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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한다더니 당파성과 이념에 더 치우쳐

 

이명박 정부 들어 내치와 외치를 가리지 않고 종류별로 다양한 파문이 일어나고 있다. 취임 석달도 채 안 돼 20%대 지지율이 나오는 현상, 괜한 것이 아니다.

 

석달도 채 못 돼 극적인 파문을 양산하고 있는 부분은 외치, 그중에서도 '외교'다. 전국민을 폭발시킨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파문도 근본적으로는 외교 능력과 협상력, 그리고 그 준비능력에 있어 치명적인 결함과 무성의를 드러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외교 중에서도 '대미' 관계는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미 문제를 드러냈다고 봐야 한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지나친 무리수를 두더니, 미국 대사를 만난 자리에서 "이번 대선은 보수우파와 친북좌파의 대결"이라고 발언했다가 그로부터 3일 후에 미국과 북한이 '북핵 불능화'를 합의함에 따라 난처한 입장이 된 적이 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정권 인사가 "우리도 갈 수 있었지만 '숙박료'가 비쌀 것이기에 가지 않았다"던 '캠프 데이비드' 숙박을 감행했다가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과 맞물려 전방위적인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대북 외교는 '강경책'으로, 대일·대미 외교는 '유화'를 넘어선 지나친 '스킨십'으로 일관하는 것이 '이명박 외교'의 특징이다. '실용'을 한다더니, 오히려 본인들이 당파성과 이념에 치우쳐 외교적 입장을 전개하다가 최근 들어 집중적인 역풍을 맞고 있다.

 

'통미봉남' 성공 못한다고 장담하더니

 

이명박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 머문 온기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을텐데, 미국은 다음달부터 북한에 50만톤의 식량을 12개월에 걸쳐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2년 반만에 전면 재개된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이며 6자회담에 따른 '북핵 신고'도 그 막후 조율의 진행이 순조롭다고 전해진다.

 

이 사실에 대해, 북한도 조선중앙통신과 평양방송, 중앙방송 및 중앙TV방송 등의 채널을 동원해 신속하게 보도했고, 노동당의 기관지라는 노동신문도 4면 기사로 다뤄, 한마디로 전방위적으로 공개하는 행태를 보였다고 한다.

 

이 행태는, 남한에 '통미봉남'이라는 네 글자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려는 의도일 것이다. 김영삼 정권 시절에도 우리가 지켜봤듯이, 우리는 그 '통미봉남' 때문에 아무 소리도 못하고 20억 달러가 넘는 경수로 비용을 북한에 제공한 적이 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점차적으로 '김영삼 정권' 시절의 과정을 밟는 수순을 보이고 있다. "북한이 먼저 요청하면 식량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그대로 고수한 가운데, 여전히 '선(先) 북핵 포기'와 같은 '북한의 태도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식의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본인들도 '통미봉남' 전술에 그대로 노출되면 김영삼 시절의 악몽을 재현할 가능성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 특유의 당파성이나 '그동안의 입장'을 생각하면, 저 입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국을 의식하며 북한에 유화 메시지를 던지면 그야말로 '통미봉남'에 당했음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의 대북 식량 지원'은 이명박 정부에 있어서는 딜레마이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것'이다.

 

북한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던지, "남측에서 주면 안 받을 이유는 없지만 절대 먼저 요청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18일에 정부는 외교통상부 대변인 명의로 "인도주의적 지원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북한의 식량 사정과 미국의 지원 움직임 분석 이후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혹은 직접적인 지원 등 '구체적인 지원 방안 고심'을 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분명히 한풀 꺾인 것이다.

 

남한을 배제한 상황에서 북미 관계가 호전될 경우,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측은 다름아닌 남한이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이미 김영삼 정권 시절에 호된 경험을 치른 적이 있다. 그래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은 각각 '햇볕정책'과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는 와중에 양쪽 사이에서 실용적인 입장을 내세운 것이다.

 

반면에, 이명박 정부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숙박한 것은 좋았지만,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으로 엄청난 역풍을 맞았다. 게다가, 보수의 숙원이자 주된 미션이었던 '전작권 환수 재협상'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꺼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한미FTA마저도 미국의 차기 대선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경우엔 다시금 커다란 화두가 될 것이다. '실용 외교'를 내세웠지만, 전혀 실용적이지 못했다.

 

'국민 감정' 건드리다가 '뒷통수' 맞은 대일 외교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왕에 대해 '천황'이라는 극존칭을 사용함과 동시에 고개숙여 인사하는 장면이 갈무리된 뉴스 정지 화면이 온 인터넷을 떠다니면서 비난에 노출된 적이 있다.

 

이미 삼일절 때부터 "언제까지나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가는 길을 늦출 수는 없다"는 축사를 내세웠다가 역사에 대한 아픔을 그저 '과거에 얽매여'로 치부했다는 직격탄을 맞은 적이 있음을 감안하면 크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렇듯 이해할 수 없는 '대일 저자세 외교' 논란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금 비난에 노출될 일이 2개나 벌어진다. 89톤 어선 덕양호가 일본 측 배타적 경계수역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일본 순시선에 나포됐다가 한일 경비정 간에 6시간 이상의 대치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이 문부과학성을 통해 "다케시마(독도의 일본 측 주장 지명)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의 학습지도요령 해설서를 발간한 것이다.

 

그 동안은 한일 양국관계를 배려해 보류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방일이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전격적으로 단행된 일이라 황당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배타적 경계수역에서의 나포 및 대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전적인 잘못은 아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사례들이 있었다. 게다가 '독도 영유권'과 관련해서는 한일 신어업협정 15조 "이 협정의 어떠한 규정도 어업에 관한 사항외의 국제법상 문제에 관한 각체약국의 입장을 해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에 대해 정부와 반대 측 학자군에서 치열한 논쟁을 벌여왔던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으로서는 이러한 일들이 그동안의 처신과 맞물려 또다른 역풍의 위기에 몰린 셈이다. 친일 잔재 청산을 하지 못한 데다가 일본 측이 제대로 된 사죄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망언까지 때마다 일삼는 것을 국민은 분명히 기억하고 있지만, '실용'이라는 이름 아래 그것을 외면하다가 노출된 역풍이니 누구의 탓을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라면 역사를 존중하며 국민 감정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역사의 아픔으로부터 비롯된 국민 감정은 존중받을 필요가 있으며, '대통령'이라는 대표자로서 그것을 내세울 필요도 있다. 그럼에도 본인 스스로 일왕을 '천황'으로 극진히 대우한 것으로도 모자라 고개까지 숙였던 것이다. 이게 '실용 외교'인가?

 

'뒷통수' 맞으면 국민도 아프다

 

실용은 '실질적인 쓸모'를 말한다. 어느 한쪽 입장에 지나치게 치우쳐 공리공론만 일삼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득과 쓸모를 얻을 수 있도록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은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하면서,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외교정책을 '좌편향 이념 지향' 운운하면서 비난해왔다. 그러면서 본인들은 '실용'을 하겠다고 내세웠지만, 정작 '이념 외교'로 일관해 뒷통수만 맞아온 것은 그들이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은 '실용'이 뭔지 다시 배웠으면 좋겠다. 취임 석달도 못돼 벌써 뒷통수를 몇번이나 맞은 것인가? 그만 맞았으면 좋겠다. 뒷통수를 맞으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만 아픈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도 너무 아프다. 우린 더 이상 아프기 싫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광우병 쇠고기, #임기초 레임덕, #조공외교, #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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