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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반만 지은 절집 문수사
▲ 문수사 깎아지른 절벽에 기대어 반만 지은 절집 문수사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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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22일)인데, 아침에 일어나니 어김없이 하늘이 잔뜩 흐렸어요. 금쪽같은 날에 흐리다고 집에 틀어박혀 있기는 너무나 아쉽지요. 이 참에 가까운 곳에 있는 우리 문화재 몇 군데 찾아가보자고 마음먹고 나왔어요. 어쩌면 흐릿한 날씨 덕분에 자전거를 타기에는 더욱 좋을지도 모르지요.

"우리 문수사에 다시 가볼까?"
"응? 문수사? 에이, 그럴 줄 알았으면 신문이라도 가지고 오는 건데."
"하하하! 내가 그럴 줄 알고 신문을 가지고 왔지."
"엥? 애고 정말 못 말려. 거기 가려고 마음먹고 나왔구먼?"


어젯밤만 해도 비가 내렸고, 오늘도 기상청 예보에서는 온종일 비가 내릴 거라고 했어요. 그러나 막상 집을 나서니 비가 온다고 해도 그리 많이 내리지는 않을 듯 했지요.

어쩌면 다행이다 싶어 우리 지역에 있는 문화재 몇 군데를 둘러본 뒤에 지난해에 한번 가봤던 도개면 문수사에 다시 가보자 싶었어요. 마침 남편은 미리 혼자서 계획이라도 했던 것처럼 가방 속에 지난해 내가 기사로 썼던 문수사 이야기가 실린 종이신문을 가지고 나왔더군요.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 마을 들머리랍니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산 중턱에 문수사가 있지요.
▲ 문수사 가는 길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 마을 들머리랍니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산 중턱에 문수사가 있지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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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내가 여기 다 타고 올라왔어!

경북 구미시 도개면 신곡리에 있는 문수사는 깎아지른 절벽에다가 집을 반만 지어 법당을 차린 곳이에요. 절집 생김새도 퍽 남다르지만, 여기에서 거의 예순 해 동안 살고 있는 정숙현 할머니가 계신 곳이에요. 그 때 기사에서도 잠깐 소개를 했지만, 6·25 때 남편을 전쟁터에서 여의고 백일난 아들마저 잃고 난 뒤에 이 절에 들어오신 분이지요.

문수사를 찾아가는 길이 지난해와 달라진 게 있어요. 신곡리 마을을 벗어나서 절 들머리까지 가려면 아스팔트, 시멘트길, 또 흙길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아스팔트로 쫙 깔려있는 거였어요. 그렇지 않아도 할머니한테 길을 새로 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한 해만에 모두 마무리가 된 듯 했어요.

문수사를 생각하면 구미에서 예까지 먼 길인데, 자전거 타고 왔다고 따듯하게 맞아주시던 할머니뿐만 아니라, 절집까지 올라가던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이 먼저 떠오른답니다. 그 때에는 너무 힘이 들어서 자전거를 타고 올라가다가 더 오르지 못하고 내려서 끌고 갔던 기억이 나요. 이제 그 뒤로 한 해가 흘렀는데, 이번에는 자전거에서 내리지 않고 다 타고 올라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어요.

예나 지금이나 길은 가파르지만 천천히 발판을 밟으며 올라갑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도 한 해 동안 꽤 험한 오르막을 참 많이도 오르고 내렸는데  어쩌면 지난해와는 달리 그동안 자전거 타는 솜씨가 많이 늘었으니 잘하면 탈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했답니다.

"우리 지난번에는 여기 올 때 다 끌고 갔잖아. 이번에는 어떨는지 모르겠다."
"그래. 그랬지. 그런데 잘하면 다 타고 올라갈 수 있겠는데?"
"그렇지? 전에는 이 밑에서 저 꼭대기를 보기만 해도 겁이 덜컥 나던데, 오늘은 생각 밖인데?"
"그래 한 번 해보자!"


남편과 나는 자전거 타는 솜씨도 겨뤄보고 지난해 오르지 못했던 곳에 다시 와서 타보는 재미로 천천히 올라갑니다. 그 때와는 달리 길이 덜 가팔라 보였어요. 틀림없이 그때와 똑같은 길인데 말이에요. 엉덩이를 안장 앞쪽에 바싹 당겨 앉고, 윗몸을 바짝 수그린 채 올라갑니다. 생각보다 쉽게 올라가는 게 무척 신기했어요. 속으로 굉장히 신이 났어요.

'어…. 어! 올라간다. 내가 여기를 다 타고 올라간다. 히히히'

스스로 대견스러워하면서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했어요. 내가 봐도 이 가파른 길을 다 타고 올라가는 게 퍽 자랑스러웠답니다. 남편도 씩씩하게 잘 올라오고 있어요.

