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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파 방정환 선생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1899년 11월 9일 경성 야주개(현 당주동)에서 방경수의 장남으로 출행한 소파 방정환(당시 19세)은 1917년 4월 8일 권병덕의 중개로 의암 손병희 선생의 3년 손용화(당시 17세)와 결혼을 하였다(의암 손병희 선생은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중 한 분이셨고 또한 천도교의 제3대 교조셨다).

 

일부에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방정환 선생은 일본의 도오요 대학(東洋대학의 전문학부 문화학과)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뜻한 바가 있어 어린이를 위한 운동을 하기로 결심한 방정환 선생은 1922년 5월 1일에 천도교 소년회 창립 1주년을 기념하여 '어린이의 날' 기념행사를 최초로 거행하였다. 

 

이듬해 1923년에는 어린이잡지인 <어린이>를 창간했으며 장남 운용과 장녀 영화를 <어린이> 3권 4호의 표지 모델로 삼았다. 또한 일본의 도쿄에서 어린이를 위한 '색동회'를 조직하였으며 같은 해 5월 1일에는 천도교 청년회 등 3개 단체와 합동으로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진행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소파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사랑하는 마음'을 민들레 홀씨처럼 온 세상에 퍼뜨리기 위한 일념으로 '방정환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지금 현재 다음 카페에서는 '방정환도서관'이 운영되고 있고, 한 달에 두번(매월 둘째 넷째 주 월요일 오후 7시)은 경운동 88번지 수운회관 1207호에서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을 상대로 '방정환 어린이 도서관'에 소장할 도서를 기증받는 활동과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펴나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87년 전인 1922년에 최초의 어린이날 행사를 구상하고 밤새워 잡지 <어린이>를 만드시던 소파 방정환 선생의 뜻을 모으고 결집시켜서 '어린이의 행복을 위협하는 상업화된 시대'를 극복하는 어린이들의 보금자리로서의 방정환 어린이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어린이를 상대로 한 범죄가 연이어 발생하는 요즈음의 시대에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 사랑정신을 기리는 '어린이 도서관' 건립은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언급했다.

 

5월 5일 오전 11시에 어린이날을 맞아 경운동 88번지의 천도교 수운회관에서 열린 제87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는 (재)한국방정환재단을 비롯한 여러 단체들이 방정환 어린이 도서관 건립을 기원하며 수많은 도서를 기증하였다. 또한 기념식이 끝난 뒤에는 어린이와 참석한 모든 이들이 방정환 어린이 도서관의 건립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건립 후원금을 내거나 전시되고 있는 도서를 구매하기도 하였다.

 

또한 어린이들을 위한 페이스 페인팅과 사생대회, 전통놀이 체험 등의 코너에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였다. 함께 온 부모들은 천진하게 즐거워하며 너른 마당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같이 즐거워하는 표정들이었다.

 


태그:#방정환 어린이 도서관, #경운동 88번지, #(재)한국방정환재단, #의암 손병희,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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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곳들을 다닌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서 비슷한 삶의 느낌을 가지고 여행을 갈만한 곳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내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문제점들이나 기분 좋은 풍경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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