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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한 아들, 한 동생을 얻어 네 명의 가족이 탄생했다.
▲ 두 여자와 두 남자 두 여자가 한 남자를 만나 한 아들, 한 동생을 얻어 네 명의 가족이 탄생했다.
ⓒ 땅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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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장차현실'과 딸 '은혜', 그 두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은백'과 '서동일'.

그 넷이 한 가족임을 알리는 가족식이 열리던 6월 8일 낮 12시 무렵. 오락가락 비가 오던 하늘에는 축하라도 하듯 햇살이 맑게 빛났다.

신랑과 신부에 앞서 19살 딸 은혜와 3살배기 아들 은백이가 장미 꽃잎을 뿌리며 앞서 걷는다.

3살배기는 몇 걸음 발자국을 떼더니만 많은 사람들 박수가 어색한지 엉금엉금 기다가 마침내 "앙~" 울음을 터트리며 옆길로 물러선다. 박수를 치던 축하객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았지만 아이를 달래느라 잠시 웅성거린다.

그렇게 다운증후군 딸 은혜(19), 장차현실(45), 영화감독 서동일(38), 아들 은백(3)이 넷이 한 가족으로 잘살겠노라고 알리는 가족식이 양평 '꿈꾸는 별장'에서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진행됐다.

아들은 들러리, 딸은 축가... 주례는 없네

사회자는 있지만 주례는 없다. 양가 어머니가 나란히 입장을 하고 두 자녀가 축하의 꽃잎을 뿌린 길을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손을 잡고 입장을 한다. 서로 서약의 글을 낭독한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이 부르는 축가를 듣는다.

서동일, 은혜, 장차현실, 그리고 은백 그렇게 두 남자와 두 여자가 가족으로 살것을 지인들에게 알려 축하를 받고 있다.
▲ 가족식을 갖는 장차현실. 서동일, 은혜, 장차현실, 그리고 은백 그렇게 두 남자와 두 여자가 가족으로 살것을 지인들에게 알려 축하를 받고 있다.
ⓒ 땅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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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히 자신을 여성장애인이라고 소개한 은혜가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 '해바라기'가 부른 노래 '사랑으로'를 축가로 부르고 있다.
 당당히 자신을 여성장애인이라고 소개한 은혜가 사랑하는 엄마와 아빠를 위해 '해바라기'가 부른 노래 '사랑으로'를 축가로 부르고 있다.
ⓒ 땅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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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는 이제 다 컸으니까 아빠 해도 돼"라며 서동일씨를 아빠로 받아들인 은혜씨가 축하송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불렀다. "엄마… 내가 많이 도와줄게. 사랑해"라는 은혜의 고백은 축하객들의 콧등을 시큰거리게 했다.

해혼과 사별 등으로 한 부모 가정이 된 가족들이 다른 가족을  만나 새로 가정을 꾸리기로 서약하는 행위는 사실 재혼이 아니라 '가족식'이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다.

서로 다른 가족과 가족이 만나 또 다른 확대 가족을 만들어 내는 일은 당사자 두 사람의 결합인 결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재혼 가족의 결합을 당사자들 간의 결합의 의미인 '재혼' 혹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그래서 장차현실이 전 남편과 사이에 둔 딸 은혜, 서동일 감독과 사이에 낳은 아들 은백, 새 남편 서동일과 한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을 지인들에게 알려 축하를 받는 자리를 결혼식이 아닌 가족식이라는 이름으로 마련한 것은 남다른  감동과 의미가 있다.

그들은 사회가 깨트리지 못한 편견과 관습의 벽을 넘어 새 가족을 구성했다. 이렇듯 새 출발을 공표하는 가족식은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감동을 준다.

3년 살면 대박, 10년 살면 로또?

신랑 서동일과 신부 장차현실은 서로에게 서약서를 읽어주었다.
▲ 서약서 신랑 서동일과 신부 장차현실은 서로에게 서약서를 읽어주었다.
ⓒ 이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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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서동일이 서약서를 낭독하고 있다.
▲ 서약서를 낭독하는 신랑 서동일 신랑 서동일이 서약서를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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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신랑 서동일과 신부 장차현실이 하객들 앞에서 낭독한 서약서 내용을 소개한다.

