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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 한 해 동안 연중기획으로 '쓰레기와 에너지'를 다룹니다. 그 첫 번째로 '이런 결혼 어때요'를 진행합니다. 5월에 새로운 가정을 꾸미는 부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해 '친환경 결혼'을 주제로 정했습니다. 6~8월은 '쓰레기 이동을 막아라'라는 주제를 통해 쓰레기 감량과 재활용 없이는 결국 쓰레기 절대치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확인할 계획이며, 나머지 달엔 그 달 주제에 맞게 시기별 공모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편집자말]
12년 전, 스물아홉의 남자와 스물하나의 여자가 만났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랜기간 서로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 "희한한 아저씨"라고 스물하나의 여자는 생각했고, "철없는 처자"라고 스물아홉의 남자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같은 곳을 바라보며, 때로는 다른 곳을 배회하기도 하며 남자와 여자는 오래도록 연애라는 것을 했다. 서울이었고,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갔다.

5년 전, 서른여섯의 남자와 스물여덟의 여자는 산골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

집 뒷산의 "얼레지 꽃밭" 매년 결혼 기념일 즈음, 흐드러진 꽃들과 만날 수 있다. 꽃들이 축하해 주는 것이라고 혼자 그리 생각하며 웃는다.
▲ 집 뒷산의 "얼레지 꽃밭" 매년 결혼 기념일 즈음, 흐드러진 꽃들과 만날 수 있다. 꽃들이 축하해 주는 것이라고 혼자 그리 생각하며 웃는다.
ⓒ 정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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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로 들어간 남과 여

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그리 흘러갔다. 남자는 어깨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여자는 손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봄이 되면 나물을 뜯었고, 여름에는 텃밭에 먹을 것이 가득했다. 가을이 되면 토종꿀을 떴고 겨울에는 온 세상이 눈에 뒤덮였다. 삶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강원도 첩첩 산골이었고, 비로소 제대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 전, 서른아홉의 남자와 서른 하나의 여자는 결혼을 하기로 했다.

모든 일들이 그리 되어갔다. 이미 부부로 살고 있었지만, 형식을 갖추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몸과 마음, 이웃과 친지, 집과 자연에게 공표하고 싶었다. 마음을 냈고, 준비를 했고, 정성을 기울였다.

하지만 준비할 것은 많지 않았다. 예식장 선택도, 뷔페 예약도, 청첩장 인쇄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자와 여자는 소박한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원하지 않는 것은 선택하지 않으면 되었다.

남자와 여자는 생각했다. 몇몇의 지인들과 더불어 소박한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결혼식. 방명록도 부주함도 없고, 그저 고무신 질질 끌고와도 좋을 결혼식. 속전속결로 15분 만에 끝나는 결혼식이 아닌, 니나노~ 젓가락도 두드리고 꽃같은 신부가 밥상도 차리는 그런 결혼식. 어색한 꽃들로 가득찬 결혼식장이 아닌, 야생화 만발한 자연 속에서 하는 결혼식. 어울리지도 않는 턱시도가 아닌, 가지고 있는 가장 깨끗한 청바지를 입고 하는 결혼식. 신랑 신부, 그리고 오신 분들 모두가 주인공인 결혼식. 그런 결혼식을 원했다.

장대같은 비. 그러나 신부는 비 한방울 맞지 않았다. 뒷산 야생화 꽃밭의 결혼식은 비 때문에 변경되었다. 그래도 신랑 신부는 그저 좋기만했다.
▲ 장대같은 비. 그러나 신부는 비 한방울 맞지 않았다. 뒷산 야생화 꽃밭의 결혼식은 비 때문에 변경되었다. 그래도 신랑 신부는 그저 좋기만했다.
ⓒ 전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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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 이 곳 얼레지 꽃밭에서

우리가 만약 섬에 살았다면 썰물 진 바닷가에서 결혼식을 했을 것이다. 농촌에 살았다면 봄 보리 넘실대는 들판에서 식을 올렸을 것이다. 도시에서 살았다면 조용하게 식을 올릴 수 있는 곳을 물색했을 것이다. 굳이 특별한 곳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살고 있는 곳 주변, 여러명이 모여앉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산에 살고 있으니 산에서 결혼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웠다. 기본이 정해지니 나머지는 일사천리, 물 흐르듯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몇번의 답사 결과, 결혼식 장소는 우리집 뒷산 언덕배기 '얼레지 꽃밭'으로 결정되었다. 바람도 놀고가는 양명한 곳이었고, 바로 옆에는 국수를 삶아먹기 좋을 개울이 흘렀다. 오페라를 하는 선배에게 결혼식용 드레스를 빌렸다. 이웃집 총각은 집 주변 꽃을 꺾어 부케를 만들어 주었다. 신랑이 될 남자는 장작을 넉넉하게 집어넣고 하객들의 잠자리를 보살폈다. 신부가 될 여자는 새 김치를 담고, 국수 육수를 끓이고, 잡채 거리를 준비했다. 부조 대신 떡과 막걸리가 들어왔고, 모두와 나눌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져 마음이 푸근했다.

하지만 변수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주례와 사회자, 결혼 당사자로 구성된 '산골 결혼 추진위원단'은 비상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비가 오면 '얼레지 꽃밭'에서의 결혼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없는 신부는 비를 맞고서도 꽃밭에서 식을 올리겠다고 떼를 썼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다. 나는 상관없지만 하객들을 비에 젖게 할 수는 없었다. 비는 쉽게 그치지 않을 성 싶었고, 아침의 상황을 보고 결정하는 것으로 비상 대책회의는 해산했다.

