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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황당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가뜩이나 촛불집회와 부산대 사회대 학생회 일로 바쁜 요즘, '051'로 뜨는 전화는 잘 안 받았는데 혹시나 사회대 학우가 집에서 전화했나 싶어 전화를 받았다.

"박정훈씨죠? 여기 남부경찰서인데요. 6월 18일날 남부경찰서 앞에서 시위하면서, 차량 위에 올라간 거 기억하시죠?"

"저 차에 불법주차 딱지 붙여라!"

지난 5월 31일 저녁 부산 서면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자 가운데서 이를 제지했던 박정훈씨의 모습.
 지난 5월 31일 저녁 부산 서면에서 열린 촛불집회에서 시민들과 경찰이 대치하자 가운데서 이를 제지했던 박정훈씨의 모습.
ⓒ 오마이뉴스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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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억한다. 6월 17일 저녁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KBS로 이동하는 소규모의 시위대 중 6명을 남부경찰서의 사복경찰들이 쫓아와 연행해갔다. 부산에서 처음 있는 연행이었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사람이 적었던 탓인지 경찰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연행을 진행했다. 분노한 시민들은 바로 다음 날 남부경찰서로 향했다.  마침 남부경찰서 현관 입구에 불법주차된 세 대의 승용차가 있었다.

시민들이 불법주차된 승용차가 누구 것이냐고 물었더니 경찰은 "조사받으러 온 사람들의 것"이라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했다. 불법주차된 차 안에는 경찰마크가 보였다. 시민들은 곧 이렇게 외쳤다.

"불법주차 딱지 붙여라!"
"동네 주민 여러분 내일부터 경찰서 안에 주차하셔도 됩니다."

그리고는 차에 있는 휴대폰 번호를 찾아내 전화를 걸었다. 역시 안 받았다. 그랬더니 시민들이 '다같이 문자를 보내자!'라며 단체로 문자를 보냈다. 정말 유쾌! 상쾌! 통쾌! 한 부산시민들이다.

그 날 우리는 불법주차된 승용차 세 대 중 한 대를 바리케이드 삼아 전경들이 경찰서 현관문을 막고 서 있었다. 그야말로 좁아터진 공간 속에서 집회를 진행해야만 했다.

집회에 참석했던 나는 "경찰들이 승용차를 여기 주차해놓은 것을 보니 우리 보고 무대로 쓰라고 한 것 같습니다! 이 위에서 자유발언을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외치고 승용차 위로 올라갔다.

불법주차된 세 대 가운데 어느 차에 오를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SM5가 제일 비싸 보여서, 그 위에 올라갔다. "분명 높은 사람의 차일 것이야!"라는 일종의 편견을 가지고 말이다.

아, 그런데 올라가서 전경 뒤에 있는 남부경찰서 형사들의 모습이 가관이었다. 잡담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히히덕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막는 시늉을 한다고, 방패를 대충 앞에 들고 있기는 했다. 그런 경찰들과 현관문에 커다랗게 "경찰이 새롭게 달라집니다!"고 걸려있는 문구가 겹쳐보였다.

차 위에 잠깐 올라갔는데 350만원어치 파손?

부산남부경찰서 "재물손괴 혐의로 수사"

부산남부경찰서는 박정훈씨에 대해 우선 재물손괴 혐의로 수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부경찰서 관계자는 "박씨가 차량 위에 올라갔다"면서 "견적이 많이 나왔는데 재물손괴에 초점이 맞춰 조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울러 그 집회에 참석하게 된 계기도 함께 조사할 것 같다"면서 "지금 수사 중인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구체적으로 차량 파손 부위 등에 대해 그는 "견적서가 아직 들어오지는 않았는데 파손을 많이 입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박정훈씨가 차량을 파손한 게 맞느냐"는 질문에 그는 "여자 한 명이 더 있는데 그 사람은 아직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성효 기자
"아, 그런데 그날 승용차에 일부 파손이 생겼거든요. 견적서를 보니깐 350만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조사를 하려고 집에 출두명령서를 보냈으니, 확인하시고 목요일(26일)까지 경찰서로 나와주십시오."

그날을 회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에서 황당한 소리가 들리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350만원요?? 집으로요?"

참고로 난 50㎏의 남자다. 거리에서 날 보았던, 부산 시민들은 알 것이다. 나의 가는 팔과 몸을 말이다. 내가 그 위에서 방방 뛴 것도 아니고 잠깐 올라갔던 것 뿐인데 350만원 어치 파손이 생기다니!

게다가 소환장을 집으로 보냈단다. 경찰 정보력 대~단하다.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이다. 생일날 350만원짜리 소환장 보고, 부모님이 미역국 끓인 거 싱크대에 도로 부어버리지나 않으실 지 걱정이다.

아니 그보다 가만가만, 지금 이 경찰 분은 내가 그날 집회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고, 차량이 파손되어서 조사를 하겠다고?

나는 지난 5월 31일 서면 8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할 때, 6월 10일 서면로타리 점거할 때 거리에서 사회를 봤다. 그래서 남부경찰서에서 차량 위에 올라간 것을 빌미로 조사하려고 하는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요즘 검찰이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광고주에 항의전화를 하자!'고 이야기한 네티즌을 잡아들이겠다고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황당한 일이 내가 생긴 것이다.

잡으려면 제대로 잡아가라. 경찰이 불법! 불법! 외치던 집회를 해서 잡아간다고.


태그:#박정훈, #사회대학생회, #촛불집회, #남부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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