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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해도 이렇게 무능할 수가 없다. 이제 취임 100일을 갓 넘긴 대통령이 가진 지지율이라고는 고작 10%대. 내각제였으면 정권이 바뀌었어도 진작 바뀌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지금까지 정부가 대책이라고 내놓은 것 중에서 효과가 있었던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만약 있었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런 무능함 앞에서 시민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청계천 광장에서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의 촛불을 수만 명이 들었는데도 들은 척도 안하기에 사람들은 거리로 나섰다. 이렇게 국민 무시하는 대통령 얼굴 좀 보자고 청와대로 가려고 했더니 물대포에 소화기로 막아섰다.

 

한 학생의 머리를 짓밟는 군홧발과 도망가던 시민의 뒤통수를 가격하던 곤봉을 본 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그런데 경찰청장이란 이는 사퇴는 고사하고 사과 한 마디 없었으며, 정권은 여전히 재협상 불가라는 이야기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비폭력 외치던 이들 "이젠 더는 못 참겠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폭력을 외치던 시민들 중에서 "이제 더는 못 참겠다" "이렇게 해서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성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거리에서, 온라인에서 과연 지금의 촛불집회가 계속 '비폭력' 원칙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청와대로 가기 위해 필요한 '힘'을 써야 할 것인가를 놓고 논쟁이 격렬하다.

 

모든 것이 놀랍고, 최초라 할 만한 이번 촛불집회. 폭력-비폭력 논쟁이 이처럼 대중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 역시 최초가 아닐까 싶다. 지금까지 운동권 지도부에서 정세를 근거로 물리력을 행사할지 말지에 대한 은밀한 논의들이 존재했을 뿐, 이처럼 대중적으로 폭력의 정당성과 효과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은 유례가 없다고 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 촛불집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를 비폭력이라고 분석했다(관련기사- 경찰이 막으면 돌아가면 되고~ 특공대보다 힘센 비폭력 시민들).

 

현장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 본 이들이라면 사람들이 "비폭력! 비폭력!"이라고 외치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언론은 경찰과 시민들이 대치하고 있는 곳에 집중해 있지만, 막상 대대분의 참여자들은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거리에서 낮과 밤을 지새우고 있다. 필자는 그러한 일련의 모습을 통해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이들이 자연스레 비폭력이라는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저항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제 그 비폭력을 통한 저항에 조금씩 균열이 가고 있다. 보수언론이 난리치는 '쇠파이프' 어쩌고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내부에서 점점 비폭력에 대한 회의가 커져가고 있다. 계속 청와대로 가자고 막아선 버스를 흔들고 당겨도 보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는다. 게다가 정권의 무능함으로 인해 커질 대로 커진 분노가 이런 우리의 회의감을 더욱 깊게 만들고 있다.

 

사실 이는 당연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지금 거리에 모인 이들은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단일한 지도부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사전에 합의된 원칙을 갖고 모이지도 않았다. '비폭력'이라는 방식이 거리에서 자연스레 시민들의 합의로 구성됐지만, 어떤 이들은 저항을 위해선 '불가피한' 폭력이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비폭력이라는 '명분'이 많은 성과를 만들면서 분명 사람들의 생각에 큰 변화가 있었겠지만 '맞은 만큼 때려야 한다'는 것이 상식인 세상에서 비폭력은 언제나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비폭력에 대한 합의는 그만큼 쉽게 무너질 수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의 논쟁은 기회일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다른 이들의 주장을 들으면서 보다 단단한 관점과 합의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폭력이라는 쟁점은 매우 민감하고도 어려운 문제다. 특히 '저항 폭력'에 대한 문제는 더욱 그렇다.

 

이스라엘의 폭격기와 탱크에 맞서서 돌멩이를 던지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폭력은 나쁜 것이고, 그렇게 던지는 짱돌이 탄압의 빌미가 된다고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80년 광주에서 자국의 군대가 쏜 총에 맞아 죽은 이웃들을 가슴에 묻고 총을 잡았던 민중의 역사 앞에서 비폭력이 보다 효과적인 전술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폭력은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서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 또한 비폭력은 구체적인 저항의 실천으로서 존재할 때만 의미 있는 선택항이 될 수 있다.

 

이처럼 민감한 주제이고 상황이기에, 오히려 명확한 입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은 더욱 그러한 시기이다.

