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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뉴스 임영희, 늦게 펴 더 아름다운 '대기만성 에이스'

 촛불시위대의 청와대 방향 진입을 막기 위해 경찰이 설치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를 넘기 위해 11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에서 일부 시민들이 스티로폼을 옮겨 연단을 만드려고 하자 또 다른 시민들이 '비폭력'을 외치며 만류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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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 도전이 아닌 무한 토론이었다. 끝장 토론이란 말은 이런 데 붙여야 제격이다. 10일 밤 10시부터 11일 새벽 5시까지, '명박산성'이라 불린 광화문 사거리에 설치된 컨테이너 장벽 앞에서는 그야말로 대단한 토론이 열렸다.

'러닝 타임'은 7시간. 해가 뜰 무렵 겨우 끝났다. 토론 참석자 규모는? 믿기 어렵겠지만, 연인원 1만에서 최소 3천여 명. 주제는? '저 눈앞에 보이는 컨테이너를 넘을 것인가. 넘지 않고 광화문 사거리에 남을 것인가.' 즉 투쟁의 수위를 높이자는 쪽과, 계속 평화 집회의 기조를 유지하자는 쪽의 대결이었다.

갑론을박, 물러설 수 없는 '토론의 난장'이 전개됐다. 예고된 일정은 아니었고, 준비된 행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당연히 사회자도 패널도 없었다. 동의를 얻은 사람이 사회를 맡았고, 발언하고 싶은 사람은 자유롭게 마이크를 잡았다.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졌다. 

어떤 이는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이야기했고, 다른 이는 울분을 터뜨렸다. 청중은 견해에 따라 박수와 야유를 보냈다.

이런 토론이 한 곳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다. 여기저기 곳곳에서 열렸다. 컨테이너 경계선 안쪽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잠들어 있었을 시간, 경계선 밖 광화문 사거리는 아크로폴리스 광장으로 변했고 그곳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시민들은 자기 말을 하고 남의 말을 들으며 밤을 지새웠다.

사실 이날 밤샘 토론은 촛불문화제와 거리시위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줬다. 더 강하게 싸워야 하나, 아니면 평화로운 현 상태를 유지해야 하나. 촛불문화제가 시작된 지 40일을 넘긴 현재, 또 다른 전략과 전술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밤 토론을 벌인 양쪽의 견해를 정리해 보는 건 그래서 의미가 있다.

[컨테이너에 오르자] "재협상 없으면 어쩔 셈인가"

"오늘 최대 인파가 모였다. 최소한 정권이 쳐 놓은 선을 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이 우리의 목소리다. 정권의 컨테이너 설치 자체가 폭력이다. 그에 맞서는 행동 모두를 폭력으로 보면 안 된다. 우리가 쇠파이프를 들자는 건 아니다. 거리 시위가 벌써 17일째다. 계속 이명박 대통령이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어쩔 셈인가."

이날 컨테이너에 올라야 한다고 주장한 변성훈(32)씨의 말이다. 변씨는 "폭력 시위를 하자는 게 아니라, 촛불집회의 수위를 한 단계가 높여야 하는 시점이 왔다"고 강조했다. 이어 변씨는 "컨테이너에 올라야 하는 것 자체를 폭력으로 본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싸움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변씨는 "비폭력"을 외치는 사람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며 계속 스티로폼 연단을 쌓았다. 사실 이날 토론은 누군가 스티로폼을 대량으로 준비해 오면서부터 시작됐다. 변씨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스티로폼을 쌓아 최소한 컨테이너 위에는 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현장에서 갑자기 나온 건 아니다. 네티즌 사이에서는 "모래주머니를 쌓아 경찰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전부터 제기됐었다.

 11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 컨테이너 박스 앞으로 스티로폼이 옮겨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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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영(28)씨는 "국민의 목소리를 계속 거부하며 장벽을 쌓고 있는 오만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국민들이 이 장벽을 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며 "폭력과 비폭력은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우리를 폭력집단으로 보지 마라"고 말했다.

