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리랑고개에 자리 잡은 김문수

동대문 밖의 삼선평을 지나면 돈암동이 있었다. 돈암동에서 북으로 곧장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이 되넘이(미아리)고개였다. 그런데 돈암동 흥천사 입구에서 북으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긴 뱀처럼 휘어 올라 정릉까지 통하는 길이 있었는데 그 언덕길의 이름은 아리랑고개였다.

보통 아리랑 하면 한민족에게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계승되어 온 대표적인 노래라고 했다. 그래서 그것은 영예로운 명칭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리랑의 노랫말은 영예 따위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아리랑은 헤어진 사람이 품고 있는 ‘만남’의 염원이었고, 이루지 못한 사람이 갖는 '다함’의 소망이었으며 한 맺힌 사람이 담고 있는 '풀이’의 비원(悲願)이었다.

전라도 고창에서 서울로 유학 간 소년 김문수가 방 하나를 얻어 자리 잡은 곳은 아리랑고개였다. 그의 삼촌 김영세는 조카에게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방 하나를 마련해 줄 능력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삼촌은 조카가 집을 정하는 데에, 어린 조카로서는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지침 하나를 주었다. 그것은 아무리 오르기 힘들더라도 그리고 그 집이 다소 허름하더라도 무조건 전망이 탁 트인 곳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조카는 서울의 이곳저곳을 물색한 끝에 아리랑고개 돌산 중턱에 있는 집을 구한 것이다. 아무래도 산동네라서 방값이 쌌다. 방도 넓을 뿐더러 전망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집이었으며, 방에 대청마루까지 딸려 있었다. 김영세에게는 전망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조카에게 그런 지침을 주었던 것이다.

아무튼 김문수의 서울 생활은 아리랑고개에서 시작되었다. 그가 다니는 학교는 아리랑고개에서 한 시간 이내로 걸어갈 만한 곳에 있었다. 아리랑고개를 고유명사라고는 할 수 없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 간다’에서 알 듯, 아리랑고개는 한국인이면 누구나 넘는 고개일 터이었다.

실제로 김문수가 살던 시대 아리랑고개로 불리어지는 언덕이 전국적으로 수십 군데 이상이었다. 그 고개에는 추상적인 의미도 들어 있었다. 그 고개는 개인에게는 인생의 시련기이고 민족에게는 역사의 수난기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아리랑고개는 김문수가 학교에 오가며 넘는 고개일 뿐더러, 식민지 시대 한민족이라면 모두가 넘는 고개라고도 할 수 있었다.

1926년 나운규가 만든 영화 <아리랑> 때문에 그 고개 이름이 지어졌다는 설이 있었다. 김문수의 아리랑고개는 정릉 골짜기로 통하고 있었다. 정릉 일대는 삼각산 자락의 일부였다. 그곳에는 청송(靑松)과 기암(奇巖)이 많았다. 그리고 옥수청류(玉水淸流)라고 불러 손색이 없는 시냇물도 흘렀다.

하지만 서울에 온 후 얼마 동안 김문수는 이런 자연 풍광보다는 도심의 전차와 자동차와 고층건물에 관심을 더 가졌다. 그리고 그는 고향과는 다른 서울 말씨에 이질감을 느꼈고, 서울 학생들의 현실주의와 동화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는 차츰 서울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는 조선 왕조 500년의 도성이었던 서울의 삼각산과 한강을 비롯한 자연 풍광에 곧 관심을 기울였고 서울 외곽과 시내를 두르고 있는 성벽이나 성곽 등을 답사해 보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처음부터 변함없이 김문수의 관심을 끈 것은 예쁘고 세련되어 보이는 서울의 여학생들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제 소년티를 벗고 청년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는 삼촌 김영세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청년으로 성장한 그는 사실 따지고 보면 젊은 삼촌과 거의 같은 세대의 젊은이였다.

김문수는 독립 운동을 하러 떠난 아버지의 외모를 닮아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강한 편이어서 평온히 사색에 잠겨 있을 때에도 다른 사람의 눈보다 현저히 반짝거렸다. 그는 반짝이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것을 다른 이에게 각인시킬 정도였다. 어려서는 다소 납작한 들창코였던 그는 사춘기를 지나면서 알맞은 높이와 크기의 코를 가진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의 키와 체격은 보통보다 약간 작은 편이었지만, 워낙 균형 잡힌 신체와 늠름한 가슴과 어깨가 그를 수려한 외모를 가진 청년으로 보이도록 했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그의 인상에서 최선의 것은 그가 매우 선량한 심성을 지닌 사람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를 선량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그의 눈 아래에서 뺨으로 이어지는 얼굴 부분이었다. 민감한 여성이 있다면 언제라도 손을 대어 쓸어 주고 싶은 욕구를 일으킬 정도로 그의 눈 밑과 뺨은 언제나 촉촉하고 애틋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김문수의 연애

시골 청년 김문수는 혜화전문 문과를 졸업하던 해 여성 두 명을 동시에 만나게 된다. 수송동 보성학교 강당에서 열린 서화협회 전람회장에서였다. 서화협회 전람회는 얼마 후 총독부에서 정책적으로 지원한 조선미술전에 밀려 위축되게 되지만 당시로서는 유일하게 미술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공식적인 전시회였다.

