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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넘게 자동차를 생활 필수품으로 이용하고 있다. 자동차는 참으로 편리한 이동 수단이지만, 자동차 때문에 생활이 더 분주해지거나, 오히려 불편을 겪는 경우도 많다.

우리 집에서 성당에 가려면 신호등이 있는 교차로를 두 곳,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를 한 곳 지나야 한다. 아내를 학교에 출근시켜 줄 때는 다른 지점의 신호등이 있는 네거리 두 곳과 신호등이 없는 네거리 세 곳을 지나게 된다.

신호등이 있는 곳이야 아무 문제도 없지만,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를 지날 때는 잠시나마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갈 때나 올 때나 그곳을 통과할 때는 종종 이상한 '경쟁'을 치르기도 하고, 그에 따라 필요 이상의 심고를 겪기도 한다.

종종 사소한 사고가 나기도 하는 그곳에서는, 이른바 '꼬리물기' 풍경을 쉽게 볼 수 있다. 그 꼬리물기 현상 때문에 부당한 시간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나도 '꼬리물기'에 편승하거나 합류하여 몇 초 동안이나마 남들에게 손해를 주면서 득을 보기도 한다.

꼬리물기 관습을 목격하는 것이든, 그것에 합류하는 것이든, 그것은 내게 곤혹스러움을 안겨 준다. 다른 방향 차들의 꼬리물기로 시간 손해를 감수할 때는 부당함에 대한 또 한번의 인식으로 그치지만, 내가 그것에 합류할 때는(대개는 내 뒤를 따르는 차와 관계되는 경우들이다) '나도 별 수 없는 위인'이라는 자괴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나 또한 편승 형태로 꼬리물기 상황을 빚을 때는 해묵은 의문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가 과연 이 꼬리물기 습성을 극복할 수 있을까?' 거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단정을 하면서도 그 해묵은 의문을 놓지 못한다.

나는 그 풍경에서 우리 민족의 습성 같은 것을 본다. 습성은 속성이기도 하다. 뿌리깊은 것이어서 고치고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쩌면 자기 인식의 범주에서 이미 벗어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꼬리물기를 하면서 '이 관행이 과연 옳은 것일까?'라는 의문을 떠올려보기라도 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오래 전에 읽은 어느 외국인의 글이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경제가 발전하여 국민이 잘 살게 된다고 해서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신호등 없는 교차로의 꼬리물기 관행, 그 습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는 구미 선진국은 물론이고 가까운 일본만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신호등 없는 교차로 풍경을 소개했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 지점에 도달한 차는 일단 멈추기를 한다. 일단 멈춘 다음, 그 지점에 가장 먼저 도달한 차부터 직진이든 회전이든 한다. 4개 방향에서 차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니 어지럽게 보일 수도 있지만, 가장 먼저 도달한 차부터 움직이는 그 순서가 참으로 엄격하고 정확하여 사고 위험은 전혀 없다. 교차로 지점에 먼저 도달한 상태에서도 늦게 도달한 차들이, 심지어는 저 멀리에서 오는 차들까지 다 통과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결코 온당한 일이 아니다."

그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살면서 신호등 없는 교차로의 꼬리물기 관행을 무시로 체감하며 거기에서 한국인의 부정적인 기질과 속성을 간파한 것 같다. 비합리성과 공중의식의 빈약성 등을 확인한 나머지, 경제만 발전하면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줄로 착각하는 한국인들에 대해 독설에 가까운 충고를 한 것이다.

신호등 없는 교차로의 꼬리물기 관행은 폭넓은 상징성을 지닐 것 같다. 그것은 한국인의 속성과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을 함축적으로 반영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오늘도 차를 가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신호등이 없는 교차로를 여러 번 통과했다.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고는 차량 통행이 별로 많지 않아 꼬리물기 풍경이 많이 빚어지지는 않았지만, 교차로 지점에 먼저 도달한 상태에서도 늦게 도달하는 차들이 그대로 통과하기를 기다린 경우가 여러 번이었다. 긴 꼬리물기는 아니더라도, 꼬리물기 버릇을 거듭 목격하고 체감하는 기분이었다.

필요 이상의 경쟁심을 발휘하기도 하면서, 교차로 지점에 먼저 도달하여 정차해 있는 차들을 아랑곳도 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잠시 멈출 것도 없이 그대로 통과해 가는 차들, 무표정하기도 하고 뻔뻔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운전자들을 목도하는 것은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다.

꼬리물기 관행에 익숙해 있거나 열중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지탄하거나 판단할 수는 없지만, 꼬리물기 관행은 어느 모로는 폭력성을 지니는 것이기도 하다.

이미 체질화되어 버린 '대세' 속에서 나도 별 수 없이 그대로 묻어 가거나 끌려가는 형국이다. 그것을 의식해야 하는 무거움도 크다. 그리하여 신호등 없는 교차로를 통과할 때마다(다른 쪽의 꼬리물기로 손해를 보거나, 경쟁심을 발휘하기라도 한 날은 더욱) 다시금 괜한 의문을 떠올리곤 한다.

우리는 과연 꼬리물기 관행을 극복할 수 있을까? 꼬리물기 관행과 습성을 그대로 안고 가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과연 선진국 국민이 될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통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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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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