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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촛불집회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있다. 이에 대해 현직 경찰관으로서 경찰 입직 이후 늘 나 자신을 '잠시 제복 입은 시민'이라 생각해 온 나의 생각을 말해본다.

 

언젠가는 제복을 벗고 시민으로 살아갈 나로서는 시민의 권리가 우선이다.  그래서 당장 몸 담고 있는 법 현실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돌과 화염병·최루탄의 시대부터 방패와 컨테이너 시대까지 경험한 내게 '6·10 촛불집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집회에서 청와대로 진출하려는 군중들을 자제하게 해 혹시나 일어났을 수도 있는 불상사를 막은 것은 경찰이 쌓아놓은 컨테이너가 아니라 대다수 시민들의 합의였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각에 집회를 하면서 전혀 다른 목소리들이 나왔지만 서로 폭력적인 충돌은 없었다. 대다수 시민들은 컨테이너에 올라선 일부 과격 시위자에게 "내려와!" "내려와!"를 외쳤다. 

 

바로 얼마 전에도 그랬다. '폭력 진압'을 했다는 비판을 받은 경찰이 앞길을 가로 막고 있는데도 대다수 시민들은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며 다른 시민들을 자제시켰다.

 

불상사 막은 것은 '컨테이너'가 아니라 성숙한 시민 의식

 

시민들은 촛불집회 초기부터 특정 이념을 위해 이 집회를 이용하려는 일부 세력들을 배척했으며 날카로운 장대에 달린 깃발을 거부했다. 일찍이 2002년 촛불집회에서 나는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시민들의 촛불 행진에 편승한 일부 세력들이 차량과 깃발달린 장대로 내가 지휘하던 중대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했다. 이 때 우리 중대와 대치하던 시민들이 "그러지 마!" "그러지 마!"를 연호해 그 세력들이 물러나는 것을 직접 보았다.

 

최근 일각에서 '경찰(청장) 책임론'을 거론한다. 늘 그래왔듯이 중간에 어쩔 수 없이 끼인 경찰의 희생을 전리품으로 챙겨 시민투쟁의 승리를 확인하겠다는 발상은 그 역시 대다수 시민들의 '합의와 동의'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다. 

 

정부가 대다수 촛불 시위자와 극렬 폭력시위자를 똑같이 보는 것이나, 시민단체 등이 경찰의 임무와 임무 수행 중 발생한 불법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에서 똑같다.

 

이 참에 시민들이 경찰력에 대해 챙겨야 할 전리품은 집회시위와 이에 대응하는 공권력 행사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다. 그것이 좀더 근본 해결방안이다. 경찰청장이나 몇몇 경찰관을 징벌한다고 같은 상황의 재발을 방지할 수 없음을 대다수 시민들은 안다.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불편한 마음은 '정권의 하수인'이라는 비난 탓이 아니라 바로 '불법 강박증' 때문이다. 이러한 징후는 촛불집회 초기에 애써 '촛불문화제'라며 명백한 미신고 집회를 용인하려고 했던 태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개인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내세우는 방어기제와 마찬가지로 경찰 집단속에서도 일종의 방어기제가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그 방어기제는 '법 질서 확립'이란 이명박 정부의 기조와 대법원 판례(촛불문화제는 미신고 불법집회라고 판결) 등 법률 현실 앞에 무력해지고, '불법이면 막고 진압해야 한다'는 강박증만 더 키우는 실정이다. 이 강박증을 풀어주지 않고는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정부와 경찰, 이제 시민을 신뢰해야

 

그럼 법적으로 이런 강박증을 해결할 방법이 전혀 없는가? 아니다. 있다. 더군다나 이제 시민의 합의가 형성되고 있는 시점이다. 6월 10일에 보여준 성숙한 시민 역량이 이러한 법 체계상의 갈등과 강박증을 풀어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정부는 시민을 섬기겠다는 구호를 외치기 앞서 최소한 시민을 신뢰해야 한다. 통제하고 진압해야 하는 것은 시민이 아니고 일부 일탈된 행위임을 자각하여야 한다.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불법 강박증'은 그것이 '미신고 야간집회'라는 점 때문에 생긴 것이다. 주간에 법대로 신고하고 개최된 집회에서 집회 참가인원 수에 따라서는 도로 점거도 탄력적으로 용인해 왔고 법률로도 그리 문제되지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2003년 5월 1일 양대 노총의 '동시 도심권 도로점거 집회'를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결정을 할 당시 집회 시위 주무부서의 장이 바로 현 경찰청장이다. 그 전에는 서울 도심권 곳곳에 산재된 외교기관과의 근접성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금지시킨 것이다.

