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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그 첫 번째로 '이런 결혼 어때요'를 진행합니다. 5월에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부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이며, 나머지 달엔 그 달 주제에 맞게 시기별 공모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편집자말]
"신랑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바둥거리지 않고 즐겁게 살겠습니다. 각자 사회생활하면서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신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두 사람의 행복이 아니라 이웃들도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살겠습니다."

2008년 5월 16일 저녁 7시. 한 결혼식의 주례사다. 환경주간을 앞두고 올림픽공원 소마 미술관에서는 이샘, 이혁씨의 특별한 결혼식이 열렸다.

쐐기풀 드레스에 허브 부케 든 신부

5월의 신부는 28살. 환경운동에 몸 담았던 것도 아닌데 스스로 환경 결혼식을 택했다는 이샘씨. 나누고 사는 삶이 좋아서란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점에, 이웃들과 나누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다고. 쐐기풀로 만든 드레스는 마로 만든 옷처럼 사각거렸다. 안쪽은 부드럽다고 한다. 신부의 부케는 허브를 묶은 더미다.

"예전에 디자인 잡지에서 봤어요. 미국에는 종이로 만든 드레스가 있더라고요. 잊고 있다가 막상 결혼할 때 되니까 생각이 나더라고요. 수소문을 해서 디자이너에게 무작정 연락했지요."

쐐기풀 예복 입은 신랑신부
 쐐기풀 예복 입은 신랑신부
ⓒ 김홍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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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결혼식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묻자 "이게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자연스럽게 훨씬 더 예쁘게 할 수 있는 거니까 했습니다. 친구들한테도 앞으로 많이 추천하려고요"라고 답한다. 신랑 신부 포즈 취하는 데에도 신부는 "이런 거 시키지 마세요. 이번이 마지막이에요"라며 한사코 사양한다. '자연스러운 게 가장 예쁜 거'란다.

"지난 2007년 한 해 동안 35만 쌍이 결혼했다고 해요. 만약 그분들이 재생지를 썼다면 1만3000그루의 나무를 안 베어내도 된다고 합니다. 그만큼의 나무가 자연에 살아 있을 텐데…. 작은 걸로도 많은 걸 바꿀 수 있잖아요."

하객들은 콩기름 잉크로 인쇄된 해초 종이 청첩장을 받았다. "화환은 정중히 사양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청첩장은 액자로 재활용 가능하다. 신랑신부가 입장할 길의 양편에는 크고 작은 화분들이 늘어서있다. 예식이 진행될 단상의 하얀 커튼도 허브로 동여맸다. 식장 곳곳의 나무에 둥근 거품 모양 초를 매달아 조명을 대신했다.

예복은 평상복으로 A/S... 하객들에겐 화분 선물

이경재 디자이너
 이경재 디자이너
ⓒ 김홍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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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월 전 신부의 연락을 받고 행사를 기획한 디자이너는 바로 '그린 디자이너' 이경재씨다. '에코 드레스'라는 사이트를 운영하며 2006년 이래 총 7쌍의 환경 결혼식을 주관해왔다. 한 달에 한 쌍 정도가 연락을 해온다. 화분이 늘어선 야외 식장에서 이 디자이너는 "신랑신부분들 생각이 참 건강하다"고 입을 뗀다.

"기존 예식이 패키지로 많이 가는데 350만 원, 500만 원 이런 식입니다. 이 분들은 그런데 쓸 비용을 아껴서 친환경으로 하겠다 하시더라고요. 스튜디오 사진도 의미 없다고  생략하셨고요. 결과적으로, 기존 웨딩 시장의 반 정도 가격이 들었다고 해요."

결혼식 문화에 거품이 많은 건 모두 아는 사실. 기존 결혼식에서 쓰는 예복은 보통 폴리에스테르와 실크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폴리에스테르는 땅에 묻어도 썩지 않고 실크는 보통 고가의 수입원단인 경우가 많다. 결혼식에 드는 꽃 장식도 만만치 않다. 모두 생화를 쓰는데 끝나면 거의 폐기 처분된다.