문수사 법당 가는 길도 매우 가파른 오르막이랍니다. 갖가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숲길이 꽤나 운치가 있답니다.
▲ 숲길 문수사 법당 가는 길도 매우 가파른 오르막이랍니다. 갖가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숲길이 꽤나 운치가 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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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꼭대기에 닿았어요. 사람소리를 들은 개가 짖는 소리를 들은 건가? 낯익은 할머니가 마당에 내려와 계셨어요.

"전에 우리 절에 오셨던 분들이 아닌가?"
"네. 맞아요. 할머니,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아, 맞구먼. 전에 구미에서 자전거 타고 왔던 분들이네."
"네. 꼭 한 해만에 또 찾아왔어요."
"아이구, 이런 반가울 데가."
"할머니, 저희 여기 자전거 다 타고 올라왔어요. 지난해에는 여기 올라올 때 끌고 왔었거든요."
"아이고, 대단하네요. 어여 올라와요. 커피라도 한 잔 해야지. 날이 더운데 고생이 많네요."


꼭 한 해만에 다시 만난 할머니는 이내 우리를 알아보시고 매우 반가워하셨어요. 툇마루에 앉히더니 금세 커피와 시원한 수박을 내오셨어요. 절집 툇마루는 무척 시원했어요.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도 했지만, 워낙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오며 땀을 뻘뻘 흘렸던 게 싹 가셨답니다.

"정숙현이 누구요?"

할머니가 주신 수박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매우 놀라운 얘기를 들려주었어요. 언젠가 서울 사람들이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눠 싣고 온 적이 있었대요. 워낙 멀리서 온 신도들이라 놀랍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대뜸 이렇게 물었대요.

"정숙현이 누구요?(할머니 말투로)"
"난데요."
"아! 보살님이 기사에 나온 분이군요."
"네?"


이 산골에서 내 이름을 아는 이가 없는데, 더구나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대뜸 할머니 이름을 부르니 무척 놀라셨대요. 알고 보니, 지난해에 내가 쓴 기사를 보고 온 거였대요. 또 서울에 할머니 언니가 사는데, 기사를 보고 전화까지 해주셨다고 하네요. 우리는 가지고 간 신문을 꺼내어 문수사 이야기가 실린 쪽을 펼쳐 보여드렸지요.

"아이고, 난 눈이 어두워서 보지도 못하는데…" 하시면서 냉큼 일어나시더니 스님을 불러냈어요.

이렇게 문수사 주지인 혜향스님도 잠깐 뵈었답니다.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취재한다는 얘기를 듣고 몸조심하시고 늘 건강하란 얘기도 잊지 않으셨지요.

작고 귀엽게 생긴 동자승, 바위 틈마다 작은 동자승이 해맑게 웃고 있어요.
▲ 동자승 작고 귀엽게 생긴 동자승, 바위 틈마다 작은 동자승이 해맑게 웃고 있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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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에 난 호랑이 발자국?

지난해엔 법당까지 가는 길도 가파른 데다가 여긴 걸어서 올라가야 했기에 그때만 해도 다리가 아프던 남편은 올라가지 못했어요.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법당까지 올라갑니다. 돌계단이 따로 있었지만 언덕길로 올라갑니다. 빽빽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숲길이 무척 시원했어요. 남편은 법당 아래에 돌로 만든 여러 불상들을 보더니, 사진 찍기에 무척 바쁘네요.

법당은 이층으로 되어 있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등지고 집을 반만 지어놓은 것이 무척 멋스러워요. 한 번 와본 곳이었지만 볼 때마다 그 느낌이 새롭네요. 이번에는 법당 안까지 자세하게 구경을 했어요. 먼저 아래층 문을 열고 들어가서 불을 켰어요. 바깥에서 볼 때에는 그저 큰 절벽에 기댄 것처럼 보였는데, 커다란 바위가 법당 안까지 밀고 나온 듯 보였어요.

커다란 바위가 마치 법당 안까지 들이밀고 온 듯했어요. 또 바위에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고, 호랑이 발자국으로 보이는 발자국 다섯 개도 찍혀있답니다. 모두 자연스럽게 생긴 문양이에요.
▲ 법당 안 커다란 바위가 마치 법당 안까지 들이밀고 온 듯했어요. 또 바위에는 거북이 등껍질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고, 호랑이 발자국으로 보이는 발자국 다섯 개도 찍혀있답니다. 모두 자연스럽게 생긴 문양이에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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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틈, 구석구석 하얗고 누런 종류석이 매달려 있어요. 지금도 물기가 촉촉히 배어 있어 뚝뚝 떨어지고 있답니다.
▲ 종류석 바위 틈, 구석구석 하얗고 누런 종류석이 매달려 있어요. 지금도 물기가 촉촉히 배어 있어 뚝뚝 떨어지고 있답니다.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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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등껍질처럼 네모난 문양이 찍힌 바위가 무척 신기했는데, 그 곁으로 짐승 발자국이 몇 개 눈에 띄었어요. 할머니 말로는 호랑이 발자국이라고 하더라고요. 모두 다섯 개나 되는데, 정말 큼직한 게 호랑이 발자국 같더군요. 누가 일부러 찍어놓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긴 거라 더욱 신기했어요. 또 구석구석 하얗고 누런 종류석이 바위에 붙어 있었는데, 지금도 물기가 촉촉이 배어 있어 뚝뚝 떨어지기까지 했어요.
      