 

이러한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불법 미신고 집회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대응할 의지가 있는 경찰이 그러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이 바로 '불법 강박증' 때문이라는 것이 명확해진다.

 

법률과 성숙한 시민의식에 의한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0조는 야간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허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제 시민의 힘을 집중해야 할 곳이 바로 여기다. 이미 축제 분위기 속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이 사회는 경험했다.

 

이제 당당하게 신고하고 야간 집회를 개최할 수 있는 시민의식과 역량이 성숙했다. 미리 그 예상 집회 규모와 성격을 신고한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전처럼 경찰에게서 교통통제 와 혼잡 경비 등의 치안 서비스를 받으면서 집회 시위를 하는 것이 이제 더는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산뜻한 정복 경찰 앞에 시민 스스로 멈춰서게 해야

 

특정 관공서에 대한 공격 등 경찰이 우려하는 점을 미리 경찰과 협상하여 시민 스스로 폴리스 라인을 만들어 경찰에게 경비를 맡기는 형식도 가능하다. 컨테이너를 못 넘은 것이 아니라 넘지 않은 것처럼, 두터운 진압복과 방패에 가로막히는 것이 아니라 산뜻한 정복경찰 앞에 시민 스스로 멈춰서는 것이다.

 

정부와 경찰은 일단 대다수 성숙한 시민의식을 믿어야 한다. 시민사회마저도 용인하지 않는 개별 불법 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하여 시민 합의에 의한 법질서가 살아있음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경찰 등 사법기관에서 고민해야 할 일이다. 그런 고민을 대다수 시민들에게 전가하는 것은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공권력은 구더기 무서워 아예 장도 담그지 못하게 하고 싶은 유혹과 독단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에게 굴복하고 항복하는 것은 치욕이고 직무유기지만 국민 주권에 굴복하고 항복하는 것은 영광이자 그것이 바로 국민을 섬긴다는 진정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우리 시민사회는 전체 경찰에 대한 책임 추궁에 그치는 미봉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와 공권력이 충돌하는 근본 원인인 '불법 강박증'을 풀어주기 위해 야간 촛불집회를 당당히 신고하고, 정부와 경찰은 이에 대해 헌법 가치 차원에서 유연성을 발휘해 탄력있게 대응하기를 제안하는 바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장으로 근무하는 이동환 경정입니다. 잠시 제복입은 시민으로 우리나라의 집회시위와 그에 대한 공권력에 대응에 대해 <오마이뉴스>를 통해 공개적인 의사를 피력해 온 저로서, 많은 고민 끝에 또 다시 공개적으로 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합니다. 

 

2001년에는 우리 조직의 수장에게 공개서한 형식으로 의사를 표현했지만, 이번에는 시민사회에 활발한 토론을 부탁드리기 위해 제 시각과 해법을 표현했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시는 분은 그 분들 대로, 그 주변의 시민들은 그 시민들 대로, 그리고 조직에 몸담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게 되는 우리의 전의경들과 경찰관들은 또 경찰관들 대로, 모두 고통받고 있는 이 상황을 해결해 보려는 충정에서 제언합니다.

 

언젠가부터 인터넷 글쓰기 이름을 '낮달'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 어중간한 존재, 애증과 고뇌를 안고 사는 경찰 직장인으로서의 필명입니다.

 

추상적인 국민이 아닌, 바로 내 가족, 내 지인들, 그리고 미래의 우리 후손들을 위해 각자의 위치와 시각은 다르지만, 뭔가는 정리해 놓고 넘어가야 하기에, 또다시 성가신 길로 접어 들었습니다. 진지한 토론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고라 토론방에도 올렸는데, 워낙 뜨거워 토론의 여유도 없어 제가 시민기자로 있는 이 공간에 다시 올립니다.)


태그:#촛불집회, #집회시위문화, #야간미신고집회, #야간집회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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