 

지난 8일 새벽 시위현장에 쇠파이프가 등장한 것을 두고 보수언론과 치안 당국은 국면 전환의 호재로 이용하고자 난리 법석이다. '쇠파이프'라는 것이 가진 상징성을 이용해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10시간 만에 '폭력 시위 엄단'이라는 담화를 발표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게 없던 정부였다는 것에 비추어본다면 전광석화와 같은 반응이다. 보수언론들 역시 '다시 등장한 쇠파이프'와 같은 타이틀로 구겨진 체면을 만회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물론 폭력 시위를 주도한 사람이 누구냐를 놓고 인터넷에서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국면에서는 더욱 더 철저하게 비폭력적인 직접행동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논쟁적인 시기에 이러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준의 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지금은 6월 10일 새벽이다. 당장 10일 저녁, 백만에 가까운 시민들이 거리에서 모일 것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보다 구체적으로 '전술'로서 비폭력이 왜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지에 초점을 두고자 한다.

 

비폭력은 원래 느리다, 그리고 질기다

 

먼저 지금의 촛불집회가 이처럼 거대한 힘을 왜 가지게 되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비폭력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오는 비판 중의 하나가 사람들의 자발적인 표현과 분노의 표출을 '도덕'으로서 억누르고 규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거리에서 그러한 억압은 오히려 폭력이 행사되는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경찰의 장애물로 막힌 곳을 뚫고자 하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지켜보는 이들은 점점 분리되고 있다. "여자들은 뒤로, 남자들은 앞으로"라는 이야기가 빈번하게 나오고 있으며, 뒤에 있는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간 이들을 응원하는 정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오고, 사상 최초의 '국민 엠티'를 세종로 사거리에서 진행했던 힘은 사람들 스스로가 지금 저항의 주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이크를 잡은 이가 일방적으로 지도하지도, 여성과 남성이 구별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모차를 끌고 나왔던 어머니가 덩치 좋은 남성보다 더 큰 힘을 갖는 공간이었기에, 교복을 입은 학생과 장미꽃을 들고 나오신 할머니가 붉은 조끼 입은 민주노총 베테랑 운동권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었기에 지금과 같은 촛불집회가 만들어졌다.

 

그러한 촛불의 힘은 폭력 앞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폭력은 필연적으로 대화와 논의의 장을 위축시킨다. 효과적인 폭력은 일사불란한 명령이 필요하고 힘센 이가 약한 이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여성은 뒤로 빠져야 하며, 할머니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이미 시민들은 그렇게 자신의 주체적 역할이 박탈된 상황에 대해서 불편해 하며 경찰과 대립했던 광화문이 아니라 시청광장에서 스스로가 할 수 있는 일이 훨씬 더 많다고 말하고 있다.

 

한 시민이 들고 있는 피켓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00만 명 모으려면 무조건 비폭력 끝까지 비폭력'

 

지금의 촛불을 만들어온 힘은 비폭력이었다. 매스컴에서 다뤄지는 평화시위를 넘어서서 참여자들 내부의 자신감과 주체성을 만든 요인이 비폭력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이 흔들리면 촛불은 꺼질지도 모른다.

 

비폭력에 대한 또 다른 비판은 그렇게 오래 외쳤는데도 지금까지 무엇이 바뀌었냐는 것이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비폭력은 원래 느리다. 앞선 글에서도 썼던 것처럼 힘과 힘이 부딪힐 때에는 그 승부가 빠르게 결정 난다. 하지만 비폭력 직접행동은 다르다. 끝까지 우리의 원칙으로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초창기 촛불문화제에서 많이 외쳤던 구호중 하나가 '될 때까지 나오자'였다. 이 구호야 말로 비폭력 직접행동의 핵심을 담고 있다.

 

왜 느린 것을 택할까? 치밀하게 조직된 권력과 힘과 힘으로 부딪힐 때 그 승산은 크지 않다. 그러나 비폭력으로 싸우는 지금은 다르다. 시민들의 자신감은 비폭력 평화시위라는 도덕적 우위를 통해서 시간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반면, 정부는 5월 31일과 6월 1일의 강경진압 이후에 일방적인 여론의 질타 속에서 회복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렇게 말이 많았던 고소영, 강부자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들. 촛불을 든 느린 사람들이 이제 그 사람들 사표를 거의 받아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를 했다고 하고, 대미 특사를 파견했다고도 했지만 사람들은 묵묵히 고시 철회, 재협상을 외치면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그렇게 꿋꿋하게 걸어온 지금, 정부는 내밀 수 있는 카드를 모두 다 써버렸다. 이제 재협상 말고는 방법이 없다. 이렇게 우리는 이미 매일매일 승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수 언론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언론의 문제 역시 중요하다. 인터넷의 발달과 개인 미디어를 통해서 기존의 언론이 독점하던 정보통제와 담론형성의 주도권은 이전보다는 훨씬 약해진 상황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수언론이 장악하고 있는 시장 규모는 상당하다.

