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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광화문과 시청에서 벌어지는 시위로 길이 막힌다. 저녁 늦게 학원을 다니는 아들 녀석은 엊그제는 닭장차를 넘어서 집으로 왔다 한다. 하지만 아들 녀석의 눈에는 불편함이 보이지 않는다. 참여하지 못한 것이 못내 미안한 눈길을 보낸다.

 

새벽에도 청와대로 가는 모든 길목에 검문을 한다. 우리의 생명에 대한 위협으로 어린아이나 할머니나 할 것 없이 모두 나서서 촛불을 들었다. 이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은 것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에겐 매우 심각한 사태다. 그러나 미국의 시민들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동물을 바라보는 서양과 동양의 시각차이 

 

동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불교적 세계관이 널리 퍼져있는 동양과 달라서일까? <불교와 인권>(불교시대사, 2008)에서 말하는  동물 해방론과 동물 권리론은 서양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 한다. 반면 동물 존중론은 불교적 세계관을 말한다.

 

서양 특히 미국의 세계관은 기독교에서 찾을 수 있다. 구약에서는 동물은 영혼을 갖지 못한 존재로서 인간의 목적을 위한 도구일뿐 전적으로 인간의 지배하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성주의자인 데카르트는 인간의 영혼 혹은 의식을 이성과 완전히 동일시하면서 동물은 조금도 의식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다.

 

칸트 역시 동물은 인간과 달리 자기 의식적이지 못하기에 수단적 존재이고 간접적 의무의 대상일 뿐으로 칸트와 데카르트 공통으로 인간과 동물 사이에는 서로 건널 수 없는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즉 도덕적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창조론에 의하면 인간은 절대자의 형상에 따라 창조된 특별한 존재이며 어떤 존재에도 비교될 수 없는 우등한 존재로서 다른 여타의 존재들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받은 존재로 보았다. 동물은 인간에게 유용하게 쓰이도록 만들어진 존재이므로 이들을 인간의 관점에서 유용하게 관리하고 지배하는 것이 이치인 것이다.

 

진화론은 동물과 인간간 격차를 줄임으로써 간접적으로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상승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정신적 능력을 갖지 못한 동물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다.

 

불교적 세계관

 

불교의 윤회론에 의하면 인간과 동물은 입장이 뒤바뀔수 있는 존재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높은 위계를 갖는 것도 아니며 동물에 대한 지배권을 부여받은 것도 아니다. 인간과 동물 간에는 절대적 구별선, 혹은 배타적인 이분적 경계선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인간과 동물은 혈연적인 관계이며, 인간과 동물간은 행위의 특질에 따른 동물간 상호 이동한다.  

 

연기설에서도 나와 너, 인간과 동물, 모든 생명체, 더 나아가서 모든 존재가 동체이고 둘이 아닌 불이이다. 인권은 인간과 동물의 영역에 한정된 문제만이 아니라 온 존재의 안녕에 관한 문제이다.

 

'우리 자신이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쾌를 좋아하고 고를 싫어하듯이 다른 생명체도 그러하다'고 붓다는 말했다. 이러한 욕구들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존재, 도덕적 행위로서 존중을 필요로 한다.

 

'동물들에게 있어서도 자신들의 운명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육체적인 즐거움과 고통도, 그들이 우리와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것들이다. 나아가서 동물들은 우리처럼 공포와 만족, 분노와 외로움, 좌절과 충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다

 

모든 존재는 하나로 연결된 전일주의적 생명의 그물망 속에서 살고 있다. 생명의 이러한 실상으로 인하여 인간 종이나 동물 종 혹은 인간 개체나 동물 개체의 안녕은 그들 자신의 안녕만으로 보장될 수 없게 된 것이다. 인간의 안녕을 위해서도 모든 존재의 안녕이 보장되어야 한다.

 

첫째, 육식위주의 식단에서 채식위주의 식단을 장려하고 그 가치를 인식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야 한다.  영양소를 바탕으로 칼로리를 계산하여 식단을 짜는 영양사들에게 채식식단의 중요성을 적극 흥보할 필요가 있다. 채식에서도 충분한 고단백을 섭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여 사찰음식을 홍보하고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가야 한다.

 

둘째, 서양식단 위주의 기초영양소를 채식식단과 우리 전통음식에서 찾아 제공해야 한다. 육류 대신 먹었던 콩 요리는 수천년동안 우리 민족의 건강을 보살펴준 훌륭한 식품이다. 전통 사찰에서 채식요리를 전문적으로 맛볼 수 있는 식당 운영과 만드는 법들을 가르쳐야 한다.

 

셋째, 템플스테이에서도 참선등의 정적인 수행 뿐 아니라 불교적 세계관을 직접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제공되어야 한다.  적극 홍보하고 직접 요리도 해 보고 경연대회도 하는 등 시민들이 채식의 건강성을 찾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참고도서 <불교와 인권> (불교 시대사, 2008)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불교포커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물 존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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