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어제(10일) 저녁 7시를 기해 '국민 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백만촛불 대행진'이 전국 동시 다발로 진행되었다. 그 시간 수십만의 인파가 모인 서울 중심부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등장했다.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등장한 손님은 농림수산식품부 수장인 정운천 장관. 수십만의 인파 속에서 그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그는 곧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죽으러 왔다'던 정운천 장관 '나도 할 말 있습니다!'

 

그는 촛불문화제에 시민 자격이 아니라 광우병 논란을 불러 일으킨 주무 부서인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자격으로 나왔다. 그것도 전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촛불문화제 현장에서 광우병 소 수입 논란에 대해 책임 있는 사람으로서 대국민 자유발언을 하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정운천 장관은 대책회의 관계자가 "왜 왔느냐"고 묻자 "죽으러 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나왔다는 정운천 장관의 행보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무슨 낯짝으로 국민 앞에 설 결심을 했냐며 '소영웅주의'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그럴 시간이 있다면 재협상에 더 전념하라는 질책도 있었다.

 

아무려나 정운천 장관의 촛불문화제 참석은 기이한 일이다. 모든 이들이 촛불을 피해 숨으려 하는 시간, 자칫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현장에 주무 장관이 변장도 하지 않고 제 발로 찾아온 것은 큰 의미를 지닌다.

 

외교통상부에서 한 일을 설거지만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농림수산식품부 수장으로 국민을 향해 할 말도 있을 것이다. 장관으로서 국민에게 직접 토로하고 싶은 심정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그는 촛불 든 현장에 나와서는 안 될 인물이다. 5분 발언 동안 그가 할 말이라는 게 굳이 듣지 않아도 뻔하기 때문이다.

 

정운천 장관은 애초 대책회의 측에 촛불문화제 무대에서 발언할 기회를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그에 대해 대책회의 측은 국민이 원하는 답을 가지고 오지 않으려면 참석하지 말라고 만류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현장에 나타났다. 장수로서의 기개가 엿보이는 대목이지만 발언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말이란 게 한계가 있는 것임을 국민들은 안다.

 

정운천 장관은 발언대에서 대국민 사과와 함께 농림수산식품부가 현재 미국 측에 '추가 협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사과는 아무런 효력이 없다. 장관의 사과 한마디로 맺힌 분노를 풀 국민도 없다. 

 

겁없는 정운천 장관의 용기, 차라리 미국을 향해라

 

미국이 국가 간 협상은 이미 끝났다며 재협상은 절대로 없다고 못 박고 있는 시점에서 정운천 장관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보인다. 더불어 미국은 미국산 쇠고기 문제는 업자 간 문제라며 발을 빼고 있는 형국이기도 하다.

 

업자들이 풀 문제를 국가가 나서는 것이 문제 있다는 미국.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니 잘못 끼워진 단추를 푸는 시늉이라도 하는 한국. 그러나  두 나라가 각자 쏟아내고 있는 말들은 태평양 한가운데 바다쯤에서 조용히 소멸되는 상황이다.

 

지난봄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선물 보따리를 꾸리라고 한 이명박 대통령이 입을 다물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의 상황은 진전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걸 정운천 장관이라고 몰랐을까.

 

어제저녁 쫓기듯 현장을 빠져나간 정운천 장관은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장관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한 달 넘게 이어지는 촛불을 보며 어떤 회한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할 말이 있으면 기자회견을 할 것이지 자유발언대는 무슨…'이라고 말하는 시민 앞에 그는 준비한 말을 쏟아내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아무려나 정운천 장관의 겁없는 용기만은 높이 사주고 싶다. 소통을 거부한 채 '독거 노인'이 된 이명박 대통령과는 사고가 달라 보여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러나 그의 겁없는 용기가 국민을 향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향했다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정 장관의 '겁없는 용기'와 대비되는 이명박 대통령의 '무모한 용기'

 

정운천 장관이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촛불문화제 현장에 나오는 순간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스스로 갇힌 채 국민들이 들고 있는 촛불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운천 장관이 '겁없는 용기'를 냈다면 그 순간 이명박 대통령은 '무모한 용기'로 국민 위에 군림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쌓은 컨테이너 박스를 국민들은 '명박산성'이라 이름 붙였다. 국민과 싸우기 위해 쌓은 산성은 경찰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토성도 석성도 아닌 쇠붙이로 만들어졌다. 국민들은 컨테이너로 만든 벽 앞에서 또 한 번 절망했다. 시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현실 인식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냐'며 분노했다.

 

천혜의 요새도 언젠가는 무너져 내린다는 것을 지난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면,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거부하기 위해 쌓은 '명박산성' 또한 언젠가는 국민의 손에 의해 해체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제(10일)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무모한 용기를 마음껏 조롱했다. 명박산성 앞에서 촛불은 든 국민들은 '이명박은 물러나라' 혹은 '이명박은 나와라'고 외쳤지만, 그는 청와대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스스로 '독 안에 쥐'가 되어버린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심경으로 간밤을 보냈을까 궁금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늘(11일) 아침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 성공전략회의'에 참석해 "어젯밤 열린 6·10 민주항쟁 집회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 많은 생각이라는 게 대체 무엇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만약이지만 일말이라도 국민들을 위한 생각에 잠겼다면 오늘 아침 '쇠고기 협상을 전면 무효하고 재협상을 하겠다'는 발표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을 들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그는 경험 있는 선수로서 '시위라는 게 겨우 이 정도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라며 자신의 지난 일들을 추억했을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세종로를 가로막은 명박산성으로 인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을 완벽하게 막았다는 보고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기상예보를 보며 '대체 비는 언제부터 온다카노'하며 하늘만 바라보았을 것이다. 

 

국민이 선택한 평화, 그 평화를 악용하는 이명박 대통령

 

간밤 명박산성 앞에서는 많은 국민들이 산성을 넘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격한 토론을 벌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당연히 넘어야 할 것이지만 국민들은 명박산성의 쇠붙이 벽에다 대고 소리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다.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외침은 분명 평화의 외침이었으나 어쩐지 허허로웠다. 경찰은 언제나처럼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에게 방패로 위협을 가하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카락만 찍혀도 잡아낸다는 카메라를 들이대며 겁을 주었다. 그러한 폭력은 정당한 것이고 불법과 폭력으로 쌓은 명박산성을 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게 어제 내린 결론이었다.

 

평화를 선택한 국민은 성숙했으나 오늘 아침 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여전히 독기 품은 노인처럼 완고하다.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최초라는 기록을 누구보다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눈이 점점 작아지는 것은 어인 일일까.  

 

간밤은 평화로웠다. 대통령이 만든 것이 아닌 국민이 만든 평화였다. 그러나 평화를 악용하는 이명박 정부가 있는 한 그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어서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

 

그의 무모한 용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지만 명박산성 또한 언젠가 무너지게 마련이다. 그 산성이 무너지는 날 이명박 대통령의 무모한 용기도 막을 내릴 것이나, 그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설 자리는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

 

촛불문화제에 죽을 각오를 하고 나타난 정운천 장관. 산성을 쌓아 스스로 독 안에 든 쥐가 되어버린 이명박 대통령. 정운천 장관의 촛불문화제 참가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면 정운천 장관의 행보가 이명박 대통령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장수 답게 보이는 것은 지나친 감상일까.


태그:#재협상, #정운천, #이명박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