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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초, 2박3일의 일정으로 설악산을 찾았다. 설악동에서 출발하여 양폭산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 날 대청봉에 올랐다. 내려오는 길에 봉정암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려고 했으나, 걸음을 빨리 하면 수렴동 대피소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봉정암은 그냥 둘러보고 내려왔다.

 

당시 봉정암보다는 봉정암에서 내려오던 길에 만난 깔딱 고개가 더 기억에 남아 있다. 내려오는 길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힘들게 내려오면서 그 길을 올라가는 사람들을 염려했다. 내려오기도 쉽지 않은 저 힘든 길을 어떻게 가나, 했던 것이다. 그나마 내가 내려가는 길이라는 게 다행스러웠다.

 

그래도 내려온 뒤에는 다음에 꼭 봉정암에서 하룻밤을 지내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아직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임윤수 기자가 봉정암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책 <열림>을 펴냈다. 절을 찾아다닌 흔적을 글로 남기는 임윤수 기자가 이번에는 작정을 하고 봉정암 이야기만 했다.

 

봉정암은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의 하나로 설악산 마등령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관한 전각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는 것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불자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봉정암은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봉정암 역에서 내리는 것도 아니고, 자가용을 타고 봉정암 주차장까지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백담사에서 여섯 시간 이상은 족히 걸어야 갈 수 있다. 그것도 평지가 아니라 산행길이다.

 

그래서 임윤수 기자는 "봉정암을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행이며 구도의 길"이라고 말한다. 그는 봉정암 가는 길은 "가파르고 험한 길은 아니지만 결코 쉽게 생각할 수 없는 길이며 지루하도록 인내심을 요구하는 그런 길"이라고 설명한다.

 

그런 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다 보면 너무 가파르고 오르기 힘들어서 '깔딱' 숨이 넘어갈 지경이 된다는 '깔딱 고개'도 있다.

 

이쯤 되면 이렇게 힘든 길을 왜 가나, 궁금해진다. 대체 봉정암이 무엇이기에, 무엇이 있기에 힘들게 찾아가는지 묻고 싶어진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5년여를 꾸준히 드나들었다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거기, 봉정암 가는 길에는 길(道)이 있었습니다. 계곡을 건너고, 너덜겅 길을 걸어야 하는 '인적의 길'도 있었지만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고, 마음이 쉬어갈 수 있는 '마음의 길', 천년동안 뭇사람들이 불심으로 걸었던 마음의 길이 거기라는 걸 느꼈기에 가고 또 갔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런 마음은 아니었다고 한다.

 

처음 걷던 '봉정암 가는 길'은 땀과 발품으로 걸어야 하는 인적의 길,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돌며 깨우침을 찾던 그 옛날 선사들로부터 조금 앞서 지나간 보살님들의 발길이 만들어낸 산길일 뿐이었습니다. 그냥 풍광이 좋아 다시 한번 걷고 싶어지는 인적의 길일뿐이었습니다.

 

그랬던 길이 걷고 또 걷다 보니 "마음이 걷고 싶어 하는 '마음의 길'"이 되었다는 것이다.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길을 오래 걷고 걷다보면 지루해지기도 하지만 길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는 <열림>에서 봉정암 가는 길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봉정암에 창건에 얽힌 설화와 함께 설악산의 다섯 봉의 이름에 숨겨진 전설도 들려준다. 또 그곳을 찾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더불어 풀어놓는다. 그곳에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고 마음을 추스르게 해준 스님들의 이야기도 조곤조곤 들려준다.

 

봉정암과 설악산의 사진까지 곁들인 그의 이야기는 은근하게 마음을 사로잡는 마력이 있다. 해서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을 한 쪽으로 밀어놓고 봉정암을 향해 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는 추임새까지 넣으며 그 마음을 부추긴다.

 

삶이 팍팍하고, 산다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껴지면 엉엉 통곡이라도 하듯 봉정암 가는 길을 걸어 보십시오. 내딛는 걸음걸음, 살아가는 하루가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당장 봉정암 가는 길을 걸을 수 없다면 나그네의 마음을 지팡이 삼아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펼쳐지는 봉정암 가는 길을 걸어보십시오.

 

<열림>을 통해 봉정암의 모습을 샅샅이 살펴보았다면 이제 길을 떠날 차례다. 이 봄이 가기 전에 봉정암 가는 길을 걸어보자. 임윤수 기자의 말대로 몸보다 마음이 가고 싶어 하는 길이 봉정암 가는 길인지 확인해보자.

 

그 길을 임 기자가 '목탁 같은 도반'이 되어 발걸음에 동행해 준다고 했으니 그 마음을 품고 걸으면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열림 - 마음이 길을 만나는 시간

임윤수 글.사진, 가야북스(2008)


태그:#봉정암, #설악산, #임윤수,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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