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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어코 한반도대운하를 추진할 심산인가 보다. '미친 소' 때문에 전국이 뒤숭숭한 상황을 틈타 국토해양부가 지난 4월 총선 직전에 폐지했던 국책사업지원단, 즉 대운하 사업의 실무를 담당할 정부 조직을 부활시켰다는 소식이다. 또 한반도대운하가 아니라 '4대강 정비사업'으로 이름만 바꿔 단계적으로 추진하겠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결국, 미국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내팽개친 정부가 '촛불'에 데어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 오만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미국 쇠고기 파동은 한반도대운하의 닮은꼴이자 미래다. 그래서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든 여중고생들은 아마추어 정권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미친 소, 미친 물, 너나 먹어."

 

[닮은꼴 1] 국민 10명 중 8명 가까이 반대

 

우선 두 사안에 대한 국민 여론을 보자.

 

정부가 광우병이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우리 국민 10명 중 8명은 정부의 해명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6일 CBS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19세 이상의 남녀 7백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9.3%가 쇠고기 협상을 둘러싼 정부의 해명을 신뢰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운하에 대한 반대여론도 이와 비슷한 수준이다. 중앙리서치가 지난달 17일부터 4일간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76%가 대운하 사업 추진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82%의 응답자가 대운하가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고 보았다.

 

18대 국회의원 당선인들도 '민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일보·정치학회가 최근 18대 국회의원 당선인 26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다섯 명 중 네 명은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다수가 "환경 보존에 역행하므로 무조건 폐지해야 한다(35%)"거나 "국민 의견이 충분히 수렴될 때까지 보류해야 한다(50%)"고 답했다.

 

[닮은꼴 2] 국민 여론 수렴? 국민 여론 '통제'·'관제홍보' 강화

 

이명박 대통령은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접한 뒤 "국민과의 소통이 부족했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 대통령이 한반도대운하와 관련, "국민 여론을 수렴하겠다"고 거듭해서 밝힌 것도 국민의 반대여론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해결방식은 국민과 소통하거나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 위에서 아래로의 '관제 홍보'를 강화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권력을 동원해 '불법'으로 처벌하려고 으름장을 넣고 있는 형국이다.

 

가령 어청수 경찰청장은 여중고생들이 시작한 촛불 문화제를 불법으로 규정해 사법처벌하겠다고 천명했고,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 학생을 불러내 조사를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교육청 역시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교사들을 동원해 촛불문화제 현장 단속을 하고 있다. 이는 교사들에게는 '영혼'을 빼앗고, 학생들의 자유로운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로막는 것이다.   

 

한반도대운하는 어떠한가.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은 "(운하) 반대론자들만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게 돼 굉장히 잘못된 것들이 국민들에게 많이 전파가 돼 있다"라면서 "저희들이 국민적 설득과 홍보를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 국민 여론이 얼마든지 호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는 이 대통령의 말처럼 여론을 수렴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라 국민 혈세를 들여 '관제홍보'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게다가 총선 직전에는 '한반도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전국 교수모임' 소속 교수들을 상대로 경찰과 국정원 직원이 성향조사를 해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5공 시절에나 존재했던 '정치사찰', '학원사찰'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행태다.

 

[닮은꼴 3] 과학적 토론 하자고? '황당 논리'

 

정부는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토론하자고 말해왔다. 대운하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정부가 말한 과학적 토론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 단적인 예는 다음과 같다.  

 

"떡 먹다가 죽을 확률이, 그리고 담배 피우다 죽을 확률이 광우병에 걸릴 확률보다 훨씬 높다."(정인교 인하대 교수)

 

"운하에서 사고 날 확률은 63빌딩에 비행기 부딪칠 확률과 같다."(박석순 이화여대 교수·한나라당 운하정책 환경자문교수단 단장)

 

정 교수의 발언은 지난 8일 밤에 방영된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나온 말이고, 박 교수의 발언은 운하와 관련된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광우병과 한반도대운하의 정부 '지원사격'에 나선 두 학자의 근거 없는 곡학아세는 너무도 닮아 있다. 학자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연구성과는 제시하지 않고, '근거없는 확률'을 내세우는 것도 그렇고, 이명박 정권의 정책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모습도 빼닮았다.

 

참고로 운하 선진국으로 일컬어지는 독일에서는 지난 99년 한 해 동안만 276건의 사고가 발생했고, 다뉴브강은 98건, 마인강에서는 145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닮은꼴 4] 아마추어의 결정판, '말 바꾸기' '오역' '뒷걸음질'

 

농림식품부는 미국 연방관보 동물성 사료금지 완화조치 내용 오역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이런 사실이 드러나자 정부는 "미국이 연방관보와 다른 내용의 FDA 보도자료를 내놓으면서 혼선이 빚어진 것 같다"고 되레 미국 탓을 하다가 나중에는 "영문 자료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다"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했다.

 

또 정부는 처음에는 "재협상은 없다" "문제될 게 없다"고 강변하다가 국민의 반발이 계속되자 이제는 사실상 미국과 다시 논의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운하와 관련한 '말 바꾸기'는 수효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대통령은 '10년 동안 운하를 연구한 100명의 학자가 있다'고 큰소리를 쳤으나, 운하 건설의 공학적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수심과 폭, 재시공 교량 숫자, 심지어 노선 등에 대해서 수시로 말을 바꿨다. 상황이 이러하니 한반도대운하의 계획이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누더기'가 되어 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의 제1공약으로 발표할 당시만 해도, 4만불 시대를 앞당길 수 있는 물류혁명을 가져올 것이라고 장밋빛 환상을 제시했지만, 물류 효과가 없다는 과학적 근거가 제시되자, 나중에는 '관광 운하'라고 바꿨다. 그런데 이번에는 배가 다니는 운하라기보다는 치수 개념의 수로 형태라고 강변하고 있고, 한반도대운하라는 명칭마저 '4대강 개선사업'이라고 바꿀 조짐이다.

 

결국 반대여론에 직면해 이리저리 뒷걸음질치다가, 무조건 삽부터 뜨고 보자는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 끝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얕은 술수다.   

 

[닮은꼴 5] '미친 소'와 '미친 물'은 생명의 문제

 

국민들이 이처럼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 분노하는 것은 먹거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광우병은 한번 걸리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생명과 직결된 것이다. 한반도대운하도 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져야 할 정부는 '수입 쇠고기에 대한 취사선택은 소비자의 자유'라고 황당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는데, 정부는 3200만 국민의 식수원인 한강과 낙동강을 파헤친 뒤 그 흙탕물을 먹기 싫으면 생수를 사먹으라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 건강권을 미국 쇠고기 판매상에게 넘겨주고, 이젠 국민의 생명수마저 토건업자와 투기꾼에게 넘겨주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촛불문화제에서 울려퍼지는 '미친 소, 미친 물, 너나 먹어'라는 여중고생들의 외침은 이래서 나온 것이다. 이들 역시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미 쇠고기 협상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반도대운하를 통해 '미친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대체 무슨 낯으로 국민의 주머니 돈을 받겠다는 것인가.

 

그럼에도, 기어코 한반도대운하를 파겠다면 광우병 파문과 같이 국민이 촛불을 들고 '미친 불도저'에 직접 브레이크를 달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집권 초기 레임덕이라는 황당한 말이 나돌 정도로 민심이 흉흉한 상황에서, 대운하마저 밀어붙인다면 정부가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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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경부운하, #한반도대운하,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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