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판에는 올 시즌 포항 스틸러스에서 성남 일화로 이적해 온 정성룡이 팬들에게 "지난해 우승팀 포항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승리하는 데 기여하겠다"는 인사말이 담긴 영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정성룡의 다짐이 나오는 그 순간 벤치에서 선수들의 몸 풀기를 지켜보던 포항의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취재진이 다가서 말을 건네자 "그저 평범한 정규리그 한 경기 일 뿐"이라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오히려 "잘해서 6강 플레이오프만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여유를 드러내기도 했다.

파리아스 감독의 여유 "6강에만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여유...그의 여유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어차피 6강에만 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여유를 부렸다.

▲ 여유...그의 여유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은 "어차피 6강에만 들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여유를 부렸다. ⓒ 포항 스틸러스

파리아스 감독의 여유에는 이유가 있었다. 2005년 파리아스 감독 부임 이래 성남과의 경기전적은 5승3무2패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두 번의 챔피언결정전에서 모두 승리해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게다가 성남 원정 경기에서는 딱 한 번밖에 패하지 않았다.

여유라면 빼놓을 수 없는 성남의 '학범슨' 김학범 감독도 지난해 아픈 기억은 다 잊었다는 듯 "그저 늘 하던대로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김학범 감독에게도 포항과의 일전은 단순한 정규리그 한 경기 일뿐이었다. 다만, 김학범 감독은 경기 전망을 묻는 질문에 "미드필드 싸움에서 승부가 날 것 같다"고 말했다.

여유로움 속에 3일 오후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삼성 하우젠 2008 K리그 8라운드 경기에서 포항이 박원재, 김재성의 골과 김영철의 자책골을 앞세워 성남에 3-2 승리를 거두고 상위권 싸움에 뛰어들었다.

양 팀은 각각 2%씩 모자랐다. 성남은 왼쪽 측면에서 공격 가담이 뛰어난 풀백 장학영이 지난달 30일 광주 상무와의 컵대회에서 오른발 뒤꿈치를 다치는 바람에 이날 빠져 측면에 공백이 생겼다. 포항도 중원의 김기동이 빠져 노련미에서 성남보다 다소 떨어졌다.

그러나 김학범 감독의 생각대로 이날 경기는 미드필드 싸움이 치열했다. 성남은 경험이 풍부한 김상식이 뒤에서 조율하고 손대호, 김철호를 앞에 배치해 포항의 아기자기한 패스를 차단하는데 주력했다. 포항도 이에 맞서 황지수를 뒤에 두고 김재성과 신형민이 앞에서 성남의 공격수들과 맞섰다.

그나마 주중 경기를 치르지 않은 포항이 체력적으로 우세했다. 지난해 우승팀 자격으로 AFC(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해 컵대회는 6강 플레이오프에 자동으로 진출하는 혜택을 얻었기 때문. 이날 경기 중 온도는 29도까지 올라갔다. 5월 초치고는 더운 날씨라 체력회복이 더딘 성남에게 불리했다.   

사실상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에서 탈락한 포항은 당분간 정규리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파리아스 감독의 괜한 여유가 아니었다.

승리 후 농담까지 "성룡이가 성남에 와서 섭섭했는가 보다"

최효진  경기를 승리한 파리아스 감독은 좌우에서 휘저은 박원재, 최효진을 일컬어 "한국에서도 수준높은 측면 자원이다"라고 설명했다. 최효진은 환상적인 돌파로 장학영이 부재했던 성남 왼쪽 측면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 최효진 경기를 승리한 파리아스 감독은 좌우에서 휘저은 박원재, 최효진을 일컬어 "한국에서도 수준높은 측면 자원이다"라고 설명했다. 최효진은 환상적인 돌파로 장학영이 부재했던 성남 왼쪽 측면을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었다. ⓒ 이명주

지난해 11월 챔피언결정전 이후 6개월 만에 만난 두 팀은 재미있는 경기로 더운 날씨 속에 경기장을 찾은 7천 282명의 관중을 기쁘게 했다.

아기자기한 패스와 측면 돌파를 통한 공격은 더위를 날렸다. 특히 포항은 좌우 풀백인 박원재-최효진의 돌파력이 빛났다.

박원재는 경기 도중 부상으로 이마에 붕대를 감고 나와 뛰는 정신력을 발휘했고 전반 21분 김광석의 재치있는 패스를 받아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후에도 박원재는 과감한 돌파와 수비력으로 경기장을 찾은 허정무 국가대표팀 감독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만들어진 세 골은 모두 그림과 같았다. 전반 24분 포항의 미드필드에서 성남의 골 지역으로 한 번에 연결된 볼을 황진성이 옆으로 밀었고 김재성이 뛰어들어 왼발로 성남의 그물을 가르며 2-0을 만들었다. 친정팀에 두 골이나 허용한 성남의 정성룡은 힘 없이 공을 바라보기만 했다.

가만히 있을 성남이 아니었다. 성남은 6분 뒤 두두가 포항의 골 지역으로 파고들어 파울을 유도해 페널티킥을 얻어내 성공시키며 1-2를 만들었다. 모따와 조동건이 포항 수비수들의 시선을 유도했고 두두가 영리하게 파고들어 얻어낸 결과였다.

후반 시작과 함께 김학범 감독은 공중볼 다툼이 좋은 손대호를 빼고 활동폭이 넓은 김정우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김정우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후반 3분 미드필드에서 킬패스로 두두의 골을 도우며 2-2를 만들었다. 그러나 후반 24분 포항의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최효진이 성남의 페널티 지역까지 파고들어 날린 강력한 슈팅이 김영철의 왼발을 맞고 골문으로 들어가며 2-3으로 역전, 빛이 바랬다.

승리를 거둔 파리아스 감독은 여유가 있었다. 그는 3골이나 실점한 정성룡을 두고 "포항에서 성남으로 와 섭섭해 봐주지 않았는가 싶다"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포항의 중원을 책임졌던 미드필더 황지수도 "성남하고는 언제나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준비를 많이 해서 승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유독 강한 이유를 설명했다.

승리를 거둔 포항은 오는 7일 호주 애들레이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준비한다. 성남은 일주일의 휴식 뒤 10일 경남FC와의 원정 경기를 치른다.   

덧붙이는 글 경기결과

성남 일화 2-3 포항 스틸러스(득점-전30, 두두 후3, 두두 도움:김정우 후24, 김영철 자책골<이상 성남 일화>전21, 박원재 도움:김광석 전24, 김광석 도움:황진성<이상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
골키퍼-정성룡
수비수-박진섭, 조병국, 김영철, 박우현(후38, 전광진)
미드필더-김철호, 김상식, 손대호(HT, 김정우)
공격수-조동건(후28, 최성국), 모따, 두두

포항 스틸러스
골키퍼-김지혁
수비수-조성환, 황재원, 김광석
미드필더-최효진, 김재성(후21, 노병준), 황지수, 신형민, 박원재
공격수-데닐손(후39, 남궁도), 황진성(후27, 권집)
파리아스 포항 스틸러스 성남 일화 박원재 장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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