김문수의 눈에 먼저 띈 것은 안평대군과 완당 김정희의 글씨였다. 그는 삼촌과 함께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는 고희동, 김은호, 이상범 등의 그림을 감상했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작가들의 서양 유화를 보고 있었다. 사진을 통해 서양화를 본 적이 있긴 했지만 김문수에게 서양 유화는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옆모습이기는 했어도 벌거벗고 앉아 있는 여자의 그림을 똑바로 보기가 조금 민망해서 그가 시선을 옆으로 돌렸을 때였다. 멀리 있는 문으로 두 여자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화사한 양장 차림의 여자와 신식 스웨터를 입은 여자는 거침없이 김문수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김문수는 아찔했다. 그에게는 예쁜 여자를 보면 잠시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 기이한 습성이 있었다.

두 여자는 친구 사이인 듯했다. 김문수는 정신이 빠져 있었다. 그에게는 자신이 지금 두 여자를 넋을 놓고 살피고 있다는 자각이 없었다.

그런 김문수를 깨어나게 한 것은 화사한 양장이었다.

“이제 사람 얼굴은 그만 보시고 그림을 감상하지지요.”

김문수는 당황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당황할수록 침착해지는 일면도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그림은 이미 다 보았거든요.”

순간 화사한 양장은 의도적으로 김문수를 경시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의 입에서 조그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무례하군요.”

김문수는 당혹스러웠다. 사실 먼저 결례한 것은 자신이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무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례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야말로 무례한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문수는 그냥 물러서기로 했다. 그러나 옆에 있는 신식 스웨터가 화사한 양장의 손목에 보이지 않게 손가락을 대며 그녀를 만류하는 것을 본 김문수는 왠지 그냥 물러서기가 싫었다. 그래서 벌거벗은 여자 그림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돼 먹지 않은 그림을 눈 뜨고 볼 수가 없어서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두 여자가 거의 동시에 이상한 소리를 냈다.

“어머!” 이것은 양장이었고, “큭큭.” 이것은 스웨터였다.

양장은 여학교 교사 겸 서양화가 나민혜였고 스웨터는 그녀의 친구 조순호였다. 그리고 민망하게도 김문수가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했던 그림은 바로 나민혜의 출품작이었다.

“우리 인사동에 가서 차를 마실까요?”

얼마 후 김문수가 두 여자에게 제의한 말이었다. 그는 삼촌이 조카를 유학 보내며 한 당부들을 어지간히 실행한 편이었다. 삼촌 말대로 과학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전공인 지리학을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음악이나 미술 등의 예술 감상도 부지런히 한 편이었다. 다만 서울에 가거든 예쁜 여자와 교제도 해 보라는 말만은 실행하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던 차였다. 원래 김문수는 그렇게 숫기 있는 청년이 아니었는데 불현듯이 삼촌의 당부가 떠올랐던 것이었다.

“아무튼 미안합니다.”

정중히 사과한 김문수가 함께 차를 마시러 가자고 제안했을 때, 나민혜는 즉각 거부할 듯하다가 슬며시 조순호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고는 뜻밖에도 조순호가 싫지 않다는 기색을 보이니까 나민혜는 금세 태도를 바꿔 김문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세 사람은 차를 마신 후 우동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우동을 주문하면서 김문수는,“저, 우동 위에 혹시 튀김 같은 것 얹습니까?”라고 물었다. 우동집 주인은 자랑스럽게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김문수가 말했다.

“그러니까 저는 그것을 빼 달라는 겁니다. 아시겠지요?”

조순호는 김문수에게 강한 인상을 받았다. 사실 우동에 얹는 튀김은 그녀도 좋아하지 않았다. 튀김의 기름 때문에 우동 국물이 개운한 맛을 잃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녀는 음식 가지고 까탈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튀김을 빼 달라는 말을 차마 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김문수는 거침없이 자기 구미대로 요구하는 것이었다. 한편 나민혜는 김문수를 약간 이상한 촌놈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김문수와 두 여자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하게 청산해보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태그:#아리랑고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