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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한 달 넘게 평화적으로 이어져 오던 촛불문화제가 5월 하순 들어 가두시위로 변모하더니, 5월의 끝 날에 이르러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다.

 

사상 최대 규모의 인파가 발 디딜 틈도 없이 들어찬 5월 31일 서울광장 촛불문화제는 청와대 부근인 청운동에서 대학생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에 다음 순서를 생략한 채 서둘러 끝내야 했다. 서울광장에 운집한 시민들이 이구동성으로 "어서 연행자를 구하러 가자!"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 순간에 심각하게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10만(경찰 추산 4만)에 이르는 시민이 서울 도심으로 몰려들었다. 지방에서도 무려 100여 곳에서 반대 집회와 시위가 벌어졌다. 그들은 어린 초중등생이 아니었다. 청소년과 대학생은 물론 회사원과 자영업자에다 중·노년까지 모든 연령층이 시위에 가담한 것이다. 엄마들은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나왔으니 이번 시위는 말 그대로 세 살에서 여든까지 모든 국민이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 하면 진정한 국민 여론이 무엇인지를 알고도 남음이 있지 않은가?

 

밤 11가 넘으면서 시민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청와대 방향으로 걸음을 모았다. 효자동과 삼청동과 청운동 세 곳으로 도합 4만의 시위대가 순식간에 운집했다. 이미 사직터널의 방어선등 1, 2차 경찰 저지선이 거의 뚫린 상태였다. 시민들은 경찰에게 행진 길을 터 줄 것을 요구했다. 반면에 경찰은 시민들에게 해산을 종용했다. 그러면서 시민과 경찰은 한 시간 가까이 대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민들의 구호는 주로 "협상무효 고시철회"였다. 하지만 경찰의 가스 분말기와 물대포가 발사되자 구호가 격렬해졌다. 시민들의 입에서는 일제히 "독재타도"가 터져 나왔고 "이명박은 물러가라"는 훌라송이 뒤를 이었다. 그것은 옛날 "전두환은 자폭하라"는 구호를 개사한 것이었다. 이후 자정이 넘고 새벽이 되면서 물대포를 맞고 실신한 시민이 구급차에 실려 가는 장면을 본 시민들은 한결같이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계속 외쳐댔다.

 

누가 이 사태를 만들었는지 생각해 보자

 

지금 이 시간 우리 모두는 현명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 모두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5월 31일부로, 다시 말해 5월이 6월로 달이 바뀌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는 '반정부' 시위로 변모되었음을 인정하자. 그리고 이 시위는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결코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이 명백하다.

 

"우리는 끝까지 갑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1일 새벽 삼청동의 한 시민이 외친 말이다.

 

반정부 시위는 필연적으로 시민의 피를 요구한다. 경찰 만여 명이 투입되고도 막지 못하는 시위라면 더 이상의 시위 방어를 포기하는 것이 순리 아닐까? 경찰은 경찰대로 또 무슨 죄란 말인가?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경찰 병력을 만 오천으로 늘린다고 한다. 이것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이 대통령은 꼭 국민의 피를 보고 싶은 것인가?

 

이 대통령과 이하 우군 세력들은 이제라도 깨달아야 한다. 도심 촛불집회를 24회까지 이어져 오게 만들고 매번 참가자를 키운 것이 정작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위험하면 적게 먹으면 된다" "어린 것들이 뭐 아는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이다" "청소년들이 놀이문화가 없어서 그렇다" "불순세력의 선동에 놀아나는 것이다" "괴담 진원지를 색출하겠다" "반미 친북 세력의 농간이다" "마귀들의 꼼수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항복해서는 안 된다. 국민 중에는 반역자도 있고... 금치산자도 있다."

 

이런 발언들이 있을 때마다 집회 참가자가 늘어난 것을 모르지는 않을 터이다. 그들이 오늘의 심각한 사태를 조장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들은 매국노에 가깝다. 그런데 대통령이 매국노의 말을 들을 수는 없는 법 아니겠는가?

 

불행을 자초하는 대통령

 

1일 새벽 2시 광화문 도로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물대포를 맞아 온 몸이 젖은 시민들은 벌벌 떨며 나무와 박스를 구해 왔다. 그들은 도로 위에 불을 지펴 몸을 녹이면서 옷을 말렸다. 가족 단위의 시민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이와 함께 과자를 먹는 아빠도 있었고 길바닥에다 신문지를 깔아 아이를 재우는 엄마도 있었다.

 

이런 시민들에게 촛불 값을 댄 사람이 따로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대통령이 "촛불은 누구 돈으로 샀는지 보고하라"고 해서는 정말 안 되는 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왜 어제 시위자가 급증했는지를 헤아려야 한다. 지금이라도 이 대통령이 문제를 푸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대통령은 설령 자기 생각에 시위 군중들이 밉다고 해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 대통령은 스스로 실용주의자라고 자처하지 않았던가?

 

새벽 4시가 넘도록 시민들의 기세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버스 위에 오르는 시민마다 족족 연행되었다. 하지만 시민들이 외치는 함성은 더 기가 올랐다. 이런 시민들의 욕구를 경찰력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모두가 불행해지는 일이다.

 

이 대통령, 아르헨티나를 타산지석으로

 

이 대통령님, 아르헨티나의 델라루아 정권을 아시는지요? 델라루아는 보수우익을 표방했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수도권 시장 출신으로 1999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지요. 또한 그는 일자리 창출을 제1과제로 내세웠고 5%의 경제성장과 교육개혁을 공약했습니다.

 

그 역시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지향하여 노동법을 개정하고 외국계 기업의 요구를 많이 받아들였습니다. 친미성향의 경제학자와 교수들이 그의 주위에 포진했었지요.

 

그는 초반 50%를 상회하는 국민 지지율을 기록하다가 두세 달 만에 20% 초반으로 급락합니다. 서민들의 삶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주부들이 냄비를 들고 나섰습니다. 말 그대로 '냄비시위'였지요(우리로 치면 촛불시위 같은 것이라고 해야 겠지요).

 

하지만 대통령은 주부들의 시위를 무시했습니다. 주부들이 뭘 아느냐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대통령은 성난 민심을 달래려고 하기보다는 경찰에 맡겨 단속을 강화했습니다. 시위대는 물밀듯이 대통령궁으로 달려갔습니다. 시위대를 막지 못한 경찰은 화급히 기마경찰을 투입합니다.

 

이 과정에서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습니다. 다급해진 대통령은 군부에 진압을 요청합니다. 그러나 군부는 같은 국민의 시위를 진압하는 데 병력을 투입할 수 없다고 거부했습니다. 결국 2002년 12월 대통령은 사임을 결정하고 대통령궁 옥상에 대기시켜 놓은 헬기를 타고 도망쳤다고 합니다.

 

이 대통령님, 제발 아르헨티나의 델라루아처럼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프레시안> 남미리포트 참조) 

 

끝내 우리의 사태도 아르헨티나만큼 심상치 않은 수준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이 대통령은 "이명박 퇴진"을 날이 새도록 외쳤던 시민들의 처절한 함성을 들었는지? 만약 듣지 못했다면 옆에 있는 누구라도 화급히 알려야 한다.

 

"대통령님, 이대로 가다가는 고시 철회만 하는 것으로 사태를 진정시킬 수 없게 될지 모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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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면] 미국쇠고기와 광우병 논란 기사 모음 

덧붙이는 글 | 양천경찰서에 연행되어 있다는 조카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뭐라 말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착잡한 상태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


태그:#반정부시위, #광화문, #불행한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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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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