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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가명)씨는 헌혈하러 갔다가 헌혈을 거부당했다. 병에 걸려서도, 빈혈이 있거나 헌혈 금지 약물을 복용해서도 아니었다. 헌혈 자격이 문제였다. 헌혈하기 전에 병력을 알아보는 '문진' 과정에서였다. '헌혈의 집' 직원이 말했다.

"영국에 3개월 이상 거주하셨으면 헌혈하실 수 없습니다. 영국은 광우병 위험 국가라서요. 영국이나 유럽에서 오래 거주하셨으면 광우병 위험 때문에 헌혈이 안 돼요."

1997년 이후 영국에 3달 이상 체류했다면? 헌혈할 수 없다. 1980년부터 1996년 사이에 영국에 머물렀다면? 한 달만 머물렀어도 헌혈할 수 없다. 영국뿐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1년 영국에 이어 2004년엔 프랑스 등 기타 유럽국가를 '채혈 금지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과 캐나다는 체류 기간과 상관없이 국내에서 헌혈이 가능하다. 그뿐 아니다. 이들 국가에서 '혈장'도 수입하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헌혈금지지역'.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가 자사 홈페이지에 공개한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 헌혈금지지역'.
ⓒ 대한적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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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1달, 프랑스·독일 5년 살았으면 국내 헌혈

국내 혈액관리법에 따라 정부는 프랑스·독일·스웨덴 등 유럽 36개국을 '변형 크로이츠펠트-야콥병(일명 '인간 광우병') 헌혈금지지역'으로 지정했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이들 나라에서 5년 이상 체류한 이들의 국내 헌혈을 영구히 금지하고 있다.

광우병 발생국인 스페인·이탈리아 뿐만 아니다.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나라인 스웨덴·헝가리 같은 북유럽 16개국도 '광우병 위험성이 높은 국가'로 분류돼 이들 나라에 5년 이상 거주 또는 체류시 국내 헌혈이 금지됐다. 귀국한 뒤 국내 거주 기간과 상관 없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광우병이 영국에서 발생한 질병이라 영국산 쇠고기를 공급받은 국가 중심으로 헌혈을 금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적십자사는 홈페이지에도 이들 나라를 "외국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발생지역"이라며 "헌혈을 통한 vCJD의 전파 가능성 및 안정성 문제가 확인될 때까지 헌혈 보류"라고 설명해놨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럽에서 '수혈'을 받은 적이 있다면, 체류기간에 상관없이 무조건 국내에서 헌혈 할 수 없다.

이 관계자는 "광우병 잠복기가 10년 이상이라서 1996년 이전 광우병 걸린 쇠고기를 먹은 사람의 체내나 혈액에 프리온(광우병 물질)이 있을 수 있어서 그런 사람에게 헌혈을 못하게 한다"며 "체류 기간이 짧더라도 유럽에서 수혈을 받은 경험이 있다면 국내에서 헌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우병에 걸린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으면 광우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수혈로 광우병에 걸린 사례가 있다. 2003년 영국에서 수혈로 인간 광우병에 걸린 환자가 발생했다. 최초였다.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는 "전세계적으로 수혈받아 광우병 된 사례는 3건 있는데 다 영국사람"이라고 전했다.

수혈로 인한 인간 광우병은 발병 속도가 훨씬 빠른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에 따르면, 수혈로 인간 광우병에 걸린 세 명은 모두 1년 안에 사망했다.

따라서 정부는 광우병이 발병하지 않았더라도 유럽에서 체류한 사람은 대개 광우병 잠재 보균자로 보고 헌혈을 금지한 셈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영국 체류 사실로 헌혈이 거부된 사람이 "5000명은 넘는다"고 말했다.

4월29일 MBC <PD수첩>이 방송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한 장면.
 4월29일 MBC <PD수첩>이 방송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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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광우병 비발생국도 헌혈 금지... 미국에선 혈장 수입

하지만 광우병 발생국가인 미국과 캐나다에 체류했을 경우 국내에서 헌혈이 가능하고 '혈장'도 수입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장향숙 통합민주당 의원이 밝힌 바에 따르면, "2006년 10월 이후 현재까지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는 총 955건 1만4937톤에 달한다"며 "이외에 미국과 캐나다에선 사람의 혈액으로 만든 의약품과 원료 혈액(혈장)까지 다량 수입되고 있다"고 밝혔다. 장 의원은 이때 또 "의약품의 원료로 사용하기 위해 수입하는 원료 혈액(혈장)도 2004년 이후 총 53만4827ℓ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 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한 대한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관계자도 유럽 지역의 광우병 위험성 때문에 "국내에서 혈액이 모자라 혈장을 20% 수입하는데 유럽에선 수입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며 "(국내에서 모자란 혈장 20%를) 미국·캐나다 쪽에서만 수입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공식적으로 인간 광우병이 발병한 나라다. 2005년·2006년 인간 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다. 미국에서 지금까지 3명이 인간 광우병으로 밝혀졌다.

