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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하나.

 

베를린에 갔을 때다. 웬 교회의 첨탑 부분이 부서진 채로 도시 한 가운데 방치되고 있었다. '카이져 빌헬름 교회'.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반파된 교회는 전쟁의 아픔과 폐해를 기억하기 위해서 그 때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한다고 한다.

 

장면 둘.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박물관에 갔을 때다. 그 곳엔 이집트나 중국의 유물이 있었다. 그곳에 같이 간 사람들과 우리는 그것을 보고 큐레이터에게 질문을 했다.

 

'식민지나 기타 루트를 통해서 약탈한 물건들을 여기에 전시해놓는 게 부끄럽지 않느냐?'

큐레이터의 대답이 아직도 내 머리에 멤돈다.

 

'물론 우리가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죄해야 하는 일이라곤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의 역사다. 지키고 보존할 가치가 있다.'

 

생각 하나.

 

촛불 시위 중 경복궁의 기와 일부가 훼손되는 게 쟁점화 되는 것 같다. 100분 토론에 참가한 뉴라이트연합 임헌조 사무처장은 "(경복궁 기와 일부 훼손)이게 옳은 것이냐?"라며 관련된 사진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100분 토론의 시민논객은 "시민들 사이에 그런 움직임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민들에 의해 제지됐고, 충분히 자정능력을 갖춘 시위 현장이었다"라고 말했고, 전화 연결된 대학생은 "기왓장 훼손은 전경들이 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의 블로그에서 자신을 기와 훼손의 주범이라고 밝힌 누리꾼 왼맘잡이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서 훼손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때 찍은 (경찰의 과잉진압) 동영상을 200만 명의 국민들이 보게 됐다. 잘못된 건 맞지만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중요한지 모르는 것 같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누가 훼손한지는 의견이 분분하고, 정확한 사실은 경복궁 기와가 훼손된 것이다. 그리고 묘한 문제제기가 본질을 호도하기에 이른다.

 

경복궁 기와가 훼손되게 된 본질적인 이유가.

 

생각 둘.

 

시민이 깼든, 전경이 깼든 경복궁 기와는 훼손됐다. 문화재가 훼손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그 훼손의 본질적인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

 

쇠고기 문제도 아니고, 대운하 문제도 아니고, 특정 인물을 미워하거나 배후세력의 문제도 아니다. 취임 100일을 맞은 정부가 자기 멋대로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다. 강부자 내각 때도, 대운하를 강행한다고 했을 때도 국민들은 믿어보려 했다.

 

'취임한 지 얼마 안됐다. 믿어보자.'

 

그런데 국민의 의식주를 담보로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의료보험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거기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까지. 거기에 몇 가지 서비스는 교육부 수장들의 개념없는 행동, 영부인의 이해 못할 나들이, 뒤늦게 쓴소리에 나선 여당의 이율배반적 모습...

 

'한 번 해봤느냐. 안 해 봤으면 그런 소리 하지를 말아. 난 세계의 기업을 만들고, 서울시에 청계천을 뚫어놓은 사람이야.'

 

대통령은 국민을 못 해본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잘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고 있다.

 

생각 셋.

 

문화재는 후손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있는 그대로가 교육이고, 있는 그대로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다시는 문화재 훼손이 되풀이되면 안 된다. 이번 기와 훼손을 정당화할 생각 별로 없다.

단지 기억하자. 경복궁의 기와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생성되어 그 자리에 있었고, 지금 이 시간까지 보존됐는데, 2008년 어떤 연유로 일부가 훼손됐는지.

 

경복궁 기와가 겪은 역사 그대로를 보존할 필요가 있진 않을까?

 

장면 셋.

 

2120년 경복궁의 어느날.

 

한 아이.

"엄마, 이곳만 왜 기와가 없어?"

 

엄마.

"이곳은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 쯤에 훼손됐어. 그때 나라를 운영하는 높은 분들이 우리같은 사람들을 무시하려고 했대. 그러니까 사람들이 촛불을 손에 들고 거리에 나와서 우리 말을 들어달라고 소리쳤대. 그 때, 기와가 훼손됐대... 그 때 높은 분들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한 아이.

"음... 엄마, 그럼 왜 이 기와는 다시 안 만들어 놨을까?"

 

엄마.

"다시 만들어 놨다면 우리가 그런 사실을 기억 못했겠지. 역사란 있는 그대로 우리한테 교훈을 준단다. 내일 어린이 의회에 의장께 제안해보렴. 이 곳에 모두 다 와보자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casto와 푸타파타의 세상바라보기(http://blog.daum.net/casto)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CASTO, #경복궁, #기와훼손, #임헌조, #카이져빌헬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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