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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게 익은 오디가 지나가는 길손을 유혹한다.
▲ 오디. 검붉게 익은 오디가 지나가는 길손을 유혹한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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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게 익어가는 오디의 유혹 견디기 힘들어

세상은 답답했다. 그러나 자연은 제 시계를 쉼없이 돌리고 있었으며 산자락의 오디도 검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초록이었던 오디가 제 스스로 옷을 갈아 입으며 농염하게 익어가는 것이다. 그 모습은 한 생애를 살아가면서 한 번도 검붉게 익어 본 적 없는 내 무심한 심성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바람이 골짜기를 훑자 익은 오디가 바닥으로 후드둑 떨어졌다. 바닥으로 떨어진 오디는 과즙을 터트리며 검붉은 핏자국을 만들었다. 오디는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하지만 몸 속에는 수많은 씨를 품고 있었다. 씨는 빗물에 실려 낮은 곳으로 흐르다 끝내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잊혀져 간다. 허튼 세상이다.

먹을 게 없던 어린 시절엔 오디로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했다. 허겁지겁 오디를 따 먹고 나면 손과 입술은 오디빛으로 물들었다. 집으로 돌아갈 때는 빈 도시락에 오디를 가득 따서는 집에 있는 누이동생의 빈 배를 채워주기도 했다.

며칠째 익어가는 오디를 지켜보며 '저것들을 따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각했다. 오디를 따려면 비가 오기 전에 실행해야 했다. 아침 시간,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적당했다. 그러고 보니 내일이 정선 장날. 팔 것 없어 하는 어머니를 위해 작은 선물이라도 해야 했다.

"어머이, 오디 딸 건데?"
"남의 것을 따면 어쩌누?"
"나무 주인에게 어머이에게 효도 한 번 하겠다며 허락을 받았어."

그렇게 말은 했지만 어머니는 심드렁했다. 아무려나 옷을 든든히 챙겨 입고 포장을 챙기고 소쿠리와 긴 장대를 들고 뽕나무로 갔다. 포장을 넓게 펴고 나무로 올라갔다. 나이 스무살은 훨씬 넘었을 뽕나무엔 까만 오디가 다닥다닥 달려 있었다.

"저, 잘 익었어요"
▲ 유혹. "저, 잘 익었어요"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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덖어서 차로 만들거나 쌈으로 식용한다. 당뇨와 암예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인기가 높다.
▲ 뽕잎. 덖어서 차로 만들거나 쌈으로 식용한다. 당뇨와 암예방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인기가 높다.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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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흔들었다. 오디 떨어지는 소리가 양철 지붕에 떨어지는 우박소리처럼 경쾌하다. 하지만 흔들어서 떨어지는 것은 이미 싱싱함을 잃은 것들이다. 나무 장대로 오디를 털었다. 밤을 털 듯 대추를 털 듯, 오디를 털었다.

허나 다 털 수는 없는 일이다. 오디가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얼마간은 남겨 놓아야 했다. 애초 내 것이 아닌 터라 지나친 욕심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잠시 털었는데도 오디는 한소쿠리나 떨어졌다. 몇 개 주워 맛을 보니 달고 맛있다. 어릴 때 먹던 오디맛과 다르지 않았다. 모든 게 변하는 시절, 오디는 여직 제 맛을 간직하고 있었다.   

뽕나무에 얽힌 사연, 이젠 추억으로만 남아

어린 시절 집에서는 양잠을 했다. 집집 마다 하는 일이었다. 작은 누에가 고치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컸다. 물론 뽕잎을 따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었다. 뽕잎을 사각사각 갉아 먹으며 큰 누에들은 고치가 되어 보리쌀로 혹은 자반고등어가 되어 돌아왔다.

지금은 소방서와 보건소가 들어섰지만 예전에 살던 집 근처는 뽕나무밭이었다. 뽕나무밭의 주인은 제사공장. 누에고치를 키워 실을 생산하는 공장이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스무살 안팎의 여성들. 그녀들은 하늘색 옷을 입고 하루 두 차례 뽕나무 밭으로 나와 뽕잎을 땄다.

그 시간이 되면 동네 총각들이 몰려와 휘파람을 휙휙 불며 영자를 찾았고, 복순이를 찾았다. 그러면 여공들은 까르르 웃으며 "상철아, 퇴근 후에 만나!"하며 맞장구를 쳤다. 하루 3교대로 돌아가는 제사공장. 그래서인지 여공들도 많았고, 여공 만큼이나 총각들도 많이 꼬였다.

