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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와 거리시위의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사태 수습을 위해 30개월 이상 쇠고기 수출 금지를 미국에 요청하기도 하고 인적쇄신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한편으론 강경진압과 대국민 담화를 통한 위협도 했지만 국민들의 함성을 막지는 못했다. 처음엔 청계광장에 앉아서 촛불만 들던 국민들이 이제는 거리에 나와 밤새 도로를 점거하고 청와대로 몰려가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이런 촛불문화제의 한편에서 다소 엉뚱한 논쟁이 시작되었다. 바로 깃발논쟁이다. 촛불문화제 참가자가 늘어나면서 하나 둘씩 깃발을 든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편에선 깃발을 내리라고 요구하고 다른 한 편에선 왜 깃발이 문제냐며 항변하고 있다.

 

과거 거리시위나 집회자리에서 흔히 봐오던 깃발이 왜 갑자기 문제로 떠올랐을까? 과거와 달리 지금은 특정 단체가 준비하고 주도하는 집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집회는 자발적으로 수많은 대중들이 모였고 여기에 여러 단체들도 참여하고 있는 양상이며 그나마 단체로 참여하는 수가 더 적은 형편이다.

 

깃발과 촛불이 갈라서면 좋아할 세력은?

 

깃발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깃발을 들면 깃발에 소속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구분되고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이 소외감을 느껴 촛불문화제에 참가하기 어려워진다. 둘째, 깃발을 들면 촛불문화제가 몇몇 단체들의 주도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여 정부나 보수언론에게 공격당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논리는 깃발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라고 하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실제 수만에서 수십만 명이 모이는 집회자리에 깃발의 수는 턱없이 적다. 따라서 깃발에 소속된 사람보다는 소속되지 않은 사람이 비교도 안될 만큼 훨씬 많다. 깃발에 소속된 사람이 소외감을 느낀다면 몰라도 깃발 없는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또한 깃발이 등장한 후로도 집회 참석자는 계속 늘기만 했다. 즉, 깃발 때문에 집회 참석을 꺼리는 분위기는 거의 없다. 정부나 보수언론도 깃발을 들고 참석한 단체들을 빌미로 공격한 적은 거의 없다.

 

깃발을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깃발을 든 이른바 ‘운동권’ 단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 아닐까? 촛불문화제 자리에는 단체 깃발 외에도 구호를 적어온 작은 깃발들도 있었고 ‘운동권’이 아닌 단체들의 깃발들도 있었지만 이를 문제 삼은 이는 아무도 없었던 것을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즉, 깃발을 들고 나온 운동권 단체 자체가 원래 싫었거나 또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자리에 뒤늦게 참여해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대한 불만이 있거나 뭐 그런 이유로 보인다.

 

 

운동권에 대한 반감은 정부와 ‘조중동’이 만들어 낸 허상이 크게 작용한다. 지난 군사독재시절 운동권 단체들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보수세력들은 운동권을 뿌리 뽑기 위해 한 편으론 국가보안법과 공권력을 동원하여 탄압하고 다른 한편으론 음해모략에 매달렸다. 음해모략의 주된 방식은 운동권이 ‘북한의 사주를 받는다’는 식의 색깔론과 폭력성을 부각하는 방식, 또 도덕성을 문제 삼거나 ‘집단의 이익을 앞세워 국가 이익을 가로막는 집단’으로 매도하는 식이다. 이렇게 보면 과거 운동권에 대한 모략은 지금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국민들에 대한 모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십 년 동안 운동권에 대한 왜곡선전을 진행한 결과 많은 사람들이 운동권 하면 ‘빨갱이’, ‘폭력집단’, ‘이익집단’ 쯤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심지어 ‘한총련’ 하면 가장 먼저 ‘화염병’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한총련이 화염병을 사용하지 않은지 벌써 10년이 넘었는데도 말이다. 이처럼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어느 정도 확산되어 있기 때문에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촛불문화제의 배후에 ‘친북좌파’니 ‘주사파’가 있다고 주장한다. 깃발과 촛불을 갈라놓으려 하는 것이다.