이혁, 이샘씨 결혼식에서는 화환 대신 화분을 사용해 식이 끝나면 하객들이 하나씩 선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예복 역시 결혼식이 끝나면 이경재 디자이너가 A/S로 장식을 떼고 길이 등을 손질해 맞춤 정장으로 바꿔 준다.

"가장 힘든 부분은, 부모님들과의 의견차이죠. 의뢰가 올 때 보통 신랑신부 본인들은 작고 색다르게 하고 싶어하는데, 부모님들 마음은 다를 때가 있어요. 음식의 질이 이 정도 이상 되어야 한다거나, 식장은 호텔에서 크게 해야 한다는 욕심 같은 거요. '자식 결혼 자랑하기' 같은 잘못된 결혼 문화도 일조하고 있죠."

일회용 그릇 안 쓰는 유기농 뷔페

하객 접대도 남다르다. 각종 나물이 들어간 비빔밥이 주식단. 재배할 때 농약이나 화학 비료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인증 마크를 받은 식단으로 재료 계약을 했다. 그릇이나 컵 등 일회용품을 쓰지 않았다. 이경재씨와 함께 결혼식을 기획한 웨딩 컨설턴트사 (웨딩&라이프컴퍼니더블유) 공은석 대표에 따르면 이를 위해선 신랑 신부의 의지가 중요하단다.

"하객 분들이 보통 뷔페에서 음식 가짓수 많은 걸 원하시죠. 뷔페는 버리는 음식이 많습니다. 예식문화 바꿔야 합니다. 친환경 결혼식이 1년에 1~2회 정도 문의가 들어옵니다. (친환경 결혼식) 많이 하고 싶습니다. 일은 많지만 재미있어요. 막걸리는 해남 땅끝마을까지 가서 제가 공수해왔습니다."

유기농식단
 유기농식단
ⓒ 김홍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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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에서 군복까지'
환경 고민하는 이경재 디자이너

2006년 9월 톰보이 1층 갤러리인 T-스페이스에서 친환경 웨딩드레스 전시를 했던 게 '에코 드레스'(http://www.ecodress.net)의 첫걸음. 베라왕 드레스가 1000만원을 호가하던 때였다.

100여 명의 하객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공문을 띄워 결혼식 신청을 받았다. 조건이 맞는 사람이 없어 약혼식만 1회 열렸다. 의외로 반응이 좋았고 이후 의뢰를 받으며 환경재단 근무자의 결혼식 등 이번까지 총 7회의 환경결혼식을 도왔다. .

이경재 씨는 지난 환경영화제 개막식 사회자 의상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드레스로 최윤영 아나운서가 입었다.

작년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환경결혼식이 요새 하나씩 생기고 있다. 영국이 제일 활발하며 일본에서도 많다. '풀 속에서 하면 환경 결혼식'이라는 잘못된 인식도 가끔 보인다. 이경재씨의 기획으로 환경결혼식을 열면 신랑신부는 한 가지 규칙을 따라야 한다. 신랑신부의 이름으로 10만원씩 환경 단체에 기부하는 조건.

지금까지는 아름다운 재단, 태안 등에 기부해왔다. 앞으로는 친환경상품진흥원, 환경재단 등도 생각하고 있다. '큰 돈은 아니지만 꾸준하다면 큰 힘'이 될 거라는 생각이다.

여러모로 결혼식에 대해 생각이 많은 이 디자이너는, 게이 커플과 장애인 커플 등의 다양한 결혼식도 기꺼이 도와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한다.

현재는 내년 환경의 날 UN평화유지군 전달을 목표로 '친환경 군복'을 고민 중이다. 군복도 폴리에스테르가 35%, 화학 염색을 거친다.

천연 소재와 천연 염색의 군복을 생각하고 있다. 또한 얼룩덜룩한 무늬 사이에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식별 가능한 멸종동물 무늬를 넣는다는 계획이다. '사람과 사람의 평화에서 사람과 자연의 평화까지' 생각하자는 의도다.


태그:#환경 결혼식, #이경재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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