친구네 집은 제사공장에서 나오는 번데기를 받아 그것으로 아이들을 다 키웠다. 동네 사람들은 친구네 집에서 번데기를 사다가 먹었다. 번데기 한 되만 있으면 온 식구가 며칠은 먹었다. 이젠 사진에서나 볼 수 있는 옛 이야기이다.

그의 말이 정말인 듯, 공장 뒷문으로 여직공들이 바구니 하나씩을 들고 뽕밭으로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가씨들은 모두들 연한 하늘색 계통의 두건과 작업복을 입고 있어, 마치 구름 송이들이 바람결에 산들거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 강기희 장편소설 <동강에는 쉬리가 있다> 중에서

나는 그 모습을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 내 소설 속에 그 장면을 넣기도 했다. 여공들이 퇴근할 시간이 되면 자전거를 탄 총각들이 공장 앞으로 모여 들었고, 몇몇은 자전거 뒤에 여자친구를 태우고 비포장 길을 달렸다. 그 속에는 지금은 부동산업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었다. 26년 전의 일이고 그렇게 만나 결혼한 친구는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은 스무살이 되었다.

어린 시절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뽕나무 밭으로 숨어 들어 오디를 땄던 그 기억은 아직도 새롭다. 그때마다 뽕나무 밭을 지키는 '뻔데기 할아버지'에 의해 쫓겨났지만 우리는 끝내 익어가는 오디를 포기하지 않았다.

오디는 도시락에 따야 제맛이라니 도시락 두 개를 챙겨 나갔다.
▲ 도시락. 오디는 도시락에 따야 제맛이라니 도시락 두 개를 챙겨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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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맛이지요.
▲ 도시락에 담긴 오디. 시골에서만 즐길 수 있는 맛이지요.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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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를 소쿠리에 담아 오자 어머니는 "아구야, 많이도 땃네"하며 반색을 했다. 어머니는 즉석에서 쓸만한 것을 골라냈다. 버릴 게 없는 오디. 좋은 것들은 팔고 팔 수 없는 것들은 오디잼을 만들거나 오디주를 담근다. 그것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은 말려서 환으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

귀한 오디술, 먹으면 먹을 수록 힘이 생긴다고

오디는 '상실' 또는 '오들개'라고도 하며 알콜을 분해하는데 효과가 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 불면증과 건망증에도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익은 오디로 담근 오디술은 예로부터 '상심주 또는 선이주'라고 하여 귀한 술로 여겼다. 그런 이유로 백발을 검게 만들고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어 자양강장주 역할을 한다.

어디 오디만 좋은가. 오디를 생산하는 뽕나무도 버릴 것이 없는 약제이다. 뽕잎은 덖어서 차로 만들어 먹거나 쌈으로 이용하고, 뿌리와 껍질은 볶아서 다려 먹는다. 뽕나무는 당뇨와 빈혈 이뇨 작용에 효과가 있고, 암을 예방하는 데도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찾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미 딴 오디는 어머니 것. 내가 따기는 했지만 소유권은 어머니에게로 완전히 넘어갔다. 오디도 팔면 쌀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어머니로서는 아들의 수고로움에 대해 고마움 한 번 표시하지 않고 오디를 챙기고 말았다.

나는 귀하다는 술을 만들어 보기 위해 도시락을 들고 다시 집을 나섰다. 이번엔 키 작은 나무에 있는 오디를 땄다. 하나씩 달 때마다 손바닥이 오디빛으로 물들었다. 작은 병에 담글 것이니 많은 오디가 필요치는 않았다.

한 주먹을 따면 한 번은 입으로 먼저 들어갔다. 오디를 먹어 본 사람은 그 달콤함에 먹고 싶은 유혹을 여간해서 떨쳐 버리기 힘들다. 우선은 먹고 싶은 만큼 먹은 후에 도시락을 채우기로 했다. 정신없이 먹다가 보니 입안으로 노린재가 함께 들어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역겨움에 먹은 것을 다 토해야 했다.

두 개의 도시락을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왔다. 준비한 작은 병에 오디를 넣고 술을 담갔다. 술을 넣지 않고 오디만 넣으면 며칠 후 주스가 만들어진다. 이번엔 술이다. 그러하니 이제 누군가가 찾아와 자양강장제가 필요하다면 선뜻 내어 줄 일만 남았다. 그러나 내게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내가 먼저 먹어 치울 것이다.

한 입에 털어 넣으세요!
▲ 오디 드실래요? 한 입에 털어 넣으세요!
ⓒ 강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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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디, #뽕나무, #오디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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