'했다.

 

30일 서울광장에는 약 3만여 시민들이 몰렸다. 하지만 시국미사의 무대는 좁았고 앰프 시설 또한 턱없이 작았다. 그럼에도 서울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했고, 질서 정연했다. 시국미사였지만 간간이 환호성과 박수가 터졌다. 그럴만했다. 사제단의 '센스'가 시민들의 가려운 곳을 박박 긁어줬기 때문이다.

 

사제단을 대표해 집전을 맡은 전종훈 시몬 신부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한다"며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시국미사 중간에는 성가를 대신해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헌법 제1조>가 울려 퍼지기도 했다. 머리에 흰 미사보를 쓴 신도는 물론 비신도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촛불을 흔들었다. 사제단의 센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사제단 신부들은 거리행진을 하며 "조중동 폐간!", "어청수 해임!", "이명박 회개!"를 외쳤다. 명동과 을지로에 있던 시민들은 이런 신부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사제단은 어떻게 국민들과 '통'했나

 

이렇게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또 천주교 신도와 비신도가 하나가 되어 사제단에게 지지를 보낸 이유는 명확하다. 사제단이 지치고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에 위로와 화해 그리고 소통의 노둣돌을 놓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이명박 정부의 태도는 어땠을까. 사제단이 단번에 놓은 위로와 화해의 노둣돌이 왜 국민과 이명박 정부 사이에는 놓이지 못했을까. 지난 일들을 살펴보자.

 

지난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은 특별 기자회견에서 "뼈저린 반성을 했다, 제 자신을 자책했다"고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정부의 태도는 돌변했다. 지난 6월 28일 밤과 29일 새벽 시민들과 경찰은 대규모 유혈 충돌을 벌였다. 이어 곧바로 29일 오후 정부는 관계 장관회의를 열어 촛불집회 강경 진압 의지를 재차 천명했다. 곧바로 서울광장은 봉쇄됐고 시민들은 경찰 저지선 앞에서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은 30일 새벽 참여연대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같은 날 대검찰청에서 전국의 공안·형사부장들이 모아 놓고 "불법과 폭력으로 얼룩진 이번 사태에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됐다"며 "총력 대응체제 구축"을 지시했다. 이미 청와대는 언론인들에게 "이제 촛불집회라 표현하지 마라"며 노골적으로 집회 참석자들을 비난했다. 한승수 총리 역시 "불법 폭력 집회가 도를 넘었다"고 비난했다. 그야말로 검찰-경찰-청와대의 파상 공세다.

 

이 모든 게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기자회견 이후 불과 십여일 만에 일어난 일들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정부를 향한 시민들의 불신은 더 깊어졌다. 시민들은 "이명박 정부에 신뢰는 눈곱 만큼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두 달 가까이 밤샘을 하며 촛불을 든 시민들 가슴에 남은 건 분노와 상처였다. 30일 저녁 서울광장에서 한 시민은 "국민을 섬기겠다던 이명박, 결국 변한건 너야!"라는 피켓을 들었다.

 

이명박 정부와 시민들은 왜 '불통'일까

 

김정민(39)씨는 "이명박 정부는 진정한 소통이 뭔지, 대화가 뭔지, 그리고 민주주의의 기초가 뭔지도 모른다"며 "결국 정부가 힘 대 힘으로 국민과 겨뤄 보겠다면 국민의 선택도 한 가지뿐"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힘과 권위로 촛불을 끄려 하지만, 시민들은 오히려 그런 정부의 태도에 반발하며 촛불을 더 들고 있다. 시민들은 "5공으로 퇴행하느냐"며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국민과 정부의 힘 대 힘 대결. 최악의 모양새다.

 

30일 서울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밤 10시께 해산했다. 지난 2개월 동안 열린 촛불문화제와 시위 중에서 가장 일찍 끝난 행사였다. 시민들을 해산하게 만든 건 물대포도, 경찰의 원천봉쇄와 군홧발도 아니었다.

 

김인국 신부가 "밤 10시가 됐다, 귀가할 시간이니 어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내일도 여기서 촛불을 들어야 하니 서운해도 귀가해달라, 국민에게 힘이 될 때까지 사제단이 단식기도회를 계속하겠다"는 말을 시민들은 받아들였다.

 

정부로서는 신기한 일일 것이다. 자신들은 그동안 무수한 담화와 기자회견 그리고 경찰 선무 방송을 통해 "불법 폭력 집회를 이제 그만두라"고 해도 듣지 않던 시민들이 신부의 말 한마디에 돌아섰으니 말이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이해와 화해의 노둣돌은 엄포와 물대포로 놓여지지 않는다.  국민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진정 무엇을 원하고 어떤 위로를 받고 싶은지 사제단은 아는데 정부는 아직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국민과 정부의 '불통'은 오늘도 계속 된다.


태그:#시국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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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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