 

정부와 보수언론들의 왜곡선전이 운동권에 대한 부정적인 상을 그려낸 점도 있지만 운동권 스스로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지난 총선에서 전대협 출신 386 후보들이 전원 낙선했는데 이는 ‘운동권’ 이미지를 활용해 국회의원이 되고서도 정작 국회에 가서는 진보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한 데 대한 국민들의 실망이 표로 나타난 것이다. 진보적인 정당, 단체들 또한 그동안 국민의 신뢰를 받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이는 당장 지금의 광우병 쇠고기 수입 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한미정상회담이 끝나고 광우병 쇠고기 문제가 국민들 속에서 일파만파 번지고 있을 때 일부 운동권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이 문제로 제대로 된 항의집회 하나 하지 않았다. 운동권이 나서지 않아서 결국 국민들이 직접 거리에 나선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관용을 베풀어야

 

깃발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보통 최초의 깃발은 전쟁터에서 나타났다고 이야기한다. 전쟁터에서 깃발은 매우 중요했고 또 용도도 다양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아군에게 사기를 북돋아주면서 적군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용도가 있었고 또 아군과 적군을 구분하고 아군의 위치를 알려주며 아군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주로 사용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체 회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거리 행진할 때나 경찰의 난입으로 여기저기 흩어졌을 때에도 단체의 위치를 알려주어 다시 모이도록 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특히 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시내 지리를 몰라 해맬 때 유용하다. 또 전체 참가자들에게 어떤 단체들이 왔는지 보여주고 정부당국에게도 이만큼 많은 단체들이 참여했다는 걸 시위하는 효과도 있다. 때때로 경찰이 뿌린 소화기 연기를 흩어버리기 위해 흔들기도 한다. 마치 과거 최루탄 연기 없애려고 흔들듯이.

 

물론 촛불문화제에는 특정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한다. 하지만 이들도 혼자 나오기보다는 친구들과, 가족들과, 직장 동료나 동네 주민들과 함께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앉아서 집회할 때야 문제가 안 되지만 거리행진을 시작하면 사람이 너무 많아 자칫 흩어지기 쉽고 이럴 경우 무리를 다시 찾기가 몹시 곤란하다. 이런 사람들에게도 깃발은 유용하게 이용될 수 있다.

 

이렇게 유용한 깃발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무작정 내리라고 하는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와도 맞지 않다. 내가 깃발을 들지 않았다고 남도 깃발을 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억압이다. 깃발은 촛불, 피켓, 리본, 풍선과 같은 집회 소품의 하나다. 특정 단체에서 단일한 소품을 들고 나왔다고 해서 배척하거나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오히려 준비를 잘 해왔다고 부러워한다. 이제는 깃발을 들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준비를 잘 했다고 칭찬해주고 격려를 하자.

 

그리고 깃발을 들고 나오는 단체들도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 애초에 국민들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면 이런 불필요한 논쟁도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광우병 반대 투쟁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일약 스타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그리 높지 않지만 강기갑 의원은 단식농성과 삼보일배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헌신적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하였기에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처럼 운동권 단체들은 자신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위해 헌신한다면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

 

단일한 깃발로 일석이조를 노리자

 

한편 최근 깃발을 보면 일부에서 집회 참가자 수에 맞지 않게 지나치게 큰 깃발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과거에는 단체 회원들이 많아서 깃발을 크게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집회에 참석한 사람이 열 명도 안 되는데 깃발은 어마어마하게 커서 혼자 들기에도 벅차 보이는 모습도 있다. 이것은 너무 자기 단체를 과시하려는 것으로 비춰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조성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집회에 참석한 다른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정도로 깃발의 내용, 도안, 크기 등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지금의 깃발 논쟁을 해결할 대안으로 단일한 깃발을 제안해본다. 대책위 차원에서 단일한 깃발 도안을 제시하고 이 깃발 도안을 활용해 자기 단체를 표시하는 정도로 깃발을 만든다면 깃발을 두고 이러저러한 불필요한 논쟁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명박 정부와 광우병 쇠고기를 반대한다는 형상을 중심으로 단체 마크나 이름을 구석에 넣을 수 있게 하고 누구나 이런 깃발을 들고 다니게 한다면 보기에도 좋을 것이다. 이런 깃발은 ‘누구누구네 집’ 같이 가족 단위로도 들고 다닐 수도 있다. 깃발 도안 공모를 하는 것도 좋겠다. 또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집회 참석자 수에 따라 깃발 크기도 규제할 수 있다. 이렇게 해야 경쟁적으로 깃발을 크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단일한 도안의 깃발들이 여기저기에서 펄럭인다면 집회를 바라보는 정부당국에게도 시위의 효과가 커진다. 집집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현수막을 걸어서 국민들의 뜻을 시위한 것과 비슷한 효과다. 깃발의 주요 목적인 참가자들에게 자신감을 불러 넣고 정부당국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에 부합하는 것이다.

 

깃발과 촛불이 만나 그 장점만 살린다면 국민주권시대를 더욱 활짝 열어낼 수 있을 것이다.

 


태그:#깃발, #운동권, #촛불문화제,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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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번영을 여는 북한 전문 통신 [NK투데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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