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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부산시민들이 5월 31일 저녁 서면에서 촛불문화제를 연 뒤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부산시민들이 5월 31일 저녁 서면에서 촛불문화제를 연 뒤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다가 경찰과 충돌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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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쓰레기 봉투에 구호를 적어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 있다.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이 쓰레기 봉투에 구호를 적어 머리에 모자처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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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얼마만이야. 이 도로에 서 보는 게. 20년은 젊어진 거 같네."
"부산이 들고 일어나면 역사는 이루어진다 아이가."
"이거 야구장보다 더 재미있다 아이가. 안 그렇나?"

31일 밤 부산 서면 태화쥬디스 앞 왕복 8차선 도로 한 가운데 앉은 40대와 30대 대여섯 명이 주고받은 말이다. 김헌철(43)씨는 "감회가 새롭네요. 1987년 6월 이 자리에 서본 뒤로 오늘 딱 21년 만에 서보네요"라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문화제'가 '계절의 여왕' 5월 마지막날 부산 서면에서 대규모로 열렸다.

'광우병 위험 부산시국회의'는 31일 오후 6시 부산시청 광장에서 '광우병 쇠고기 반대, 이명박 정부 규탄 집회'를 열고 서면까지 4km 가량 30분 가량 거리행진을 벌였다. 집회가 시작될 때는 1000여 명이었지만 거리 행진을 하는 동안 인파는 더 불어났다.

그리고 저녁 7시 촛불문화제가 시작되자 사람들은 순식간에 늘어났다. 시민들은 태화쥬디스 옆에서 부산은행 부전동지점까지 약 300미터 도로에 꽉 들어찼다. 무려 7000여명이 모인 것이다. 촛불문화제는 밤 9시까지 계속됐다.

태화쥬디스 옆에 트럭으로 무대를 만들고 확성기를 틀어 놓았지만 중간 즈음부터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확성기를 하나 더 설치해야 했으며, 연단에 오르는 사람들은 마이크를 두 개 잡고 연설했다. 그래도 부산은행 앞에 모인 사람들에게까진 들리지 않았다. 그곳에는 또 하나의 마이크가 동원되어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촛불문화제가 끝난 후 시민들은 밤 9시 20분경부터 범내골 입구 왕복 8차선 도로 가운데 한쪽 방향인 4차선을 점거했다. 조금 뒤 경찰이 태화쥬디스 앞을 막아서자 시민들이 왕복 8차선을 모두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6일 새벽 1시경 시민들이 인도로 올라서기까지, 서면광장에서 범내골 입구까지의 도로를 약 4시간 30분 가량 시민들이 차지한 것. 시민들이 이 도로를 점거한 것은 1987년 6월 항쟁과 1991년 강경대 열사 구타치사 사건 이후로 처음이다.

5월 31일 저녁 서면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모습.
 5월 31일 저녁 서면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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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지난 주말에는 서울 청계광장에 다녀와"

여러 사람이 연단에 올랐다. 예비군복을 입고 온 김민석(23·김해)씨는 "작년에 제대했는데, 여기 참석하기 위해 일부러 집에서 군복을 입고 나왔다"면서 "서울에서 예비군복을 입고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있어 해보았다"고 말했다.

중학생이 연단에 오르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이 남학생은 지난 주말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했고 부산 촛불집회는 처음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광우병도 문제지만, 최하급 쇠고기를 들여와 소비 시켜야 한다는데 그것을 퇴출 시야 한다. 그냥 놓아두어서는 안된다"고 말한 뒤 "고시는 철회되어야 한다. 협상 무효, 부산시민 함께 해라"라며 구호를 선창하기도 했다.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한 시민은 "앞으로 쇠고기 먹지 않는 인도에 가서 살고 싶다. 축구 좋아하는데 오늘 요르단과 월드컵 예선전도 보지 않고 나왔다. 설렁탕을 좋아하는데 이제 먹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제시대 우리 민족이 나라를 잃은 설움을 받았다. 지금 우리는 나라가 있는데도 주권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선조들의 설움을 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날 촛불문화제 참가자들은 다양한 구호를 종이에 적어 들고 나왔다.

▲ 2mb 방 빼 ▲ 촛불은 절대 꺼지지 않는다 ▲ MB 퇴치 전문, 우리가 왔다, 후루루 짭짭 맛있는 광우 ▲ 촛불 내 돈 주고 내가 샀다 ▲ 우리들 말이 안들리나요 ▲ 병을 입양하는 마음 넓은 정부 ▲ 쥐박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요 ▲ 닥치고 백지화, 너나 먹어 2MB ▲ 재협상 없으면 대통령도 없다 ▲ 조선·중앙·동아·문화 계속 보면 2MB 된다

부산시민 7000여명이 31일 저녁 서면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부산시민 7000여명이 31일 저녁 서면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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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 방 빼'.
 '2mb 방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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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 사직 야구장보다 재미"

이날 서면에 울려 퍼진 구호며 노래를 보면 부산 사직야구장을 옮겨 놓았다는 분위기가 들 정도였다. 일부 참석자들은 머리에 쓰레기 봉투를 모자로 만들어 쓰고 나왔다. 거기에는 이명박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가 적혀 있었다. 롯데자언츠 야구단은 사직구장에서 경기가 열리면 입장객들에게 쓰레기봉투를 나누어 주는데, 관객들이 머리에 쓰고 응원하기도 한다.