또 미국은 광우병 발생국가인 캐나다에서 소를 수입한다. 캐나다도 2005년 인간광우병 환자가 발생했다. 캐나다에서 광우병에 걸린 소도 2005년 이후 총 10여 건이 발생했다. 일본도 2005년 인간광우병 환자가 1명 발생했다. 광우병에 걸린 소도 2001년 이후 총 32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미국·캐나다·일본은 현재 국내에서 채혈 금지국이 아니다. 오히려 혈장까지 수입하고 있다. 혈장은 혈액을 구성하는 주요 단백질로 알부민 같은 의약품을 주로 만든다. 알부민이 부족하면 장기 이식 환자나 교통사고 환자를 치료하기 어렵다. 수혈은 국내에서 100% 충당하지만 문제는 '혈장'이다. 현재 국내 헌혈만으로 충분하지 않아서 수입을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안전성이다.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았지만 5년 이상 거주하면 국내 채혈이 금지되는 스웨덴·노르웨이 같은 나라와 형평성에 어긋난다. 지난해 10월 장 의원도 광우병 위험성 관련 채혈금지 국가를 지정하는데 정부가 "이중 잣대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 "우리나라가 (광우병) 청정지역 맞나?"

안전하지 않은 혈장으로 만든 의약품이 국내에 유통된다면? 이때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대량 감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에 따르면, 영국도 영국 내 수혈용 혈액은 영국 안에서 100% 소화하지만, 약품 제조용 혈액은 외국에서 100% 수입한다. 대한적십자사 관계자는 이 이유를 "한 사람 것이 수천 명한테 전파될 수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광우병이 발병했더라도 미국이나 캐나다는 안전할까? 유럽과 달리 미국에서 거주했던 사람이 국내에서 하는 헌혈은 괜찮나? 광우병이 발생하지 않은 나라도 유럽은 '위험국'으로 분류해 국내 채혈을 금지했는데?

대한적십자사는 유럽 30여개 국가를 "외국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발생지역"이라며 "헌혈을 통한 vCJD의 전파 가능성 및 안정성 문제가 확인될 때까지 헌혈 보류"라고 설명해놨다.
 대한적십자사는 유럽 30여개 국가를 "외국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발생지역"이라며 "헌혈을 통한 vCJD의 전파 가능성 및 안정성 문제가 확인될 때까지 헌혈 보류"라고 설명해놨다.
ⓒ 대한적십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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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혈액안전국 박규은 국장은 "미국이 광우병 안전국가까진 아니지만 수혈 관련한 조치를 취할 정도로 위험한 국가는 아니다"며 "정확한 건 아니지만 잠정적으로 (광우병) 소가 1000건 나오면 인간 광우병이 1건 나온다. 미국의 인간광우병은 영국산 쇠고기를 먹은 사람인데다 인구로 따져보면 누적 위험도가 (영국과) 10배 정도 차이 난다"고 설명했다.

박 국장은 이어서 "영국·프랑스하고 미국을 비교해보면, 프랑스에서 5년 체류와 미국에서 50년 체류한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며,  "미국이 '리스크 제로'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 체류한 사람이 헌혈을 해 광우병(변종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을 전파할 확률은 '0'에 가깝다, 크로이츠펠트 야콥병은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그 확률이 같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광우병 발생국인 미국에서 혈장을 수입하는 건 안전할까? 위험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박 국장은 "(위험 확률이)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다"며, 그리 따진다면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라 본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역시 광우병 청정지역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박 국장은 "우리나라하고 미국하고 어디가 (광우병 위험이) 더 높다고 볼 수 없다"며, "우리나라 (광우병) 없잖나? 하지만 우리나라가 (모든 소를 검사하는) 전수조사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검증이 얼마나 됐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박 국장은 또 "우리나라가 과연 청정지역이 맞는지, 그것부터 검증이 됐는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박 국장은 또 "우리나라는 노인이나 치매 증상으로 사망했는데 병원에서 부검하자고 해도 부검 잘 안하지 않나"라며 "(인간 광우병이) 발견될 확률이 (미국보다) 더 낮다"고 지적했다.

영국은 모든 소한테 광우병 여부를 검사하는 '전수검사'로 광우병 통제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전수검사'를 하지 않는다.

앞서 지난 8일 국회 청문회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 지적에 대해 정운천 농림부 장관은 "병이 없는 나라가 어딨습니까, 병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통제하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 장관의 논리대로라면 유럽 국가도 광우병 위험으로 인한 국내 채혈 금지 규정을 풀어야 한다. 적십자사의 이같은 '이중잣대'를 둘러싼 논란이 예상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들이 9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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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광우병 쇠고기, #미국산 쇠고기, #영국, #헌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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