컨테이너에 올라가는 행위 자체를 폭력으로 보면 억울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런 주장은 이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높은 수위의 시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컨테이너에 오르지 말자] "평화 집회가 우리의 무기다"

"컨테이너에 오른다고 뭐가 바뀌나. 폭력 시위를 하면 정권을 자극하게 되고, 조중동이 쌍수 들고 우리를 '씹어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모차 부대는 거리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촛불집회는 지지를 잃게 된다. 평화 집회가 우리의 무기다."

박성수(39)씨는 연신 스티로폼 연단을 막아서며 말했다. 박씨의 얼굴에는 땀이 가득했다. 계속 스티로폼을 옮기는 사람들과 대치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평화 집회가 아니라면 촛불문화제의 가치는 끝장이고, 곧 우리의 싸움은 패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은 "싸움의 수위를 높이자는 쪽은 결국 조중동과 이명박 대통령을 이롭게 할 뿐이고, 그들은 우리가 쇠파이프 들기를 고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정미(26)씨는 "평화 집회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우리는 계속 평화적인 방법으로 싸운 뒤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며 "우리는 벌써 고시 유보라는 성과를 내지 않았냐"고 말했다.

이들이 우려하는 건 두 가지로 요약된다. 싸움의 수위가 높아지면 조중동 등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촛불문화제의 국민적 지지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거리 토론은 촛불문화제의 힘

 11일 새벽 서울 세종로 사거리 컨테이너 박스 위에 오른 깃발들이 힘차게 펄럭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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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새벽 '명박산성'에 올라 깃발을 흔들던 이들이 내려오면서 태극기 하나를 남겨 뒀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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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간에 걸친 양쪽의 토론은 결국 깃발만 컨테이너 위로 올리는 것으로 정리됐다. 집회 참석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면서 정부가 쳐 놓은 경계를 국민들이 넘어섰고, 또 넘어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일종의 상징 행위였다.

깃발이 컨테이너 위에서 펄럭이자 양보 없이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던 양쪽은 한목소리로 환호성을 질렀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국민들이 승리한다!"를 외쳤고, <애국가>와 <광야에서> 등을 불렀다. 타협에 수긍했고, 그 절차를 긍정한 것이다.

사실 이런 토론과 타협의 모습이 생소한 건 아니다. 다만 이날 토론이 길었을 뿐이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에서 거리 토론과 타협은 늘 있었다. 최근 광장과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이다. 당연히 지도부도 없고, 누구의 지도를 받는 것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지도부의 공백을 토론으로 채우며 지금까지 왔다.

시민들은 거리의 민주주의를 선호했고, 이들의 실천은 그 자체로 직접 민주주의였다. 시민들은 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을 막지 않았고, 듣고자 하는 이의 귀를 막지 않았다. 피곤해도 토론이라는 절차를 생략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는 복잡하고 '피곤한' 제도다. 하지만 시민들은 그 민주주의를 선택했고, 한국의 근현대사는 그런 민주주의의 가치를 확장해온 과정이었다.

현재 많은 국민들이 "이명박 반대"를 외치며 거리로 나온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대화와 토론 그리고 타협이라는 민주주의의 피곤한 절차를 실용이라는 이름으로 생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1만 명에 이르는 시민들은 컨테이너 위로 '고작' 10여 개의 깃발을 올리는 일에도 7시간이라는 밤샘 토론을 감수했다. 하지만 국민을 섬기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의 건강이 달린 문제를 순식간에 독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날 컨테이너에 오른 시민들은 이렇게 적힌 현수막을 펼쳐 들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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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정부, 이것이 MB식 소통인가."

국민들은 여전히 대통령과 소통의 부재를 느낀다. 11일 새벽 한 시민은 "앞으로 경찰의 저지선을 뚫지 말지를 <다음> 아고라에서 토론하고 결정하자"며 "다수가 결정하는 방향으로 모두 따르자"고 제안했다. 시민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돌아보면 시민들은 지난 한 달 동안 꾸준히 싸움의 수위를 높여왔다. 촛불문화제가 거리 시위로 이어졌고, "고시철회 협상무효" 구호는 "이명박 퇴진"으로 바뀌었다.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문화제와 거리 시위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 국면은 이명박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감수성'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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