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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김태수는 다시 두 손을 펴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수는 낚시 도구를 챙겼다. 그녀의 입에서는 엷은 술 냄새가 풍겼다. 그들은 자작나무 사이의 강변길을 걸었다. 사과꽃과 민들레꽃 향기가 코끝에서 맴돌고 있었다. 멀리서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후 그들은 이르쿠츠크 시내에 있는 야시장의 식당에 앉아 있었다. 늦은 시간이라서 달리 갈 데도 없었다. 김태수가 여러 번 들러 주인과도 낯이 익은 식당이었다. 그는 뜨거운 수프를 그녀를 위해 주문했다.

“나는 한국인이오. 이름은 김태수.”
“저는 갈리나라고 합니다.”

그녀는 바브스킨에서 왔다고 했다.

김태수는 이름이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다.
“바보스킨이 어디요?”
그녀는 피식 웃더니 입술을 양 옆으로 당기며 말했다.
“바보가 아니고 바브.”
그러자 고른 치열이 하얗게 드러났다. 그녀는 김태수의 서툰 러시아어 발음을 재미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바브스킨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바이칼 호수 건너에 있는 작은 도시라고 했다. 그녀는 오빠를 찾아 이르쿠츠크에 왔다고 했다. 그녀의 오빠는 백색군 중대장이었는데 적색군과 큰 전투가 벌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며칠 전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런데 오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마침 앙가라 강변에서 백색군 군인들의 파티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곳에 갔는데 오빠는 없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군인들이 주는 술을 몇 잔 받아 마셨다. 그러는 사이에 지갑을 도둑맞았다고 했다.

수프를 다 마신 그녀는 가죽 외투를 벗었다. 그녀의 하얀 살결이 헝클어진 머릿결 밑에서 드러났다.
“경찰에 신고는 했나요?”
김태수는 이내 후회했다. 그녀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말을 했다고 생각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중에 한 푼도 없겠군요?”라고 다시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수는 그녀를 자기가 묵고 있는 호텔로 데리고 가 방을 하나 잡아 주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자기 방으로 오라고 말했다.

다음 날 아침 갈리나는 단정한 옷차림과 머리를 하고 김태수의 방으로 왔다. 김태수는 그녀에게 돈을 주었다.
“이거면 집에 갈 수 있겠지요?”

그녀는 한 이국의 사내가 베푸는 친절에 크게 감복하는 것 같았다.
“며칠 내로 다시 와서 갚아 드리겠습니다.”
“집이 바이칼호 건너라고 했지요?”
“네. 여기서 약 300리 정도입니다.”
“혹시 바이칼호 부근에 좋은 호텔을 아는 게 있나요?”

그녀는 가 보지는 않았지만 나타샤르나 호텔이 제일 좋다고 말했다.
“그곳으로 오세요. 제 돈을 갚고 싶으면.”
김태수는 방문을 열어 주고는 그녀를 보냈다.

바이칼은 이르쿠츠크에서 멀지 않았다. 마차를 타고 3시간 남짓 갔을 때, 김태수는 눈앞에 펼쳐지는 바이칼의 풍광에 깊이 놀랐다. 김태수는 아름다운 호수는 많이 보았어도 신비롭게 보이는 호수는 처음이라고 생각했다.

러시아인들은 자신의 나라에 있는 바이칼호를 지상에서 가장 신비로운 인류 유산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한반도 면적의 6분의 1이 넘는다는 바이칼은 40미터 물속 동전까지 볼 수 있을 정도의 투명한 물로 그득 차 있었다. 바이칼의 수량은 세계에서 가장 큰 담수호인 오대호보다 크다고 했다. 바이칼의 수심이 단연 깊기 때문이다. 초승달 모양의 호수는 지금도 바닥에서 미세한 지진과 함께 청정수가 솟아나고 있다고 했다. 호수 동쪽의 사얀산맥 쪽에는 시베리아 곰과 수달, 늑대, 표범이 득실거리고 하늘에는 독수리가 날고 있다고 했다.

김태수는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의 아침 풍경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태양이 호수 너머로 숨어가는 저녁 무렵에는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낙엽송과 침엽수가 빽빽이 들어찬 호수 주변은 언제나 적막하고 고요했다. 이따금씩 러시아 어부의 조각배라도 뜨게 되면 오히려 풍경은 더 비현실적으로 바뀌었다. 맑은 날은 맑은 대로, 흐린 날은 흐린 대로 아름다웠지만 김태수는 가랑비가 내리는 호수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날이면 갈리나는 어김없이 김태수를 찾아오고는 했다. 갈리나가 돈을 갚으려고 김태수를 찾아왔을 때, 그는 그녀에게 그 돈으로 술을 살 의향은 없는지를 물었다. 그 날 갈리나는 김태수와 함께 호텔 바아에서 보드카를 마셨다. 그리고 호숫가를 거닐며 저녁 가랑비를 함께 맞았다. 물가의 꽃들이 달빛을 받아 초롱불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그녀는 젖은 머리를 호텔방에서 말린 다음 돌아갔다.