나는 나의 딸 은혜와 나의 아들 은백이를 사랑합니다. 나는 나에게 소중한 딸과 아들을 선물해 준 나의 신부 장현실을 사랑합니다. 나와 장현실이 이루는 가정이 비록 장애와 나이 차이에서 오는 세상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는 않지만 나와 장현실은 인생의 동반자로사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세상의 불편한 시선과 편견 불합리한 고정관념에 기꺼이 도전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장현실과 함께 우리의 소중한 가정을 자유로운 영혼이 살아 숨쉬는 가정으로 더욱 건강하고 튼실한 가정으로 가꾸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2008년 6월 8일 신랑 서동일

신부 장차현실이 서약서를 낭독하고 있다.
▲ 서약서를 낭독하는 신부 신부 장차현실이 서약서를 낭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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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후배에게 축하의 덕담과  하객들의 축하글이 담긴 리본 막대를 선물하는 한의사 이유명호씨(좌). 김선주 전 한겨레 주간이 가족식을 치르는 장차현실과 서동일씨에게 축하의 덕담을 건네고 있다(우).
 사랑하는 후배에게 축하의 덕담과 하객들의 축하글이 담긴 리본 막대를 선물하는 한의사 이유명호씨(좌). 김선주 전 한겨레 주간이 가족식을 치르는 장차현실과 서동일씨에게 축하의 덕담을 건네고 있다(우).
ⓒ 땅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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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위해 헌신하지 않겠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투정도 부리겠습니다. 아닌 척 씩씩한 척 하며 가족들을 원망하거나 불편해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건강을 지켜나가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닌 짐을 나누고 가족의 짐을 나누어 받겠습니다. 사랑하는 서동일, 은혜, 은백 그들을 진심으로 원하며 오래도록 사랑하겠습니다.
- 2008년 6월 8일 신부 장현실.

"'3년 살면 대박이고 10년 살면 로또 당첨과 맞먹는 행운일 것이다'라고 염려와 걱정을 했던 것을 사과한다. 몇 년간 지켜봤는데 아주 잘 살더라.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처럼 정말 잘 살아주길 바란다"라고 말한 뒤 한의사 이유명호씨는 하객들이 리본에 적은 덕담을 묶은 나뭇가지를 축하의 선물로 건넸다.

김선주 전 <한겨레> 논설주간은 "장차현실을 20년 지켜봤고 서동일 감독은 서로 사귈 때부터 지켜봤는데 볼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오늘 이 자리에서도 여전히  감동을 받았다. 정말 축하한다"라고 덕담을 건넸다.

"잘 먹고 잘 사세요"라는 이웃 주민의 격려와 덕담처럼 그이들을 아는 지인 모두와 그이들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오래 오래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지켜볼 수 있기를 바란다.

싱글맘, 새로운 가족을 만들다!
<작은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장애와 비장애, 셩별과 나이의 차이를 넘어 새롭게 가족을 꾸린 장차현실의 또리네 집 이야기
▲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 장애와 비장애, 셩별과 나이의 차이를 넘어 새롭게 가족을 꾸린 장차현실의 또리네 집 이야기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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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딸 은혜와 싱글맘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솔직하게 그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일으킨 장차현실이 5년 만에 새 만화집 <작은 여자와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를 출간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장애인 딸과 사는 모녀의 일상에 새 남자가 등장한다. 그이는 장애인의 성 문제를 다룬 영화 <핑크 팰리스>를 감독한 서동일씨다. 서씨는 장애인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면서 장차현실을 만나게 된다.

장애인 딸을 둔 연상의 싱글맘 장차현실과 총각인 서동일, 그 둘의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 많은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편견에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세상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트려 간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가족을 이루고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서기까지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얽힌 문제들을 풀어나갔다. 은혜가 서씨를 오빠가 아닌 아빠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다. 은혜는 시간이 흐르면서 새 아버지 서씨를 오빠가 아닌 아빠로 인정하며 받아들인다(가족식을 치르기 전 그들은 5년 정도 같이 생활했다).

한 부모 가정이 새 가족을 맞아들이기 위해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과 어떻게 화평을 이루어 가는지, 어떤 지혜가 필요한지 잘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어쨌거나 작은 여자와 살던 싱글맘 큰 여자는 한 남자를 만나 한 아들을 얻었고, 이제 여자 둘, 남자 둘, 가족 넷의 가장이 되었다. <작은 여자 큰 여자 사이에 낀 두 남자>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려는 이들에게 커다란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변화된 이름으로 살자

안종대, 서로사랑(1995)


태그:#가족식, #서로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장차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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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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