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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현수막
 아파트 베란다에 걸린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현수막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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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

국민들의 도마 위에 오른 농림수산식품부가 위치한 경기도 과천에 요즘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집집마다 위와 같은 대형 현수막을 내걸리고 있는 것.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사무실이 아니다. 시민들이 사는 아파트 베란다에, 단독주택 담벼락에 하나 둘 걸리기 시작하면서 시선을 끌더니 급기야 다운타운 별양동의 한 호프집 창가에도 걸렸다.

"이거 달면 공무원들이 싫어할 텐데"라며 정부과천청사에서 오시는 손님 걱정을 하는 호프집 사장님, 그러나 용기를 내었다. 호프집 건너편에 위치한, 한우만을 판다는 정육점 사장의 눈에는 이 현수막이 어떻게 비춰졌을까? 아마 착잡하리라.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파동으로 한우마저 외면당하는 현실이 아닌가.

과천에 사는 누리꾼 '망치'가 포털사이트 다음 아고라 '미친소 반대 과천시민이 움직입니다'에 현수막이 걸린 과천 사진을 올리자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루 만에 아고라 베스트에 올랐다. 댓글 대부분 "굿 아이디어"라고 자기 집에도 걸겠다며 원본 파일을 올려 달라고 주문했다. 현수막을 구하기 위해 '망치'와의 직접 연락을 시도하는 네티즌도 다수였다.

과천 광우병 반대 현수막 진원지는 '맑은내학교'

빌라에 걸린 현수막
 빌라에 걸린 현수막
ⓒ 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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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은 정부종합청사가 있는 탓에 공무원이 많이 사는 동네다. 전국에서 땅값이 비싸기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워 할, 전형적인 중산층이 사는 곳이다.

그 동안의 투표 행태로 보면 한나라당 출신 국회의원이 내리 4선을 기록하는, 개혁보다는 보수 색채가 강한 동네다.

이런 곳에 정부의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그러나 과천은 육아 및 교육에 있어서 학부모들의 관심은 그 어느 곳보다도 '개혁적'인 곳이다. 인구 6만 남짓한 소도시에 초등과정 대안학교가 3군데나 성업(?) 중이고 이들을 주축으로 중등과정 대안학교도 몇 년 전에 설립했다. 

올해 과천시청에서 초등학교 운동장에 인조잔디를 깔려고 예산을 올렸다가 전액 삭감됐는데, 이를 주장한 시의원을 불평하는 학부모들은 소수이다. 맨 땅보다 인조잔디가 환경적으로 폐해가 심하다는 주장에 공감을 한 것.

몇년 전에 학교 폭력과 왕따로 한 학생이 자살하자 학부모들이 안이하게 대처한 교장을 몰아냈고 이를 모태로 '학교평화'라는 시민단체가 결성되어 활발하게 활동 중에 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의 과천 '동화읽는 어른 모임'의 참여도는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또한 인구 대비 유기농 매장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농림부 공무원들이 꼭 봐야 해요"

현수막의 진원지 역시 '맑은내학교'라는 교육기관이다. 이 곳은 과천에 사는 서민 맞벌이 부부의 자녀를 위해 시민들이 추렴해서 만든 방과후학교다. 지금은 시에서 일부 지원을 받아 약간의 숨통은 트였지만 이전까지는 몇몇 뜻있는 시민들의 후원금에 의존해야 했다. 이 학교의 운영에는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마을신문, 과천시청공무원노조 등 많은 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지난 5월 8일 맑은내학교 운영위원회에서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는 자연스러운 화두였다. 사실 과천은 초등학교 무료급식을 실시하는 곳이어서 어느 곳보다 민감할 수밖에 없다. 회의에서는 서울 촛불집회에 나가는 것보다 지역에서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보자고 해서 나온 아이디어가 바로 '현수막 걸기 운동'이었다. 즉시 문구를 정하고 디자인에 이어 제작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운영위원들이 먼저 깃발을 꼽았다. 각자의 집에, 사무실에, 가게에 가로 1.7m, 세로 1.2m의 현수막이 먼저 걸렸다. 이를 본 동네의 주민들은 신선하다며 환영일색이었다. 부림동에 사는 주부 정아무개씨(46)는 "정부종합청사의 공무원들이 보면 환장할 일"이라며 고소를 감추지 않았다.

"과천에 이 현수막이 걸리는 것은 상징적이 효과가 매우 큽니다, 정부과천청사에 매일 출퇴근하는 공무원들이 국민들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라며 이 아이디어를 처음 제안했던 맑은내학교의 한 운영위원은 현수막의 타깃을 분명히 했다.

처음에는 현수막을 걸기 부담스러워 주저하던 시민들이 점차 동조하기 시작했다. 한두 집 아파트 베란다에 걸리기 시작하더니 이제 과천에서는 이 현수막을 찾는 게 어렵지 않게 됐다. 과천동의 한 빌라에는 아예 전 세대가 이 현수막을 걸었다.

광우병 쇠고기는 좌우의 문제 아니야

단독주택 담벼락에 걸린 현수막
 단독주택 담벼락에 걸린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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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이러한 운동은 주로 진보적인 시민단체나 진보정당을 중심으로 전개해 왔다. 주로 서명이나 집회 등을 통한 '계몽적'인 운동의 행태였으나, 지금의 현수막 걸기 운동은 과거의 그것과 엄연히 다르다.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발의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신당 과천지역위원회도 이름을 내걸지 않고 참여의 일원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당 소속 시의원 역시 한발 거리를 두고 있다.

"광우병 쇠고기 수입 파동은 좌우의 경계가 아닙니다. 조중동이 이를 이념 문제로 접근하려 애를 쓰지만 예서 보다시피 이것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과천은 이명박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곳입니다. 그러나 미국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에 가장 민감한 계층은 선택권 없이 그것을 먹을 수밖에 없는 학생과 집안의 식단을 책임지는 주부입니다. 즉 비정치적인 운동이며 한나라당 당원이면 어떻고 진보정당 당원이며 어떻습니까?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면 상관없죠."

이 운동의 구심점인 맑은내학교의 한 운영위원은 현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하며 괜히 정당 이름 걸었다간 "오히려 손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막 시작한 현수막 걸기 운동은 이와 같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도를 볼 때 오랜 기간 지속될 것 같다. 따라서 당분간 과천정부종합청사에 출퇴근하는 공무원들, 특히 농림수산식품부 고위 공무원들이 이 현수막을 보는 시각은 남다를 수밖에 없거나 곤혹스럽겠지만, 재협상 불가의 정부 입장이 변함없는 한 그 시간은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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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정찬일 기자는 과천 시민입니다.



태그:#과천 , #광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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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의는 질서보다 우선한다"는 홍세화님의 글을 좋아하는 회사원입니다. "모근 국민이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에 공감하면서도 글을 쓴다는 것, 더구나 남에게 읽히는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음을 알기에 기자로 등록하기가 망설여집니다. 되도록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신변잡기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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