이층 법당에는 불상 세 개가 나란히 모셔져 있어요. 여기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불상 뒤로 넓은 바위를 등지고 있답니다. 불자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퍽 정겨운 모습이었어요. 화려하지도 않고 수수한 모습 그대로 바위와 함께 어우러진 모습이 참 좋았답니다.

사진기 불빛이 시원찮아 제대로 찍지는 못했지만, 바위 위에 찍힌 문양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니, 참말로 호랑이 발자국 같았어요. 꽤 큰 짐승의 발자국이 틀림없어요.
▲ 호랑이 발자국? 사진기 불빛이 시원찮아 제대로 찍지는 못했지만, 바위 위에 찍힌 문양을 자세하게 들여다 보니, 참말로 호랑이 발자국 같았어요. 꽤 큰 짐승의 발자국이 틀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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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 안에는 불상 세 개가 모셔져 있답니다. 지난날에 이 집을 세우기 앞서는 저 바위 동굴에다가 부처님 한 분만 모셨다고 하네요.
▲ 문수사 법당 안 법당 안에는 불상 세 개가 모셔져 있답니다. 지난날에 이 집을 세우기 앞서는 저 바위 동굴에다가 부처님 한 분만 모셨다고 하네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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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만에 다시 찾아간 절집에서 구석구석 구경을 하고 내려오니 할머니가 안 보였어요. 마침 절에 온 신도한테 물었더니, 산 아래 밭에 계신다고 하더군요. 아침녘에도 들깨 밭에 가서 일하고 오셨다더니, 그새 또 나가서 밭일을 하고 계시나 봐요.

자전거를 타고 문수사를 빠져나오는데, 얼마나 신이 나는지 몰라요. 올라올 때 힘들던 만큼이나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갑니다. 저만치 앞에서 할머니가 허리를 구부려 한창 일을 하고 있었어요. 우리를 보더니, 또 반가워하시네요.

"인자 가실라구?"
"네. 할머니, 다음에 또 올게요."
"이거 먼 길 오셨는데 대접도 변변히 못하고 미안해서 어쩌누."
"아이고 별 말씀을요. 시원한 수박에 커피에 그보다 더 큰 대접이 어딨어요."


마음 따듯한 할머니, 한 평생 문수사 절집에서 스님 공양을 하며 사셨지요. 이젠 나이가 많아서 눈도 잘 뵈지 않고, 많이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늘 부지런히 밭을 가꾸며, 온갖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시지요. 누구라도 마음 따뜻한 분이 있어 할머니와 동무삼아 일손을 거들어 줄 분이 나서면 좋겠어요.
▲ 문수사 정숙현(81) 할머니와 마음 따듯한 할머니, 한 평생 문수사 절집에서 스님 공양을 하며 사셨지요. 이젠 나이가 많아서 눈도 잘 뵈지 않고, 많이 힘들다고 하셨어요. 그래도 늘 부지런히 밭을 가꾸며, 온갖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시지요. 누구라도 마음 따뜻한 분이 있어 할머니와 동무삼아 일손을 거들어 줄 분이 나서면 좋겠어요.
ⓒ 손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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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마음씀씀이가 얼마나 따듯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할머니와 나란히 서서 사진도 찍고 아쉬운 인사를 나눕니다. 내가 손을 잡으려고 했더니, 흙이 잔뜩 묻었다고 재빨리 손을 감추시는 걸 냉큼 끌어당겨 잡고는 건강하시라고 부탁했어요. 문수사 절집에서 온갖 살림살이를 여든이 넘은 당신 혼자서 도맡아 하시는데 몸 아프지 말고 튼튼해야지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은 내가 너무 늙어서 눈도 안 뵈고, 아픈 데도 많아서 내 일을 맡아서 해줄 사람을 들이고 싶은데, 마땅한 사람이 없어. 우리 스님도 모시고 해야 하는데 말이야."

인사를 하고 헤어져 나오는데, 할머니가 하신 얘기가 자꾸만 귀에 맴도네요. 누구라도 마음 따듯한 분이 오셔서 할머니와 동무삼아 밭일도 하고 살림살이 힘든 것도 나누면서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답니다.

"자전거 타고 댕기는데, 우짜든지 몸 건강하이소!"

돌아서는 등 뒤로 할머니가 큰 소리로 외칩니다.


태그:#문수사, #정숙현할머니, #반집,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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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자전거는 자전車다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남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오랫동안 여행을 다니다가, 이젠 자동차로 다닙니다. 시골마을 구석구석 찾아다니며, 정겹고 살가운 고향풍경과 문화재 나들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지요. 때때로 노래와 연주활동을 하면서 행복한 삶을 노래하기도 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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