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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리페’씨는 6월1일 새벽 5시 30분경 경복궁역 부근에서 물대포를 맞아 왼쪽 고막의 1/3이 파열되었다.
▲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타리페' 씨 ‘타리페’씨는 6월1일 새벽 5시 30분경 경복궁역 부근에서 물대포를 맞아 왼쪽 고막의 1/3이 파열되었다.
ⓒ 타리페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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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물대포가 등장했다. 비폭력 무저항의 시위대를 해산하기 위해 경찰은 폭력적 도구들을 선택했다. 촛불을 밝혀 고시 철회를 요구하는 국민들에게 경찰은 물대포까지 동원하여 시위대를 진압하기 시작했다. 폭력적 진압으로 물대포를 맞고 실신하거나 심지어 고막이 파열되는 큰 피해를 입기도 했다.

다음 블로거 기자단으로 활동중인 '타리페'씨는 6월 1일, 새벽 5시 30분경 경복궁역 부근에서 물대포를 맞아 고막이 파열된 상황을 블로그에 올렸다.

5월 31일,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들과 함게 올라와 저녁부터 동행 취재를 했던 '타리페'씨는 사건 당시 시위에 직접 참가한 가담자의 입장이 아니고, 나이 드신 분들이나 아이들을 인도로 피신시키는 일을 하다가, 왼쪽 귀를 정면으로 맞고 광화문 앞에서 실신하였다고 밝혔다. 119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아 고막의 1/3 가량이 파열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1일 오후 퇴원하여 강릉의 집으로 돌아간 '타리페'씨는 "국민을 위해야 할 경찰이 국민에게 얼마나 잔인한지를, 그리고 국민을 대대적으로 무시하는 대한민국 공권력의 현실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왼쪽 귀가 듣는 대신 말로 하고 있다고 절규하듯 적었다.

다음은 ‘타리페’씨가 블로그(http://blog.daum.net/superjey/14874548)에 올린 글이다.

물대포를 정면으로 맞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다

5시 30분 경, 나는 인도에서 그 물대포를 피하던 도중 왼쪽 귀 정면에 물대포를 맞고 그 충격에 실신하였다. 귀에 물대포를 맞은 직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깨어났을때는 광화문 앞 인도에 누워서 의료봉사단이 의식을 확인하려 눈에 불빛을 갔다댔을 때부터이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시민 다수가 나를 걱정하여 의식을 계속 깨어있게 하려고 팔 다리를 주무른 것이 기억난다.

내가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을 때는 경찰이 인도에서도 시민을 광화문 바깥으로 밀어내려고 하여 한창 몸싸움에 시민들이 밀려나고 있을 때인데, 아마 다리에 타박상으로 봐서는 내가 쓰러진 것을 미처 모르던 뒷걸음치는 시민들에게 그때 밟힌 것 같다.

그러나 결국 시민분들의 도움으로 119구급차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후송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전경들의 진압을 지도하던 경찰 간부도 내가 쓰러진 것을 보았다고 했고, 많은 시민들이 조치를 취하라고 경찰에게 요구했지만 경찰은 조치도 취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고 한다. 결국 한 시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의 도움이 아닌, 시민들의 도움으로 119구급차를 탈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꽤 많은 카메라와 방송이 내가 쓰러진 모습을 찍어갔다는데, 찾기가 힘든 것으로 보아 내가 '피'를 흘리지 않아서 심각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피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결코 간단한 부상이 아니었다.

왼쪽 귀의 고막, 절반 가까이 구멍 나다

시민들의 도움으로 탄 119구급차는 들것에 실려간 나를 제외하고도, 다섯명의 부상자를 싣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서울 중구의 백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이미 다른 인근 병원들은 만원 사례라 아직 집회 당시 다친 사람들을 받고 있지 않았던 백병원으로 향한 것이다.

나는 실신의 원인이 된, 왼쪽 귀의 부상 이외에도 목과 턱 사이에 물대포를 맞아 입은 타박상과 앞서서 십여차례 인도에서 물대포를 맞는 과정에서 옷이 흠뻑 젖은 데에서 오는 오한과 더불어 뒷목에도 정면으로 물대포를 맞았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약 한 시간여 동안 침대에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간호사가 접수를 받는데, "접수비 만해도 꽤 되실 것 같아요. 어디어디 아프세요?" 라고 하는 말에, 우선 제일 급한 귀부터 진찰을 받고 다른 다친 곳은 강릉으로 내려가서 진찰을 받기로 생각을 했다. 공권력으로 인해 부상을 입었는데 내 돈으로 치료를 받아야하는 상황에 분기가 치밀어올랐지만,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선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시간여의 대기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에도 부상자는 자꾸만 백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그 중에는 경찰 방패조의 방패에 뒷통수가 찍혀 뒷통수가 찢어져 출혈이 심한 젊은 여성도 있었고, 경찰 체포조의 곤봉에 맞아 팔에 금이 간 젊은 남성도 있었다. 또 나처럼 귀에 이상(고막이 파열된)이 있는 젊은 여성도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다친 한 전경도 있었다. 바로 내 옆 침대에...

곧 이비인후과 진료를 받았다. 의사선생님이 몇 차례 검사를 해보시더니 "고막에 구멍이 난 것 같네요."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어서 "고막 가운데에 고막의 3분의 1 이상 크기의 구멍이 났습니다."라고 하셨다.

왼쪽 귀의 고막이 물대포에 맞아 구멍이 난 것이다. 그것도 절반 가까이나. 의사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약 4개월간 왼쪽 귀의 경과를 지켜보고 절개 수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만약(소송 등)을 대비하여 따로 고막의 상태를 특수장비로 촬영하여 사진화하였다.

현재,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의 왼쪽 귀가 말해주는 경찰의 잔인성

현재, 나 말고도 부상자가 속출하여 내가 진찰을 받은 후에 응급실로 돌아가보니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에서 부상자를 조사하러 따로 파견을 나온 분이 있었다. 당시까지 대책회의가 파악한 부상자는 60여명이라고 했다. 그리고 대책회의가 주장하는 '경찰의 과잉진압 행위에 대한 고발'의 취지에 동의한 나는 그들에게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몸을 추스린 후, 오후 12시경에 출발하여 오후 4시 쯤에 강릉에 도착했다. 지금 나의 얼굴 왼쪽은 타박상으로 인해 부풀어 올라있고, 왼쪽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낙관적인 기대를 한다고 해도 나의 왼쪽 귀는 앞으로 몇 달간은 이 상태이다. 이상한 기분은 둘째치고, 침을 삼킬 때나 하품할 때 그리고 종종 가만히 있어도 통증이 있다. 참기엔 꽤 괴로운 통증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나의 왼쪽 귀는 듣는 대신 말을 하고 있다. 국민을 위해야 할 경찰이 국민에게 얼마나 잔인한지를, 그리고 국민을 대대적으로 무시하는 대한민국 공권력의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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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폭력진압, #물대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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