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책표지
 책표지
ⓒ 일마

관련사진보기


우리는 지구촌 곳곳에서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알고 있다. 피골이 상접한 검은 피부의 사람들, 얼굴에 달려드는 파리 떼를 쫓을 힘도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아이, 더러운 우물물을 길어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여인들.

미디어를 통한 학습 덕분에 '빈곤'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장면들이다. 도움을 기다리는 그들을 위해 ARS 후원을 하거나 성금을 내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나로 인해 빈곤 지역의 아이 한 명이 일주일 동안 빵과 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뿌듯해 한 경험도 있을 것이다. 이런 후원이 세계 빈곤을 해소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거라고 믿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은 일상적인 소비를 통해 세계의 빈곤을 심화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일본의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엮은 책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은 빈곤문제의 책임자 중 하나로 선진국 소비자를 꼽는다. 동시에 빈곤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도 선진국의 소비자들이라고 말한다.

새우는 10년 전만 해도 제철인 가을에나 맛볼 수 있는 비싼 해산물이었다. 그러나 요새는 마리당 천원 안팎의 싼 값으로 일 년 내내 새우를 먹을 수 있다. 태국, 필리핀 등지에서 대량 수입되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새우잡이 배는 저인망을 사용해 새우를 잡는다. 바다 밑바닥까지 그물을 내려 어패류와 잔물고기를 잔뜩 잡아 올린다. 그 중 새우는 2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데, 어부는 가장 비싼 새우만 남기고 나머지는 그 자리에서 버린다. 작은 배로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가난한 어부들은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새우 양식도 활발하다.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습지에 있는 맹그로브 숲을 베어 내고 새우 양식장을 만든다. 좁은 늪지에서 많은 새우를 기르기 위해 사료와 항생물질을 대량으로 뿌린다. 수질오염으로 양식장이 오래가지 않는다. 다시 새로운 맹그로브 숲을 베고 양식장을 만드는 일이 반복된다.

맹그로브 숲은 갯벌과 마찬가지로 해양생물의 중요 번식지이자 어린 생물의 서식지다.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새우양식으로 맹그로브가 벌채되어 태국은 200만 헥타르였던 맹그로브 숲의 절반을 20년 만에 잃었다. 맹그로브로부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얻었던 주민들은 생계의 위협을 받고 있다.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는 참치도 마찬가지다. 동남아시아 근해에서 잡히는 남방참다랑어의 90%는 일본에서 소비된다. 참치 먹는 관습이 없는 인도네시아 항구에는 일본에 참치를 수출하는 200척의 대만 어선이 상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본래 반덴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즐겨 먹었다. 그러나 이 물고기가 참치 미끼로 쓰이는 바람에 반덴이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본 소비자의 식탁이 풍요로워질수록 인도네시아 주민의 식탁은 빈곤해진다.

빈곤을 심화하는 새우와 팜유

과자류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팜유. 기름야자 플랜테이션 노동자의 빈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자류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팜유. 기름야자 플랜테이션 노동자의 빈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 오달란

관련사진보기


팜유(palm oil)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2005년 팜유는 콩기름을 제치고 세계에서 제일 많이 생산되는 식물성 기름이 되었다. 팜유는 컵라면, 마가린, 초콜릿, 아이스크림, 과자류 등 가공식품과 화장품, 비누, 합성세제를 만드는데 쓰인다. 팜유 생산량이 급증하는 이유는 싼 가격 때문이다.

전세계 팜유의 80%가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된다. 두 나라는 경쟁적으로 열대림을 없애고 팜유의 원료인 기름야자 나무를 심고 있다. 저임금 노동을 담보로 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기 때문에 팜유의 가격은 싸다.

열대림에서 먹을 것을 얻고, 다양한 작물을 심어 생활하던 주민들은 플랜테이션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이들 대부분은 건강도 잃었다. 농약 주입 작업 때문이다. 회사 측은 많은 나라에서 사용을 금지한 농약의 위험성을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주민들은 보호 장구 없이 농약을 사용했다.

아동 노동도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의 큰 문제다. 한 플랜테이션 농장의 40대 가장은 여섯 살, 아홉 살인 두 딸과 함께 야자를 따고 있었다. 이들 가족의 한 달 수입은 마을 식당 종업원의 한 달 월급인 300링깃(약 81,000원)정도였다. 아이들이 학교 근처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다.