신부는 국수 육수 끓이고, 신랑은 장작 패고

결혼식 날 아침, 빗발이 제법 굵었다. 얼레지 꽃밭에서의 식은 무리였다. 동네 끝에 있는 아담한 법당으로 장소는 변경되었다. 스님이 직접 지은 암자였고, 남자와 여자는 그 곳을 좋아했다. 서둘러 식장을 차렸다. 동네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드니 순식간에 연단이 만들어졌고, 연등에 환하게 불이 들어왔다. 삼삼오오 동네 사람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모여들었다. 식장에 들어가기 1분 전까지 신랑은 하객들을 챙겼다.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고, "신부 입장!" 소리가 흡사 축제의 서막처럼 들려왔다.

주례는 두 분이셨다. 윗집 스님과 서울 계신 신부님의 공동주례. 농담같은 우리의 제안에 두 분 모두 흔쾌히 화답해 주신 것이었다. 신부님은 "가톨릭과 불교의 축복을 한꺼번에 받은 이 복많은 부부가 앞으로 얼마나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지 우리 모두 지켜봅시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고, 스님은 "이웃들과 함께 늘 지금처럼 그렇게 행복하게 살길 바랍니다"라는 말씀을 해 주셨다.

주례를 마친 스님은 바람처럼 사라지셨다. 어디 계신가 싶어 둘러봤더니 동네 아낙들과 함께 공양간에서 국수를 말아주고 계셨다. "꽃 같은 신부는 그냥 곱게 앉아있어." 환한 얼굴에 달같은 표정이었다. 나도 신랑도 그 국수를  먹었다.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에 눈물이 고이기도 했다. 전날 밤 깜빡깜빡 졸며 끓인 육수에 스님이 말아주신 국수였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고, 모두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스님과 신부님의 공동 주례 집 근처의 아담한 암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스님은 연등에 불을 환히 밝혀 주셨고, 신부님은 모두를 축복해 주셨다.
▲ 스님과 신부님의 공동 주례 집 근처의 아담한 암자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스님은 연등에 불을 환히 밝혀 주셨고, 신부님은 모두를 축복해 주셨다.
ⓒ 유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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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진 않았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그랬다. 단순하고 명료한 결혼식. 기본은 그것이었다. 필요없는 것을 배제시켜 가다보면 온전한 것만 남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같은 진실. 5단 짜리 케이크도, 쌓아올린 샴페인 잔도 필요없었다. 남자와 여자, 가족과 친구, 이웃과 자연, 단출한 음식 몇 가지, 그리고 마음. 필요한 것은 의외로 단순했다.

흥이 나면 그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면 되고, 불콰한 얼굴로 마주 보며 하하하 웃는다. 축복 하고 축복 받고, 등을 두드리고 손을 맞잡았다. 산골에는 꽃이 만발했고, 축복의 비가 봄 가뭄을 해갈해 주었다. 동네에는 밤 늦도록 불이 환했다. 남자와 여자는 부부가 되었고, 결혼을 해서 참 좋았다. 2006년 5월 6일의 일이었다.

2년이 흘렀다. 시간은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날처럼 꽃이 피고 그날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오랫만의 단비에 물을 머금은 나무들은 연두빛 새 잎을 피워내는 중이고, 개도 신이 나서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어찌 그런 시간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돌아보니 마음이 참 무던히도 젖어온다. 그날의 빛나던 풍경들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피어난다. 한 사람 한 사람, 말 한마디, 표정 하나 온전하게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다.

산골의 봄은 눈이 부시고, 2년 전 이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그날에 대해 추억하기 시작한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을 오늘 보았다"며 눈물을 머금던 그 표정들을 아마 나는 평생 잊지못할 것이다.

법당안에 옹기종기 모인 하객들 비포장을 달려 차를 세운 후 30분을 걸어야 하는 이곳까지 와 주셨다.
▲ 법당안에 옹기종기 모인 하객들 비포장을 달려 차를 세운 후 30분을 걸어야 하는 이곳까지 와 주셨다.
ⓒ 전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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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2년... 남과 여는 오늘도 결혼바위에 오른다

2년이 흘렀지만 여전하다. 1년 중 가장 좋은 때, 가장 바쁜 철인 5월. 부부는 때를 놓쳐서는 안 되는 일들에 매일 땀을 흘리며 일을 하고 있다. 다투어 피어나는 꽃들처럼 동네에는 활기가 넘치고, 신록은 점점 하늘을 덮어가고 있다.

이 빠쁜 시절, 동네 남정네들은 2주년 기념 행사 건에 대해 의견을 타진해 온다. 이 좋은 봄날, 더불어 함께 즐기기 좋은 핑곗거리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는 오늘, 호미와 삽을 놓고 소풍을 가게될 듯하다. 그 날을 추억하며 하루 쯤 온전히 이 봄날을 즐기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날이 좋을 듯 하니 결혼바위까지 비탈길을 더듬어가게 될 듯하다. 작은 가방에는 막걸리와 소박한 음식을 챙겨야 할 것이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고, 어느새 모두는 웃고 있을 것이다. 2년 전, 바로 그날처럼 말이다.

결혼 바위에 앉은 부부 이곳에서 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날 이후 '결혼 바위'라고 부른다.
▲ 결혼 바위에 앉은 부부 이곳에서 식을 치를 예정이었다. 그날 이후 '결혼 바위'라고 부른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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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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