이날 롯데자이언츠는 목동구장에서 우리 히어로즈와 '2008 삼성PAVV 프로야구'를 벌였다. 촛불문화제 도중 사회자가 "지금 롯데가 11대2로 이기고 있대요"라고 말하자 시민들은 "와~"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시민들은 서면 동보서적 앞 도로를 점거한 채 앉아서 노래를 부르거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한 시민이 "부산갈매기"를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노래를 함께 부르던 한 시민은 "사직야구장에 가면 부르는 노래인데, 여기가 꼭 야구장 같네"라고 말했다.

중간에 한 사람이 사탕을 던져주자 여러 사람들이 "아주라"라고 외쳤다. "아주라" 역시 사직야구장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다. 볼이거나 홈런 공을 어른이 받았을 경우 옆에 아이가 있으면 관중들은 그 아이한테 공을 주라는 뜻으로 "아주라"고 외친다.

경찰대원들이 차도를 가로막자 시민들은 노래를 불렀다. 바로 <오 필승 코리아>의 가사를 바꾸어 "오 탄핵 이명박"이라고 불렀다. 춤을 춰가며 부르던 시민들은 "이 노래는 이명박한테 붙이기가 아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여고생이 경찰 버스에 붉은색 카드를 끼워넣고 있다.
 한 여고생이 경찰 버스에 붉은색 카드를 끼워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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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점거 시위

촛불문화제는 이날 저녁 9시 10분경 끝이 났다. 이후 시민들은 태화쥬디스 앞 도로에서 시위를 벌이려고 했지만 경찰이 버스 4대를 동원해 막아 놓아 진출할 수 없었다. 이에 시민들은 옆으로 난 골목과 부산은행 쪽 도로로 행진했다.

시민들은 거의 2km 정도를 걸었다. 왕복 8차선 도로로 나온 시민들은 교보빌딩 앞 편도 4차선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이 "협상 무효" "이명박은 물러가라"를 외치며 차도를 행진하자 버스와 승용차에 탄 시민들이 박수를 치기도 했다.

경찰은 이미 태화쥬디스 앞 8차선 도로를 막고 있었다. 시민들을 촛불문화제가 열렸던 작은 도로로 몰아넣기 위해서였다. 이때가 9시40분경. 시민들은 경찰을 밀어내며 한때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고 일부 시민들은 태화쥬디스 맞은편 옛 천우장 앞 도로로 들어 갔다.

경찰은 태화쥬디스에서 100m 가량 떨어진 동보서적 앞에 대형버스 3대를 가로질러 놓고, 그 앞에 병력을 배치해 놓았다. 시민들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시민들은 인도에 있던 경찰들에게 길을 비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사진을 촬영하자 시민들은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

시민들은 경찰버스 창문 사이에 구호가 적힌 붉은색 카드를 꽂아 놓기도 했다. 동보서적 앞에 세워져 있던 경찰버스가 계속해서 시동을 켜 놓아 소음이 크게 들렸다. 이에 시민들은 "시동 꺼"라고 외쳤다. 이에 이내 시동이 꺼지자 시민들은 "와~"하며 기뻐하기도 했다.

학생을 비롯한 일부 시민들은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상황을 문자 메시지로 아는 사람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이상훈(25)씨는 "여자친구가 집에 있는데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시시각각으로 문자로 알려주고 있다"면서 "그러면 여자친구는 또 다른 친구한테 알려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호.
 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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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외쳐

이후 경찰은 대형 확성기를 동원해 선무방송을 계속했다.

"마무리 집회를 해주시기 바란다. 경찰의 안내에 따라 달라.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 달라. 지금 서 있는 도로는 시민들이 이용하는 차도다. 여러분의 뜻은 충분히 전달되었다. 이 자리를 시민들에게 돌려달라."

경찰은 동보서적 앞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 세워놓았던 버스를 1일 0시 5분경 이동 시켰다. 경찰이 방패를 든 병력을 배치하자 시민들은 스크럼을 짜고 대치하기도 했다.

5월 31일 부산 사람들은 지금까지 벌인 촛불문화제를 합한 시간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도로에 서 있었다.

촛불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참석한 시민들도 있었다.
 촛불 모양을 만들어 머리에 쓰고 참석한 시민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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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경찰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한 시민이 경찰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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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촛불집회, #쇠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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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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