<…30가지 방법>은 이 외에도 서아프리카의 카카오 농장, 필리핀의 바나나·파인애플 농장, 태국의 유칼립투스(성장이 빨라 종이원료로 쓰임) 숲이 어떻게 환경을 파괴하고 주민들의 삶을 빈곤으로 몰아가는지 보여준다.

주민들은 기아상태에 있으면서 선진국에 수출하기 위해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 이익은 지역에 돌아가지 않는다. 플랜테이션을 운영하는 다국적 기업의 본사에 돌아간다. 그리고 값싼 식품을 제공받는 선진국의 소비자들에게 돌아간다.

원조하는 나라를 위한 원조

<…30가지 방법>은 빈곤을 심화하는 다른 한 축으로 선진국의 정부개발원조(ODA)를 지목한다. ODA는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개발도상국의 경제발전과 복지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말한다.

문제는 ODA가 '사람 죽이는 원조'가 되는 경우다. 일본의 ODA는 50% 이상이 차관 즉, '빌려주기 원조'다. 개발도상국은 불어나는 이자와 함께 원조금액을 갚아나가야 한다.

아프리카는 1970년부터 2002년까지 5400억 달러(약 540조 원)를 빌리고 5500억 달러(약 550조 원)를 갚았다. 그런데도 아직 3000억 달러(약 300조 원)의 빚을 지고 있다. 빌린 돈보다 더 많은 돈을 갚은 데다 지금은 오히려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을 '원조'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이를 '부당한 채무'로 규정하고 부채 탕감 운동을 벌여왔다. 2006년 10월 세계 최초로 노르웨이 정부는 '부당한 채무'라는 이유로 이집트 등 5개국에 빌려 준 돈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일본에서도 차관 중심의 정부개발원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정부개발원조 분야에서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한국에도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빈곤을 해결하는 세 가지 방법

<…30가지 방법>은 빈곤을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세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첫째는 '식량 자급자족하기'다. 식량 자급률을 높이면, 현지 주민들은 먹을 수 없는 작물을 선진국의 소비자를 위해 생산하는 이상한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자급률을 높이려면 바른 먹을거리 정보를 공유하고, 자연농법을 실천해야 한다고 책은 말한다. 또 지역에서 나는 생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 운동을 확산해야 한다. 많은 곡물과 물을 들여 생산하는 육류소비를 줄이고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하면 자급률이 20% 높아진다고 한다.

둘째는 '기업에 사회적 책임 묻기'다. 생산·유통 과정에서 환경과 인권을 생각하는 기업활동을 장려하고, 소비자라면 그런 기업의 제품만 구입하도록 한다.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없고, 환경을 오염시키며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기업에는 압력을 가한다. 기업에 공정무역상품 취급을 요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마지막은 '국제 과세 실현하기'다. 책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임스 토빈이 고안한  '토빈세'를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외환시장의 모든 거래에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보통 통화거래에는 낮은 세율을, 투기 거래에는 높은 세율을 매기는 2단계 과세 제도로 운영한다. 걷힌 세금은 세계 빈부 차이를 줄이는 데 쓸 수 있다.

세율을 거래액의 0.1%로만 해도 적어도 한해  1,000억 달러(약 100조 원)가 모인다. 2015년까지 세계의 빈곤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UN의 '밀레니엄 개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돈이 적어도 500억 달러(50조원)인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큰 금액인지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계의 빈곤을 내 일처럼 여기는 일이다. 엮은이인 다나카 유는 이 책을 기획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빈곤은 부유한 나라가 만든 세계 구조의 문제다. (…) 빈곤을 낳는 구조를 깨닫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빈곤의 문제를 자신과 가까운 것으로 느낄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먹고 쓰는 것들을 통해 그 문제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 그것을 다시 자신의 생활 속에서 바꾸어 가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엮은이의 말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빈곤문제가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 한 사람의 결심과 행동의 변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나카 유,가시다 히데키,마에키타미야코 저/ 이상술 역, 알마, 원제 世界から貧しさをなくす30の方法 , 2007년 07월



세계에서 빈곤을 없애는 30가지 방법

다나카 유.가시다 히데키.마에키타미야코 지음, 이상술 옮김, 알마(2007)


태그:#빈곤, #공정무역, #착한소비, #ODA, #팜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