그녀는 호수 건너 바브스킨의 관청 공무원이었다. 그녀는 김태수의 직업을 한 번 물은 적이 있었다. 김태수는 전(前) 독립운동가라고 엄숙하게 말해 주었다. 그러자 현(現) 직업은 뭐냐고 그녀가 물었다. 지금은 갈리나의 연인이라고 김태수는 더 엄숙하게 대답했다. 이미 그들은 아주 가까워져 있었다. 러시아 여성들은 의외로 개방적이라고 했다. 이르쿠츠크의 이혼율은 50%가 넘는다고 그녀는 말했다. 갈리나 역시 자신의 욕구를 거침없이 표현하는 여성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전혀 이방인으로 느끼지 않았다.

정부 승인

임시정부 특사 일행은 상해 출발 이틀 후 동중국해와 남중국해가 접하는 구룡반도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홍콩에서 중국 실력자 당계요와의 회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계요는 중국 혁명대 호법운동의 선구자로서, 광동군 정부 정무총재 겸 8개성 총사령을 지냈고 지금은 광동정부 교통부장으로 있었다. 그는 차기 운남성 성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신규식과 각별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는 그는 한국 특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백주원이 김태수와 함께 봉래의 바닷가에서 만난 중국의 실력자가 바로 당계요였다. 당계요는 신규식을 부둥켜안았다. 그는 진정으로 신규식을 존경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당계요는 부사 박찬익과 악수를 나누더니 백주원에게 다사로운 눈길을 주었다.

“그때 한적한 어촌까지 찾아와 주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저희들이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었습니다.”

당계요는 벡주원은 물론 김태수의 이름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오셨던 김태수 씨는 안 보이는군요.”
“네. 다른 긴요한 일로 오지 않았습니다.”

회담장에는 10여 명의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신규식과 당계요는 사진 촬영을 마친 후 본격 회담에 들어갔다.

“귀국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난 후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경하 드립니다. 아울러 상세한 정황을 알고 싶습니다.”

“1919년 3월 1일 우리나라 각지에서는 일본에 항거하는 대규모 시위가 있었습니다. 3·1운동이라고 부르지요. 남녀노소,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200만에 달하는 국민이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심지어는 소학생들까지도 시위에 가담했습니다. 우리가 만세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온 국민이 참여한 이 운동은 전적으로 애국심의 발로이며 자유, 해방이라는 정의를 표방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았던 우리 국민들은 일본 병력에 의해 무참히 진압되고 말았습니다. 약 1만에 달하는 동포가 끔찍한 죽음을 당했을 뿐 아니라 투옥된 사람이 무려 30만에 이르렀으니 당시의 참혹함이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었습니다. 일본 경찰은 만세 부르는 사람의 팔을 칼로 내려쳤습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저립니다.”

“옛말에 가장 슬픈 일은 마음이 죽는 일이다고 했습니다. 귀국의 국민들은 마음이 죽지 않았으니 미구에 독립과 자유를 얻으실 것입니다. 한 가지 더 귀국 임시정부 조직의 경과와 각료 구성, 그리고 업무 추진 상황을 알고 싶습니다.”

“임시정부의 각료들은 모두 국내외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혁명지사들로 그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통령에는 이승만, 국무총리 이동휘, 내무총장 이동녕, 외무총장 박용만, 재정총장 이시영, 군무총장 노백린, 학무총장 김규식, 교통총장 문창범, 노동총재 안창호, 그리고 법무총장은 본인이 맡았습니다. 이상의 동지들은 유럽과 미주, 러시아와 중국 동북삼성 등에 있었는데 상해를 근거지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근자에 변동이 있었습니다. 국무총리 이동휘 선생과 외무총장 박용만 선생이 사정으로 떠나게 되어 본인이 나서 그 일을 겸하고 있습니다. 사양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공적이 없으니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나친 겸손이십니다. 선생의 애국심은 오래 전부터 존경해 오던 터입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지금까지 조국을 위해 선생만큼 애쓰신 분은 어디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남쪽 방문 일정에 광동성도 포함되어 있으시지요?”

“광주로 가 손 대총통과 여러 벗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임시정부 성립 이후 귀국 정부를 방문하지 못해 마음이 걸렸습니다. 현재 북경정부가 일본 세력에 포위되어 중국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것이 유감스러울 뿐입니다. 다행히 호법정부가 광주에서 성립되어 손 대총통께서 집정하게 된 것을 경하 드립니다. 이번에 본국의 임시정부는 국서와 함께 본인을 특사 자격으로 광주에 파견했습니다. 호법정부와 정식 회담을 통해 한국임시정부 승인 및 본국에 대한 독립 운동 사업 지원을 협상하기 위해서입니다.”

덧붙이는 글 |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쓰는 소설입니다.



태그:#바이칼, #심규식, #당계요, #이르쿠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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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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