 

1999년 시애틀에서는 WTO에 반대하는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7만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국적과 인종, 자신의 활동 영역에 차이를 넘어서서 거대한 연대를 이루면서 철저하게 비폭력의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한 그룹이 나이키와 스타벅스 상점의 유리창을 깨는 일이 발생했다.

 

초국적 기업이 제3세계의 민중들을 착취하는 것에 대한 반대라는 이유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 일을 기점으로 그들의 대응에 곤란해 했던 주정부와 재벌들은 상황의 반전을 꾀했다. 대기업이 전체 언론의 50%를 넘게 소유하고 있는 미국의 상황이었기에 모든 방송은 상점의 깨진 유리 앞에서 시애틀은 무법천지이며, 시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고, 주지사의 계엄선포와 통행금지는 정당하다고 강변했다.

 

너무나 슬프게도 여전히 한국 사회는 보수언론이 장악하고 있다.  물론 보수언론이 주장하는 평화시위라는 것과 우리의 것은 전혀 다르며 우린 우리의 방식을 지켜나가면 된다. 단지 빌미를 주지 말자는 것이다. 그 지긋지긋한 폭력시위, 반미친북의 딱지가 없으면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좀 더 모질게, 비폭력으로

 

강경진압 이후 경찰은 가능하면 전·의경과 시민들이 직접적으로 대치하는 것은 피하고자 하는 분위기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어느 여자 목소리의 경찰 방송이다.

 

"폭력으로는 여러분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당장 버스를 흔드는 행위를 멈추고 평화시위를 하십시오."

 

물론 고도의 심리전을 위한 도구겠지만, 그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또 다른 것은 이 싸움에서 '비폭력'과 '평화'라는 것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는 광우병에 대한 과학적 논쟁, 민주주의에 대한 원칙들이 중요한 쟁점이었다. 그러나 5월 31일과 6월 1일의 경찰 과잉진압이 전사회적인 이슈가 되면서 이제는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 벌이는 비폭력-평화시위와 그들에게 소화기와 물대포를 뿌리는 경찰의 대립구도가 지금의 촛불시위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쟁점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경찰 역시 지금의 분위기에서 집회해산이나 무력진압이 그들이 말하는 '정당한 법집행'으로서 보일 수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극도로 조심하고 있다. 그리고 거리의 시민들의 행위가 폭력이고, 평화시위가 아님을 드러내고자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비폭력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다. 이 상황은 물대포와 소화기 앞에서도 "비폭력"을 외치던, 경찰은 우리 적이 아니라고 때리지 말라고 외치던 이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의 도덕적 우위를 놓쳐서는 안 된다.

 

비폭력을 주장하는 이들은 많은 역사에서 겁쟁이나 투쟁의 의지가 없는 사람으로 몰렸다. 먼저, 필자는 겁쟁이가 맞다. 백만이 모인다는 오늘. 단 한 사람이라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민들도, 경찰들도 말이다.

 

그래서 이렇게 새벽까지 글을 쓴다. 그리고 거리의 시민들도 겁쟁이 맞다.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지만 혹시나 내가, 내 가족이, 내 이웃이 죽을 수도 있을까 무서워서 밤이고 낮이고 거리로 나오지 않는가. 누구 하나 다칠까 봐 비폭력 비폭력을 외치는 이들 역시 겁쟁이 맞다. 그런데 사람이 겁이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대포 쏴도 사람 안 다친다고 겁 없이 말하는 사람을 보면, 수십만이 거리에 있는데도 설마 여기까지 오겠어 하고 청와대에 겁 없이 계신 분을 보면 겁쟁이 하는 것이 훨씬 나아 보인다.

 

그리고 비폭력이 무저항이라는 것은 오해다.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번뜩이는 방식의 저항이 무엇일까를 짜내고 짜내서 만드는 것이 비폭력 직접행동이다. 참여하는 모든 이들의 주체로서 행동할 수 있고, 꽁꽁 막혀진 곳 앞에서만 계속 힘대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비폭력.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보다 확장된 비폭력 직접행동일 것이다.

 

이제 좀 더 모질게 싸워나야 한다. 청와대 앞도 가봤고, 물대포도 맞아봤고, 소화기 분말도 먹어 봤다. 다친 사람들의 모습에 눈물도 흘렸고,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경찰들 보면서 쌍욕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뭐 좋다고 길거리에서 난생 처음 보는 이들과 엠티도 하면서 말 그대로 멤버십까지 다졌다.

 

하지만 여전히 재협상 선언은 없다. 대신 많이 배우고 있다. 민주주의를. 사람들의 현명함과 힘을. 비폭력을. 이제 조금 더 힘을 내서 모질게 싸워보자. 어려운 길이지만 이기는 길인 비폭력적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현재 전쟁없는세상 활동가이며 대학원에서 사회운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태그:#광우병, #촛불집회, #비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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